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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 천주교회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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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환 [isdol] 쪽지 캡슐

2002-02-28 ㅣ No.15

8. 기해박해 (헌종5년 서기 1839년)

 

( 1838년부터 1840년까지 3여년에 걸친 박해 )

1834년 재위 34년 만에 순조가 돌아가시고 불과 8세의 어린 몸으로 왕위에 오른

분이 바로 헌종이다.

국왕이 나이가 어려 순조비였던 순원왕후의 수렴정치가 시작되었고, 처참한

박해가 시작된 것은 1839년 이지연이 집권하면서 부텨였으며 이 때 바로 79위

복자중 70명의 순교 복자를 낳게 되었다.

그만큼 박해는 계획적이리 만큼 엄하고 잔인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기해 박해라 하여 반드시 기해년(1839년)에 벌어진 것은 아니다.

1838년부터 1840년까지 3여년에 걸친 박해이다.

헌종 5년에 우의정 이지연을 중심으로 대박해가 착수케 되는데 이때 소위

묘당회의가 있었다. 순원왕후 김대비를 모시고 어전회의가 열렸을때,

좌포장 남헌교가 사교금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고 우의정 이지연이 이를

저지하여 엄벌을 내세웠다.

 

그 결과, 김대비는 ’사학을 일삼고 있는 천주교인들을 한사람도 남김없이

없애버리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울뿐 아니라 온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

라고 명을 내렸고 양력 4월 20일에 정식으로 박해 법령시 천하 또한, 박해령이 내린 후 최초로 순교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정 쁘로따시오

인데, 그는 1839년 4월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견디다못해 배교를 함으로써

풀려났으나, 즉시 뉘우치고 스스로 관가에 출두하여 배교를 취소하고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15세의 어린나이에 순교한 복자 이정희 발바라,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읜 고아의

몸이었으나 열심한 교우였던 그의 아주머니 순교자 이 막달레나와 이 발바라의

훈도로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다 그만 검거되어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러나 비위생적인 감방에서 그만 염병이 옮아 1주일동안 병고에 시달리다

귀천하였다.

기해 박해때 순교하신 세분의 성직자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땅 신부가

순교하였다. 세분의 성직자는 군문효수의 선고를 받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집행하였다. 20여일이 지난후에 삼성산에 모셔졌고 명동성당(1901년)을 거쳐

지금은 양화진 성당에 모셔져있다.

 

1839년 9월 21일 3분의 성직자가 순교하신 다음날 정하상,유진길 참수 당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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