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62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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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6-23 ㅣ No.1794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홀수 해

창세기 13,2.5-18                마태오 7,6.12-14

2015. 6. 23.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편애

세상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 잘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하는 일마다 좋은 결과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꽤나 애를 많이 쓰는데도 그가 하는 일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겨운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차별이 생길까요? 대답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대답을 찾는다면 어떤 말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물을 때, 대답이 나올 방향은 그 사람 개인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다 남의 탓에서 대답을 찾기가 쉽습니다. 허나, 정말로 그래도 좋을까요? 이렇게 다시 물으면, 대답은 아니오!’이겠지요?


오늘 우리는 독서에서 사람을 편애하는 하느님을 봅니다. 그저 독서에 나오는 내용만 살피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겠지만, 아브람은 도대체 무슨 일을 잘했기에 그가 하는 일에는 늘 축복이 있을까 하고 질문합니다. 하느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대답을 들어도 아쉬움은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람에게 주어진 축복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편애를 말합니다. 나에게는 왜 그렇게 좋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고, 그렇게 남을 특별히 대우하는 하느님을 따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저 멀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왜 아브람을 편애하고, 특별히 대우하셨는지 우리가 아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로 보면 우리가 아쉽다고 하겠지만 결과가 아니라 이미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아브람의 삶을 떠올린 후대에 살던 기록자가 뭔가 우리가 그 의도를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확한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아브람이 역사시기에 등장한 것은 3850년 전이고, 글로 이 이야기가 기록된 것은 길어봐야 3000년 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만큼 쉽게 알 수 있는 얘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축복을 얻을 사람이 따로 정해져있는지는 모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과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고 돼지더러 그 진주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돼지에게나 배고픈 이에게는 진주보다 배부르게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기 쉬운 길도 크고 널찍하고 힘겨운 일을 말하지 않는 길, 신앙의 길이 아니라 세상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길은 현재의 길이고, 미래의 길은 아닙니다. 배가 고프고, 다른 이에게 청할 것이 많아야 신앙도 제대로 드러낸다는 안타까운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만 살아도 아무런 문제는 없을까요? 참된 신앙인의 길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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