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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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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3-05 ㅣ No.92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상)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선교 수도회 한 회원(왼쪽에서 세 번째)이 유기서원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설립자 성 에오제니오 드 마제노).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Oblates of Mary Immaculate; O.M.I)는 프랑스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가 1816년 엑상 프로방스에서 설립한 수도회다. 

 

그의 정신은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였다. 그런만큼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의 카리스마는 "가장 버림 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것"이다. 

 

창설자 에우제니오는 1861년 5월 21일 마르세이유에서 세상을 뜨면서 회원들에게 "너희들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열정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고 유언했다. 그같은 '열정을 다하는 사랑의 정신'은 현재까지 세계 70개국에 5000여명 회원들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로 퍼져 있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선교 수도회로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도자들은 사도처럼 인류 구원 사업의 '협조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여기서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협력한다는 것은 '말씀'에 따라서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소외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를 뜻한다. 특히 교회가 요청하는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창립자는 평범하고 소박한 민중들과의 직접적이고 친숙한 친교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 '말씀의 빵을 나누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전통에 의해 확립한 하나의 선택이요 자세다. 그러한 선택과 자세는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항시 염두에 두고 있는 '사목'과 '선교'를 우선한다는 특성 및 복음 전파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며 그리고 선교 활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확고한 믿음의 근원이기도 하다.

 

특히 창립자가 남긴 정신적 유언인 "너희들 안에서는 사랑, 사랑, 사랑을 실천하라. 너희들 가운데를 벗어나면, 영혼들에게 열정을 실천하라"는 요청은 공동체적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회원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며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어진 선교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또 오블라띠인의 삶은 성모 마리아를 위한 삶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그분의 어머니이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그런 만큼 결국 근본적으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봉헌 선교 수도회'라는 수도회 이름의 뜻 처럼 마리아를 항상 어머니로 여기고 마리아의 특성을 이어받고 있는 수도회라 할 수 있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 재산, 가정, 현세에서 안주할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를 버리고 선교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생활안에서 증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9월 1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하)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 실천을 통해 카리스마를 한국 교회에 널리 펼쳐나갈 계획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에서 참석자들이 토의하고 있다.

 

 

오블라띠회의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죽음과 폐허의 모습만을 남겨놓은 대혁명에 의해 교회는 분열과 박해아래 놓이게 되고 사회 전체는 비 그리스도화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처지에서 오블라띠회 창립자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젊은이들과 죄수들 그리고 엑상 프로방스 지역의 천민들 사이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또 그리스도를 위해 평생을 바치길 원하는 사제들을 모았다. 

 

이들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가능한한 모든 방식과 수단을 통해 '본당 선교- 공동체 피정'을 실시했다. 복음 전파의 지역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이기도 했던 이 활동은 더불어 세계적인 수도회로 개방되는 씨앗이기도 했다.

 

"비록 우리들의 수가 적고 더욱 더 필요한 요구가 우리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교적 열의를 제한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속에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이 있다."

 

활동에 있어 첫 번째 규칙을 이같이 밝힌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기 바라는 이들은 재산과 재능, 자신의 여가와 영혼.육체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며 교회와 이웃의 성화에 바칠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하면서 선교 단체 구성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선교를 위한 단체 구성은 복음 전파에 보다 효과적으로 부응하려는 의지와 사도적이며 공동체적 삶을 통해 성화에 이르려는 깊은 열망을 포함한 것이었다.

 

에우제니오는 수도회 첫 번째 목적을 농촌 지역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와 평신도 양성을 위한 본당 영적 피정 지도 등으로 삼았으며 신학교 운영과 청소년 사목 등으로 사도직 분야를 확대해 갔다.

 

초창기 수도회에 원동력과 새로운 활력을 부여했던 것은 '백성들에게'라는 전도 임무의 방향이었다. 1841년 캐나다로 수도자들을 파견한 에우제니오는 라틴아메리카에 이어 스리랑카 등 아시아 전역으로 선교를 폈고 남아프리카에도 진출했다. 이런 가운데 오블라띠회의 선교 역량은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북극에서 호주 토착민, 파라과이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지구 구석구석으로 뻗쳐 나가게 됐고 수도자들 외에 오블라띠회 영성을 사는 27개의 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진출은 1990년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요청으로 이뤄졌다.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는 수도회 목적대로 한국 사회안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작업을 시작한 이들은 현재 노숙자 무료급식소와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사목을 중심으로 병원사목 대학교 젊은이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소 계발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오블라띠회는 이를 통해 남한은 물론 북한과 중국 선교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또한 평신도 영성지도, 젊은이 사목 강화 구상과 함께 끊임없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오블라띠회의 카리스마를 한국 교회에서 펼친다는 계획이다.

 

※ 홈페이지: http://www.oblates.or.kr [가톨릭신문, 2004년 9월 19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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