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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평신도 영성: 더욱더 자유롭게 사랑을 실천한 근대의 평신도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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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6 ㅣ No.501

[평신도 영성 : 인물] 더욱더 자유롭게 사랑을 실천한 근대의 평신도 영성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나선 모든 이들, 신앙의 열정을 펼쳐나간 이들 모두를 부르는 보편적 이름으로, 성령의 부르심에 민감한 자발성을 그 특징으로 하며, 시대를 넘어서 구체적인 성소와 다양한 형태의 복음전파를 이루도록 양육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평신도들의 영성은 교회의 혈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로마제국 시대 이후 유럽의 문명화에 기여했다면, 중세의 영성은 개인의 이성에 눈뜨고 자유의지로 신적 사랑의 합일을 지향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자선과 교육의 확대에 헌신한 이들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지 정복으로 상징되는 근대는 인문주의와 인간중심적 사고를 꽃피운 시대라 할 수 있으며, 이 시대의 평신도들은 더욱더 자발적인 영적 각성을 통해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적 영성을 실천하였다. 곧 봉쇄수도원을 넘어서 세상의 필요에 응답한 평신도들은 인문주의가 이루어낸 의식혁명을 바탕으로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존엄한 인간의 삶을 실현하고자 자선(현대적 의미의 복지)과 교육의 확대에 헌신한 이들이었다.

1633년, 빈첸시오 드 폴과 함께 귀족부인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사랑의딸회’를 세운 루이즈 드 마리약(1591-1660년)은 공동체의 신비 속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여성들이 영적 열매를 사회 안에서 나눌 수 있도록 이동이 가능한 활동수도자의 삶을 개발하였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병원과 고아원을 운영하고, 어린이를 교육하는 프로그램과 직업학교를 시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발생한 피난민과 죄수들을 돌보고, 노인들을 돌보는 호스피스를 조직하였다. 그가 창립한 사랑의딸회의 수녀들은 공동체의 신비를 사는 여성들로서, 사회적인 필요를 위한 헌신이 바로 영적 실천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병자들의 집을 수도원 삼아 헌신한 이들이었다.

프랑스의 사제 빈첸시오 드 폴(1581-1660년)은 1608년 당시 파리의 영적 지도자인 피에르 드 베륄 신부를 만나면서 쇄신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가난한 본당의 사제로서 가난 때문에 신앙에도 무지한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유 있고 선한 귀족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가난퇴치운동을 시작하여 현대의 관점에서 복지운동을 일으켰으며, 그의 영적 활동은 파리의 명문귀족 출신으로 결단력을 가진 조직가인 젊은 미망인 루이즈 드 마리약을 만남으로써 구체적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빈첸시오의 영성으로 사는 평신도

200여 년이 지나 파리대학의 법학 교수였던 안토니오 프레드릭 오자남(1813-1853년)역시 빈첸시오의 영성으로 사는 평신도들을 조직하였다. 가난한 이들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비유에서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30-37)처럼 살려는 빈첸시오회의 영성은 아래의 선언 안에 잘 담겨있어 한국교회의 본당활동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빈첸시오회의 영성을 알게 한다.

“나눔은 결코 동냥이나 선사와 다르며, 그것은 상부상조와 교환으로 이루어짐을 안다. 우리는 정의에 대한 욕구와 인류의 결속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사회 정의를 방해하는 것들, 굶주린 불행한 사람들, 미개발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최대의 신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을 악표로 보고 이를 배척한다.”


여성 활동수도회의 기원은 평신도 여성 공동체와 여성교육

근대 평신도 영성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성은 신앙에 바탕을 둔 여성교육이라 하겠다. 이탈리아 북부 가르다 지방의 안젤라 메리치(1474-1540년)는 귀족 출신으로 이스라엘과 로마 순례를 다녀온 뒤에 12명의 여성들과 함께 평신도 공동체를 이루었다. 함께 살거나 수도복을 입지 않는 느슨한 이 공동체의 회원들은 함께 병자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가난한 어린 소녀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 현명한 여성들과 지도를 받는 젊은 여성들의 모임으로 나뉘어 운영하던 공동체는 1530년 우르술라수도회로 승인되었다. 1620년 무렵 프랑스에 65개의 수도원, 프랑스혁명 직전에는 300여 개의 수도회로 발전하여 봉쇄수도원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여성인력을 양성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봉쇄수녀회를 요청하였고, 여성들이 교리를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을 사도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으로 의심하였지만, 1594년 클레멘스 8세 교황은 여성교육을 승인하였다.

안젤라 메리치의 영적 통찰력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봉쇄가 아닌 자유와 자발적 선택에 따라 더 활동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에 이르는 대다수 여성 활동수도회의 영적 기원은 평신도 여성들이 이루어낸 자발적 공동체와 여성교육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하겠다.

안젤라 메리치와 함께 기억할 수 있는 평신도 영성가들은 뒤에 그 활동의 결실로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한 여성들이다. 프랑스의 귀족 미망인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1572-1641년)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와 함께 친교를 맺고 활동했던 영적 동반자로, 그들이 맺은 우정에 관해 식별하려고 오랫동안 기도를 했고, 마침내는 엘리사벳을 방문했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을 따라 방문수도회를 설립하고 병자들을 방문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메리 워드(1585-1645년)는 예수회를 본받아 여성들도 사도적 활동을 하려는 열망을 실현하는 공동체 활동을 계획하고 헌신했다. 하지만 그의 영적 유산이 정착하고 그가 예수수도회의 창립자로 인정을 받은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1909년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승인된 다음이었다.

여성들의 활동은 신대륙에 이르렀다. 마르그리트 부르주아(1620-1700년)는 프랑스를 떠나서 1653년에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병자들을 돌보고 무료학교를 시작하여 노트르담교육수도회로 열매를 맺었다.

프랑스의 엄격한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마들렌 소피 바라(1779-1865년)는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1800년 학교와 수도원을 동시에 시작하였다. 성령과 함께 전진하는 삶을 살아낸 소피 바라의 정신은 오늘날 12개국에서 평등한 여성교육을 실천하는 예수성심여자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왜 영적 각성을 한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여성인가? 왜 평신도 남성은 영적 모델이 되지 못하는가? 평신도 영성에 관한 글을 준비하면서 줄곧 되물어온 질문이었다.

대다수 영적 가르침에 눈을 뜬 남성들은 사제의 길을 선택한 것이기에 평신도 중에서 영적 모델을 찾으려면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게 되는 것이고, 그 여성들의 가르침과 활동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로 형성될 때에는 대부분 수도회의 성격으로 교회의 승인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질문들은 현대의 평신도들에게 넘기기로 한다.


근대 평신도 영성가들의 공통적인 특성

근대 평신도 영성가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첫째, 사회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그들의 영적 카리스마를 실천하는 동시에 그들의 영적 유산을 새로운 수도원운동으로 남긴 것이다. 둘째, 여성 평신도들의 자발적 활동을 통해 여성교육에 질적, 양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셋째, 사제들과 평신도가 더불어 활동하는 동반자로서 관계형성이 가능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주교학자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년)가 「신심생활입문」에서 평신도 영성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한 것 역시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신앙을 실천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평신도’라는 범주 안에서 차별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그 확대된 지평을 전망한 것이라고 하겠다. 곧 평신도들은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따라 더욱더 넓어진 세상에서 더 자유롭게 신대륙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실천을 이루어낸 것이다.

나아가 근대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정복전쟁과 함께 전해져 그 선두를 이끌었다는 역사적 반성의 이면에서 진정한 인본주의를 실천하는 평신도들의 삶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이끄시는 성령을 따르는 근대 그리스도교의 생생한 모습이라 할 수 있으며, 평신도들이 바로 그 힘찬 혈맥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다.

* 최우혁 미리암 - 평신도 신학자. 교황청 ‘데레사’대학과 ‘마리아’대학에서 영성과 마리아론을 공부하고, 에디트 슈타인의 사상과 영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최우혁 미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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