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수도 ㅣ 봉헌생활

경향 초대석: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부회장 차영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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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3-01 ㅣ No.119

[경향 초대석]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부회장 차영임 수녀


봉헌생활은 나의 운명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은가 자 지구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 다음 날인 12월 28일은 교회 전례력으로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이지만 주일과 겹쳐 기념하지 않았다. 가자의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도 그렇게 잊히는 걸까? 국경지대에서 망원경으로 폭격을 구경하며 웃는 이스라엘 젊은이들 모습과 대비된 사진 한 장, 세 아이의 주검 앞에서 목 놓아 울부짖는 가자의 아버지 모습을 본 뒤로 연민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오는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다. 성탄 후 40일, 성모 마리아께서 율법의 규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신 것(루카 2,22-38)을 기념하는 날로, ‘봉헌생활의 날’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봉헌생활을 “형제자매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행동을 일깨워주는 ‘살아있는 기념’”이라고 하셨다. 특히 젊은이들이 봉헌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담 안에서 사는 사람’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수인들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여 스스로 수도원 담장 안으로 들어간 이들 말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지역에 잘 알려진 성 빈센트 병원이 있다. 병원을 통과해 뒤쪽으로 들어가니 붉은 벽돌담을 두른 수도원이 나지막이 자리 잡고 있다.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다. 총원장 차영임 마리아 가타리나 수녀를 만났다.

 

2007년 통계로 우리나라에는 153개 수도회(여자 107개, 남자 46개), 11,400명의 회원이 있다. 그리고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www.brothers.or.kr)와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www.nuns.or.kr)가 있다. 차영임 수녀는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부회장이다. 수도자들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입회한 지 34년, 쉰여덟 살이란다. 올해가 장상연합회 출범 40년이라고 일깨우자 “안 따져보았다.”며 웃는다. 맑은 목소리, 밝은 웃음이 수도원 응접실처럼 정갈하다.

 

입회 동기 -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자랐기에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고통을 받을까?’를 늘 생각했다. 197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동안의 삶을 돌아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과 죽음을 보면서 하느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고통과 죽음에 대해 질문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데 왜 인간은 저렇게 고통스러운가?’

 

나이로 봐도 내 삶을 바라보아야 할 시기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영원하신, 사랑이신, 자비하신 하느님에 대한 동경을 내 삶의 목표로 정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수도원에 가서 일생동안 하느님을 만나보리라 마음먹었다. 고통에 대한 답은?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얻었고 아직 다 얻지 못한. (웃음)

 

봉헌생활을 좀 더 근원적인 투신의 삶이라고 하는데 - 하느님께 더욱 철저히 투신한다, 귀의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두 하느님을 향해서 가지만 수도자들은 복음삼덕을 서약하며 자기 인간성 전체를 오로지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이 이 땅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에 더 전적으로 투신하고자 한다. 일반 신자들보다 얼마나 더한 투신인가를 재기는 어렵다.

 

봉헌생활은 동양적인 사고로 말하면 ‘운명이 아닐까?’ 싶다. 더욱 철저히 살아야겠다는 의도적인 지향이 물론 있기는 하지만, 살아갈수록 봉헌생활은 거역할 수없는 흐름, 운명처럼 느껴진다. 하느님과 철저히 만나고 투신하기를 지향하지만, 살아갈수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느껴져 운명이란 말이 다가온다.

 

창설자의 성령체험을 따라 살고 있나? - 수도회들이 창설자의 카리스마를 따라 살아가지만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변화된 시대 안에서 창설자들의 카리스마를 재해석하고 살아가는 재창조가 요청된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새로운 창설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러면서 수도회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변화의 핵심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새롭게 쇄신되어야 할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의료 사도직도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국가가 다 못하던 시대에 많은 수도회가 병원을 운영해 왔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고 경쟁 체제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도전이 없지 않다. 안정된 것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 떠나는 것도 의미있다. 그러나 현재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이나 기업의 경쟁 정신으로 한다면, 그 속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사람들을 돌보는 모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는 빈센트 성인이 환자들을 애정으로 돌본 데 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에 더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이 시대에 아직은 이런 병원이 필요하다. 우리 수도회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요셉의원처럼 작은 무료진료 의원을 운영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소외되는 계층, 가난한 계층에 신경을 써야 한다. 사회 특성상 정착을 하고 조직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놓고 새로운 사도직으로 나아가는 전폭적인 변화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변화하는 시대마다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 기존의 것들에 새로운 변화를 적용하여 어떤 징표가 되어야 하는지 계속 쇄신 적응해가면서 소외된 부분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느 시점에 가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무르익은 식별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투신하는 삶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정결, 청빈, 순명인데 - 그 세 가지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스승으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한 인간인 내가그분 앞에 서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정결, 청빈, 순명 이 세 가지는 전적으로 인간성 모두를 하나로 통일해서 하느님 앞에 있음, 하느님을 따름이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 일 안에서 이 세 가지는 사랑하는 일에 더불어 따라오는 일 같다. 결혼 않고 혼자 사는 것만이 정결의 의미가 다는 아니다. 다른 것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고 오롯한 지향으로 하느님을 향해서 매순간 서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오롯하게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의 사랑, 내 의지, 여러 가지 다양하게 일어나는 것들을 다스려서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 순명 아닐까?

 

이즈음은 전통적인 가치들도 도전을 받고 있다 - 정결, 청빈, 순명 이 세 가지는 대중화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는 더더욱 도전받는 가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런 가치를 현실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조명해 줄까 하는데 어렵다. 그렇다고 대중이 선호할 수 있는 가치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멀리 있는 가치도 아니다. 대중적으로 선호하거나 누구나 살아갈 수 있는 가치는 아니지만, 우리가 빛과 소금 구실을 하여, 또 다른 새로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제시해 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보다 수도원을 개방하는 듯한데 -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분도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이 많다. 사회의 관심이 커져 템플스테이처럼 수도원체험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수도원 구조가 적합하지 않지만 조금씩 연다. 물질문명 때문에 사람들의 내면이 허해지고 인간성이 상실되어 더 근원적인 가치에 대한 욕구가 있기에, 우리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수도생활은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도회에 들어오지 않고도 수도원의 삶을 접하고 수도원의 기도나 삶을 공유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피정의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책자도 펴냈다. 옛날보다는 수도원이 많이 열렸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정도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베일이 들썩일 적마다 드문드문 보이는 그런 정도의 신비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웃음)

 

수도회의 예언자적 특성이 더 드러나야 - 수도자들이 예언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 자각하고 있다. 이 시대의 가난도 옛날과 달리 정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정의평화, 시국문제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획일화시켜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판단들은 각 개인이나 공동체가 하겠지만 참석이나 불참 여부를 떠나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도회들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문제나 정의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작년에 장상연합회 총회에서 의견을 나누었다.

 

특별히 이즈음 각 수도회에서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것은 생태에 관한 것이다. 2007년 로마에서 세계 수도회 총장들 회의가 열렸고, 한국과 일본이 대륙별로 나누어서 하는 회의를 하고 있는데 작년에 한일 공동으로 가진 주제가 ‘생태적인 환경을 사는 우리’였다. 생태 시대에 우리가 청빈, 정결, 순명을 어떻게 시대의 표징으로 인식하고 살아갈 것인지 생각한다.

 

수도자로서 고민은? - 음! 고민 없는 행복이 있을까? (웃음)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더욱 철저히 사느냐 하는 것이다.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못다 이룬, 못다 만난 이런 것들 안에서 고민한다. 개인으로나 공동체로나 그 시대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가는 것이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끝나는 시점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가보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있어야 되는가 하는 부분이 제일 큰 고민이다.

 

주교회의 총회 때마다 간담회를 하는데 - 그동안은 수도회 장상들과 주교님들의 만남이 간담회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상당히 깊이 있는 대화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교님들께서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 수도자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해서 예비신자들에게 수도원을 개방하고, 책자도 만들었다. 작년 같은 경우는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지 주교님들에게 말씀드리고 나누었다. 격의 없이 만나는 자리였는데 올해부터는 간담회 형식을 좀 넘어설 것 같다.

 

매여있지만 자유로운 수도자들이 모든 일에 좀 더 과감하게 나서주기를 -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겠다. (웃음)

 

“기도하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기도를 떠나라.”는 빈센트 성인의 가르침(21쪽) 얘기를 꺼내자 차 수녀는 “그게 빈센트 영성의 매력이다. 그들은 ‘너희의 가난한 주님들’이라고 빈센트 성인은 말씀하셨다.” 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은 복음화 활동인 동시에 복음의 진정성에 대한 확신, 봉헌생활에서 항구한 회심을 일으키는 촉매제다.” 교황문헌 “새천년기”에 나오는 글귀를 화답 삼아 건네고 뜰로 나갔다. 서산에 지는 해가 불길 같은데 바람은 싸늘하다. 환자처럼 짚으로 둥치를 싸매 보호한 겨울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고뇌하던 20대 시절처럼 사진기 앞에서 조금 멋쩍어 한다. 담 너머 높다란 병원에는 이미 불이 켜졌다. 커다란 병원 뒤에 가려진 수도원 담 안에서 바치는 수도자들의 청아한 기도소리가 하늘로 오를 시간이다.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 아베 피에르 신부의 말씀도 떠오르는 저녁이다.

 

[경향잡지, 2009년 2월호, 글 배봉한 편집장, 사진 박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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