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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일곱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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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2 ㅣ No.462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일곱 성사

 

 

아버지의 유품

 

사제품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아버지께서 귀천하셨습니다.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아들의 사제수품을 지켜보시고, 보좌신부로서 첫 임지를 떠나는 아들 신부의 큰절을 받으신 다음, 당신께서 하실 일은 다하셨다는 듯이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저는 아버지께서 사용하셨던 “천주교요리문답”(1961년 재판)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1969년 초판)을 챙겨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책의 속지에는 전교회장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려고 여백마다 성경 구절과 참고 문구들을 빼곡히 적어놓으셨는데, 이는 지금도 저의 주석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은 사실, 적어도 저에게는 아버지의 열정과 성실을 느낄 수 있는 표징이며, 이승에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아버지와 저를 연결하는 끈이며, 아버지의 새로운 현존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표징, 사랑의 표징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뵙게 해달라는 필립보 사도에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8-11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을 보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의 살아있는 표징이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려고 예수님을 표징으로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표징인 예수님을 일으키시고, 그분 안에 머무르시며 하셨던 일은 이제 교회를 통하여 계속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세우신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셨던 사랑의 보화를 계속 나누어주는 ‘하느님 은총의 관리인’(1코린 4,1)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징인 교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사랑의 보화를 일곱 가지 성사로 식별하게 되었습니다. 일곱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연결하는 끈이며, 교회를 통하여 계속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현존이고, 언제나 살아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힘”(루카 5,17)입니다.

 

 

일곱 색깔의 표징

 

공기 중에 떠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빛이 닿아 물방울 안에서 반사와 굴절이 일어날 때 나타나는 색깔 때를 무지개 또는 색동다리라 합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없애버리시려고 홍수를 나게 하셨고, 노아의 방주로 최소한의 생명체들을 살려 놓으신 다음, 모든 생명체의 삶을 보장하시겠다는 다짐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두셨습니다(창세 9,16 참조). 이를 교회가 식별한 일곱 성사와 연관하여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셨던 하느님의 사랑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일곱 색깔로 드러나는 은총의 표징을 통해 계속 보장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하느님과 하느님의 자녀들을 은총과 믿음으로 이어주는 색동다리로서 우리를 ‘하느님의 소유가 된 거룩한 백성’(1베드 2,9)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를 위한 일곱 성사

 

교회가 식별한 일곱 성사는 우리 삶의 성장시기와도 비슷한 단계를 거치기도 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구원을 위한 은총의 표징이자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세례성사는 자연인을 물로 씻는 예식을 통해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탄생), 견진성사는 성령의 특별한 힘으로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여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며(성숙),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나누며 하느님의 자녀를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결합시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합니다(양식).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는”(2코린 4,7) 하느님 자녀의 나약한 처지를 인정하며, 죄인의 통회와 고백을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함으로써 하느님과 이웃과 화해하게 하며(개선), 병자성사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질병과 죽음의 고통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줍니다(치유).

 

혼인성사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과 존경으로 합의한 평생 공동 운명체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성하여 견고하게 해주고(가정 사명), 성품성사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특수한 방법으로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대신하도록, 교회가 선별한 봉사자들에게 거룩한 권한을 나누어주어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도록 합니다(교회 사명).

 

 

교회를 이루는 일곱 성사

 

일곱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현존과 힘의 표징으로 세우신 것이므로, 하느님의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축성되어, 하느님의 “거룩한 사제단”(1베드 2,5)이 되었습니다(보편 사제직).

 

한편 하느님의 자녀 가운데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심을 보증하고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집니다(직무 사제직). 이는 성품성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보편 사제직을 위하여 봉사합니다.

 

직무 사제(성직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자녀를 연결하는 성사의 끈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위임한 거룩한 힘을 계승하여 하느님의 자녀를 모으고 다스립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례와 일곱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봉사합니다.

 

그리고 보편 사제는 직무 사제들이 거행하는 전례와 일곱 성사에 참례하여, 전례와 일곱 성사의 고유한 은총을 체험함으로써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 그리스도 신비체로서의 교회를 이룹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또한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결합하고 성사 거행에 참례한 이들과의 일치를 드러내면서 교회를 이룹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고해성사를 보는 하느님의 자녀는 행한 악과 회피한 사랑을 지은 죄악에 대하여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과 화해합니다. 이는 죄악으로 단절된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와의 친교를 회복하는 것으로 교회의 생명을 디살리는 것입니다.

 

병자성사는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사제의 도유와 교회의 기도로 덜어주시고 낫게 하여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함으로써, 교회의 유대를 더욱 강화합니다(야고 5,13-15 참조).

 

끝으로, 혼인성사는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축성하고, 이들이 자녀들과 이루는 가정 안에서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게 하여 가정교회를 이루게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는 어떠한 처지에서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일곱 성사를 통해 거룩해지고, 교회는 일곱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며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성사 중의 성사, 성체성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에서는 일곱 성사를 “성찬의 희생제사와 함께 교회 전례의 구심점”(6항)이라고 표현하였고, ‘교회헌장’에서는 일곱 성사 중 성체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11항)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체성사는 일곱 성사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성사 중의 성사로서, 성체성사의 은총은 교회의 다양한 직무나 사도직 활뿐 아니라, 다른 성사들을 통해 얻게 되는 은총보다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사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그 무엇을 얻는 것이지만, 성체성사는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서 통째로 내 안에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만이 아니라 은총의 주인이신 분을 받아 모시는 것이 성체성사인 셈이지요.

 

 

하느님[聖]의 일[事]

 

군중이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체험한 뒤, 예수님을 쫓아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요한 6,28-30).

 

일곱 성사는 바로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지 않을까요? 일곱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 아버지의 표징으로 믿는 하느님의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일으키신 일곱 가지 보화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하느님[聖]의 일[事]입니다.

 

* 김계홍 요한 금구 - 198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광주대교구 월곡동본당 주임신부이다.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김계홍 요한 금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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