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세계교회ㅣ기타

태국교회의 성탄과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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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02 ㅣ No.109

태국교회의 성탄과 새해 (상) 불교의 땅 태국에도 "아기 예수 나셨네"

 

 

태국정부관광청 초대로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타레농상대교구 성탄 축제와 순교 성지를 둘러봤다. 불교의 땅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타레농상대교구는 30여년 전부터 성탄대축일에 구유와 별을 장식한 차량으로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태국이 '입헌군주국'이며 '불교'의 나라임을 확인시켜줬다. 거리마다 불교사원과 사당이 있고, 현 푸미폰 아둔야뎃 라마 9세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있다. 불교와 국왕은 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특히 국왕은 태국과 동의어다. 화폐에서 조각상까지, 건물에서 거리까지 새겨져 있고 붙어있는 국왕의 얼굴은 그가 태국의 모든 장소에 편재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딱딱한 태국의 첫 인상은 이튿날 태국 북동부 '이산'(I-San)지역을 도착하자 마자 사라졌다. 메콩강을 끼고 형성된 비옥한 평야지대인 이 지역은 주민들의 맑고 깊은 눈동자 만큼이나 순박한 정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타레농상대교구

 

이산 지방은 특이하게 태국 여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가톨릭 교회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태국 가톨릭교회는 현재 방콕대교구와 이산 지방을 관할하고 있는 '타레농상(Thare-Nonseng)대교구' 등 2개 대교구와 8개 교구가 있다.

 

타레농상대교구는 태국 북동부 나콘파놈(Nakhonphanom)ㆍ묵다한(Mookda harn)ㆍ칼라신(Kalasin)ㆍ사콘나콘(Sa konnakhon) 등 4개 지방을 관할하며, 지역인구 320만여 명 가운데 16.3%를 차지하는 52만여 명이 가톨릭 신자다. 대교구내 본당은 74개가 있고, 사제 수는 58명, 수녀는 136명이 있다.

 

이 지방에 가톨릭 신앙이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라고 한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베트남과 라오스의 신자들을 이끌고 메콩 강을 건너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가톨릭 교세가 급속도로 전파됐다.

 

피터 피리야(Peter Phiriya) 신부는 "순박한 농부일수록 미신을 많이 믿는데 서양 신부들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해서 아마 더 많은 농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듯하다"며 "현재도 많은 농민들이 개종해 교세는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24일 성탄 전야. 메콩강 국경 지대 '농상'(Nonseng)마을 성 안나 성당을 방문했다. 황토빛 메콩 강에 어둠이 채 앉기도 전인 오후 5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가 시작됐다. 성당에는 300여 명의 신자가 자리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탓에 노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가가 태국어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작된 미사는 좀처럼 몰두할 수 없었다. 성당 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아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다. 또 미사 내내 제단 주변으로 주인없는 개가 어슬렁거리는가 하면, 한 취객은 아예 성당 바닥에 드러누워 끊임없이 술주정을 해댄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괘념치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합장한 채 진지하게 미사에 몰입할 뿐이다. 아마 이 정중동의 심상은 생활 곳곳에 배어 있는 태국인들의 종교심일 것이다.

 

 

별 행렬 축제

 

타레농상대교구의 가장 큰 성탄 축제는 바로 '별 행렬'이다. 차량에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장식들을 꾸며 시내 곳곳을 누비는 '카퍼레이드' 행사다.

 

30여 년 전부터 매년 여는 이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방청으로 확대돼 몇년 전부터는 대교구와 지방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이제 가톨릭신자 뿐 아니라 주민 축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가장 아름답게 꾸민 차량에 2만바트(한화 약73만원) 상금이 주어져 불교신자들도 많이 참가한다.

 

- 농상본당 신자들이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친 후 구유를 경배하고 있다.

 

 

이처럼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심사기준은 엄격하다. 성탄 축제 참가 차량은 가로 길이가 1.5m가 넘고 어둠을 밝힐 전구가 설치된 '별'을 반드시 장식해야 한다. 또 차량 앞쪽에 태국 국기와 교황기를 달아야 하고, 성탄 구유와 성탄 축하 문구가 설치돼야 하며, 산타클로스가 차량에 탑승해야 한다.

 

올해는 12월 25일 타레농상대교구청이 있는 사콘나콘에서 이 행사가 열렸다. 참가 차량은 모두 100여대. 태국의 명물인 오토바이 택시 '뚝뚝이'부터 승용차, 트럭까지 참가 차량도 다양했다. 장식도 바나나 껍질에 진흙으로 만든 구유에서부터 살아있는 염소까지 다채롭다.

 

상카우 마을에서 출전한 워라우트(바오로, 16)군은 "신자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차량을 장식했다"며 "꼭 우승해 상금을 성당 건축 기금으로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솜야트 신부는 "이 축제가 있기 전에는 성탄 전야때 신자들이 별모양의 초 장식을 들고 가두 행진을 했다"며 "한 주교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행사가 교구뿐 아니라 지역 전통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카퍼레이드는 장식 차량 심사를 모두 마치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저녁 7시부터 시작됐다. 교구장 루이스 깐니엔 산티숙니란 대주교를 비롯한 내빈들이 탄 차량을 선두로 100여 대의 차량이 뒤를 이었다.

 

차량별로 산타클로스를 분장한 이들이 구경꾼들에게 사탕을 던지자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사탕을 받기 위해 높이뛰기에 여념없다.

 

골목마다 전깃줄이 널부러져 있어 차량 옆에서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뛰어가면서 전선을 떠받치는 청년들 모습도 이채롭다.

 

뚝뚝이에 구유를 장식한 한 노점상은 카퍼레이드를 하면서도 열심히 한치를 구워 판다. 보는 이의 마음에도, 참가하는 이의 마음에도 이날 만큼은 크리스마스 정취에 흠뻑 젖어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 지역 축제로 성탄 행렬이 개최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3시간여 만에 숨쉬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채우던 캐럴과 성탄 장식의 불빛이 사라졌다. 텅빈 정적 속 침묵이 이명으로 마음 속 길게 여운을 남겼다.

 

"메리 크리스마스. 불교의 땅 태국에도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평화신문, 2009년 1월 4일, 리길재 기자]

 

 

태국교회의 성탄과 새해 (하) 순교자 품은 작은 마을, 신앙의 빛 발하다

 

 

- 송콘 성당 제단 뒷편에 안장돼 있는 순교 복자 7위의 유해들. 밀랍 처리해 유리관 안에 안장해 놓아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송콘 가는 길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680여 km. 북동부 이산 지역 '송콘'(Songkhon)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살아 생전 꼭 가야할 순례지'로 손꼽히는 태국 가톨릭 교회 최대 성지이며 타레농상대교구의 유일한 순교 성지다.

 

이산 지역을 2만 5000분의 1로 축적한 관광지도에 조차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인 송콘은 이방인 순례자에게 결코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곳을 순례하기 위해 먼저 인접 도시'묵다한'(Mukdahan)에 도착했다. 메콩강을 사이로 라오스 제2의 도시인 수완나켓과 마주하고 있는 국경도시다. 태국말로 '진주'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묵다한은 태국에서 가장 먼저 아침 해가 떠오르는 고장이다.

 

- 송콘 성지 성모상. 태국 전통의상을 입은 화려한 성모상이 이채롭다.

 

 

우리나라 '읍'정도 되는 규모의 묵다한은 여느 국경도시와 달리 깨끗하고 조용했다. 주민들도 순박하고 부지런하다. 외국인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메콩 강변을 끼고 형성된 국경 시장도 시끌벅쩍한 흥정소리 하나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인데도 강변의 노점상인들이 분주하게 손님맞을 준비를 한다. 이슬을 머금은 대리석 보도블럭이 차갑지도 않은 듯 맨발의 아이들이 부모를 도와 대나무잎으로 싼 음식물을 나른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도 불평없이 그저 수줍게 웃기만 한다. 궂은 날씨 탓에 장관이라고 말하는 메콩강 일출을 보지 못한채 서둘러 송콘 성지로 발길을 돌렸다.

 

묵다한에서 송콘까지는 40여 km 거리이다. 낯선 이국에서 만난 시골 정취는 무상을 전하는 생명들의 몸짓으로 아름다웠다. 차창을 통해 짙고 옅은 안개를 보기도 하고, 이름 모를 열대의 큰 나무들이 바람 타는 것도 보고, 사계를 두고 변해가는 숲의 색조에 경탄하기도 했다.

 

또 추수를 마치고 맨몸을 드러낸 논들과 그 위로 한가로이 마른 풀들을 뜯어먹는 소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그림자처럼 따라오며 갖가지 조화를 이루는 구름을 보기도 했다. 회색 도시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 기자에게는 송콘으로 가는 이 시골길이 '몽환의 길'이었다.

 

 

송콘 순교 성지

 

이국 풍경에 도취해 1시간여 꿈꾸듯 달리다 보니 벌써 송콘 성지에 도착했다. 태국 사람들은 이곳을 불교 사원처럼 성스러운 장소라 해서 앞에 '왓'(Wat)을 붙여 '왓송콘'이라 부르고 있었다.

 

- 송콘 성지 성당 제대. 예수 부활상과 메콩강변의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있는 유리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메콩강을 끼고 있는 이 성지는 적벽돌 단층 구조물 안에 전면이 유리로 된 성당과 정원 외벽에 꾸며진 십자가의 길 등 비교적 단조롭게 조성돼 있다.

 

'태국 순교자 7위의 성모 성당'으로 이름 붙여진 이 성당은 하루 종일 사방에서 들어오는 따뜻하고 밝은 태양광으로 인해 마치 천상 세계의 성모님 품을 연상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검고 흰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은 단조로우면서도 화려하다. 제대 뒷편에는 바로 이곳에서 순교한 순교 복자 7위의 유해가 밀랍으로 처리돼 유리관 속에 안치돼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1989년 10월 22일 시복된 이들 순교자들은 시퐁(Siphong, 필리피, 33)ㆍ필라(Phila, 아녜스, 31) 수녀ㆍ캄방(Khambang, 루치아, 23) 수녀ㆍ풋다(Phutta, 아가타, 59)ㆍ부트시(Butsi, 체칠리아, 16)ㆍ캄파이(Khampha i, 비비안나, 15)ㆍ폰(Phorn, 마리아, 14) 등 7위다.

 

2008년 12월 말 현재 주민 3000여 명 가운데 98%가 가톨릭 신자일 만큼 교우촌인 송콘 마을에 복음이 처음 전래된 것은 1880년대 초반 부터였다.

 

1841년 방콕(당시 샴)대목구가 설정된 후 태국의 중부와 동부, 서부 지역에 중점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던 태국교회는 1881년 1월 2명의 사제를 파견해 태국 북부와 라오스 지역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이후 태국교회는 1899년 3월 라오스 대목구를 설립, 분할한 후 태국 남서부 지역에 초점을 두고 선교 활동을 수행했다.

 

- 성탄 전야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지도교사 인솔로 성지를 방문, 순교복자 7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무렵 조그마한 시골 농촌 마을인 송콘에도 가톨릭 복음이 전래됐다. 점차 성장하던 태국 가톨릭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큰 어려움을 맞았다. 태국 내에 번진 반유럽국가주의 운동으로 인해 국수주의자들이 '프랑스의 요새'와 같이 인식됐던 가톨릭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태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불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았고, 교회는 약탈되거나 폐허가 됐다. 이 시기 송콘의 순교자 7위도 묵다한에서 온 무장경찰에 체포돼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메콩 강변에서 총살돼 순교했다.

 

성탄 전야인데도 적지않은 태국 신자들이 이곳을 순례, 기도하고 자신들의 소망을 적은 쪽지를 복자들의 유해 앞에 두고 갔다.

 

사몬카이 카사싱 주임신부는 "송콘 성지는 매해 수많은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태국 내 가장 큰 성지"라며 "한국 순례자들이 태국 여행 중 이곳을 순례한다면 더없는 기쁨으로 맞을 것"이라고 고대했다.

 

16세기 중반 도미니코 수도회 2명의 선교사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성장한 태국 가톨릭교회는 2008년 현재 신자 32만6898명, 대교구 2곳, 교구 8곳, 본당 437곳에, 추기경 1명, 대주교 1명, 주교 8명, 교구 신부 454명, 수사 111명, 수녀 1389명의 교세를 나타내고 있다.

 

태국 가톨릭교회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교육 및 공공복지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베트남ㆍ라오스ㆍ캄보디아ㆍ미얀마 등지에서 피난온 난민들을 돕는 일에 앞장 서고 있다. [평화신문, 2009년 1월 11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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