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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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34: 반추기도의 항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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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4-12 ㅣ No.1412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4) 반추기도의 항구성


하루도 빠짐없이 30분이라도 성경 묵상을

 

 

반추동물은 반추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추란 토출-재저작-타액과 재혼합-재연하의 네 과정을 말한다. 이것을 1회 반추라고 하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반추동물은 이러한 반추를 하루에 6시간에서 9시간 동안 한다. 반추동물들에게 반추는 생존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과연 몇 명이나 성경 묵상이 자신의 영적인 생존에 관한 것이라 생각하고, 하루에 6시간에서 9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루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반추동물과 같이 반추기도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최소한 하루에 30분만이라도 규칙적으로 성경 묵상인 반추기도를 해나간다면 영성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규칙적으로 항구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다니엘 레비튼 박사는 두뇌가 어느 분야에 적응하는데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누구든지 1만 시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연구팀은 5살 전후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해 일주일에 2~3시간을 꾸준히 연습해 온 베를린뮤직아카데미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세 전후의 학생들 가운데 연주 실력이 탁월한 학생은 총 1만 시간이 넘게 연습한 것으로 확인된 반면, 실력이 낮은 학생들의 연습 시간은 8000시간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재능과 행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항구함을 통해 더 나은 것들을 창조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집요했고 항구했다는 것이다. 영성생활에 있어 이것이 빠지면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기도 힘들다. 필자는 성경 독서나 성경 묵상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로 이러한 집요함과 항구함을 견지하라고 권고한다. 때로는 회의와 무료함 그리고 지루함이 엄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때일수록 더욱 하느님께 신뢰를 저버리지 말고 계속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영성생활에서는 특별하고 기이한 비밀스러운 방법이란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 그냥 단순한 마음, 순수한 마음, 신ㆍ망ㆍ애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반추하고 맛 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매일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성경 독서와 되새김은 우리의 영성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지혜를 알려줄 것이다.

 

반추동물은 되새김할 때, 제1위에 있는 미생물이나 혹은 입속에서 나오는 침이나 타액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음식물을 소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만을 아무런 의미 없이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진정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정신으로 그 말씀을 되뇌어야 한다. 그때 그 말씀은 신ㆍ망ㆍ애와 더불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영적인 살과 피가 된다.

 

신ㆍ망ㆍ애의 정신이 없이는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성경의 말씀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다. 반추동물의 침이나 미생물, 소화액과 같이 신ㆍ망ㆍ애의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끊임없이 반추하다 보면, 어느 날 어느 때 그분께서 친히 말씀의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12일,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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