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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말씀의 축제인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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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3 ㅣ No.464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말씀의 축제인 미사

 

 

사제품을 받고 본당에 파견된 지 얼 마 안 되어 교회 신문에 났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교회가 위기를 맞이했다. 주일미사 참석자가 6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대개 교적의 30퍼센트 정도의 교우만이 미사에 참여합니다. 20년 전의 기사를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은 위기를 넘어선 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사 참석률이 이처럼 극도로 저조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외적인 이유로는, 사회가 급변하면서 주일에도 일을 하는 직장이 많아 미사에 올 수 없다, 주 5일 근무제 시행 이후로 주말에 가족 행사가 많아졌다, 청소년들의 경우는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없다 하는 이유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내적인 이유로는, 미사가 어렵다, 재미없다, 형식적이다 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미사가 ‘하느님 백성의 축제’라거나, ‘하느님 백성의 예배’가 아니라, 무거운 짐이나 힘겨운 의무처럼 느껴지고 맙니다.

 

 

전례개혁의 가장 큰 의미 : 성경 보고의 개방

 

전례에 대해 말씀드리자니 폭도 너무 넓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허락된 기회에 저는 특히 미사의 말씀전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63년 12월 4일은 전례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날입니다. 바로 이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이 선포되었습니다. 전례헌장의 선포로 그때까지 라틴어로만 거행되던 전례를 각 지역의 언어로 거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전례 안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여 ‘예비미사’와 ‘본미사’로 나누던 미사를 ‘말씀전례’와 ‘성찬전례’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말씀전례를 ‘예비미사’라고 한 것만 보아도 전례헌장의 전례개혁 이전에 미사 안에서 말씀이 성찬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전례헌장의 가장 큰 의미는 이처럼 모국어 사용과 성경의 보고(寶庫)를 개방한 것입니다. 특히 저는 성경의 보고가 개방되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례헌장 선포 이전에는 전례언어가 교우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이기도 했지만, 미사 중에 읽는 성경도 독서는 하나, 복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마태오 복음서만 봉독했습니다. 독서도 ‘서간경’이라고 하여 주로 바오로 서간을 읽었고, 구약성경은 그다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에서 말씀 부분과 성찬 부분은 상당히 불균형한 상황이었습니다. 전례헌장은 말씀전례를 주일미사에서는 독서 둘과 복음으로 확장하고 3년 주기의 독서집을 마련하면서, 제1독서는 구약성경에서, 제2독서는 복음을 제외한 신약성경에서 선택하고, 복음도 3년 주기에 맞춰 마태오, 마르코, 루카를 읽도록 배려했습니다.

 

 

미사독서와 강론

 

저는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업 가운데 종교 시간이 있었는데, 전도사님이 수업을 하시다가, 가톨릭에서 미사 때 읽도록 정해놓은 성경 목록은 정말 대단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 그 전도사님이 이야기한 성경목록이 바로 “미사독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제수품 이후 강론을 준비하면서 미사독서집이 전례개혁의 위대한 열매라는 점을 더 잘 느끼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을 잘 모른다는 평가가 있고, 또 우리 교우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 신자들이나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이야기하면 주눅이 들고, 때로는 그분들 말에 혹해 가톨릭교회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제가 신학생 때는 신부님들께서 평일강론을 별로 안 하셨습니다. 제 소속 본당 주임신부님께서는 매주 수요일 강론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하여 해주셨는데, 그런 신부님도 당시에는 그다지 많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사제가 된 다음에도 평일강론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확한 통계를 내본 적은 없습니다만 당시 약 절반 정도의 본당에서 평일강론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일강론이 아주 일반화되었고, 사제가 평일강론을 하지 않으면 교우들이 강론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사제 역시 평일강론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때로는 주일강론만큼이나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평일미사에 참석하는 교우들 대부분이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듯합니다.

 

또 강론에 대한 반응이나 평가도 꽤 자주 듣습니다. 어떤 신부님 강론이 좋다, 아니다, 재미있다, 지루하다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성경은 밥, 강론은 반찬

 

그런데 저는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교우들이 강론에 관심이 있는 만큼, 얼마나 성경 자체에 관심이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성경이 밥이라면, 강론은 반찬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반찬이 밥을 잘 먹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강론 역시 성경을 잘 알아듣고, 성경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쓰신 설교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교회(개신교를 지칭) 설교의 문제는 ‘위로설교’라고 합니다. ‘위로설교’라는 것은 회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곧 대중강사 같은 설교방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가톨릭교회에는 강론지침 같은 것이 있어서 개신교 설교의 부작용을 방지하지 않느냐고 썼는데, 아마 이 저자는 어떤 강론자료 같은 것을 보고 이렇게 쓴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위로설교’ 같은 강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고, 감정에 호소하는 정감 어린 강론은 귀에 쏙쏙 들어오고, 강론자 편에서도 그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어쩌면 이런 강론이 우리 교우들에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강론을 선호하다 보면 성경의 보물창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만 맴돌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매일미사”라는 아주 편리한 책이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다녀야지, 이렇게 얄팍한 책이 오히려 성경을 멀리하게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성경을 읽기만 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미사”는 그날의 독서와 복음뿐만 아니라, 사제의 기도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그날 전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미사 참례의 교과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좋은 교과서까지 있는데 예습을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일까?” 미사를 예습한다는 것은 자신이 참례할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천천히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도 치고, 이해가 안 가는 구절이 있으면 물음표도 표시해 놓는다면 미사 때 독서가 봉독될 때 더 잘 들을 수 있고, 사제의 강론도 더 집중해서 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시는 편지’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1947년 11월 30일에 발표하신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에서 전례의 ‘능동적 참여’라는 중요한 개념을 선포하셨습니다. ‘전례헌장’의 개혁은 ‘능동적 참여’를 증진시키려고 전례언어도 모국어로 바꾸고, 미사경문도 대화구조를 도입하여 사제와 회중이 주고받도록 했습니다.

 

또 성직자의 서품 단계였던 강경품과 시종품을 독서직과 시종직으로 하여 전례 봉사직을 교우들의 몫으로 배려하였습니다. 독서와 복사뿐만 아니라, 주일미사를 위해서는 성가대, 제대회, 헌화회, 안내봉사 등의 봉사자들이 각기 자기 역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미사에 참례하는 회중의 몫은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전례를 비롯해 그날 미사의 정신과 교회의 지향을 잘 알고 미사에 참여하고자 적극 준비하는 것이 바로 ‘능동적 참여’를 실천하는 회중의 몫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참례하는 미사전례는 오랜 준비를 거쳐 많은 학자들과 사목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개혁한 것입니다. 전례개혁의 목적은, 전례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라는 초대교회의 정신을 다시금 확고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례개혁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현행 미사의 말씀전례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께서는 성경을 ‘인간에게 보내시는 하느님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미사의 말씀전례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바로 나에게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 나에게 보내시는 하느님의 편지라고 알아들을 때, 미사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의 터전이 되고,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이 되며, 신앙과 일상생활을 이어주는 굳건한 고리가 될 것입니다.

 

* 윤종국 마르코 - 서울대교구 동작동본당 신부. 199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가톨릭전례학회 학술위원이기도 하다.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 라틴어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향잡지, 2011년 8월호, 윤종국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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