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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평신도 영성: 실천자 중심으로 개인화된 평신도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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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31 ㅣ No.494

[평신도 영성 : 역사 - 근세] 실천자 중심으로 개인화된 평신도 영성


중세를 마감하고 근세를 시작하는 14-16세기에 그리스도교의 영성 생활은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교회 내에서는 철학적인 체계에 바탕을 둔 스콜라신학의 영향으로 지성 중심의 사변적인 성찰을 하는 데 지친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담아 몸을 움직여 실천을 도모하는 의지 중심의 영성생활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인간 중심 사고의 확산

한편, 교회 밖에서는 문예부흥과 인문주의의 출현으로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옮겨가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인문주의자들은 삶의 지혜를 추구하던 고대 현자들의 사상과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이 반영된 고전문학과 인간 육신의 미를 표현하던 예술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고 인간 중심의 사고를 펼쳐나갔다.

이러한 영향을 받았던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처럼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는 영성생활을 거부하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영성생활을 실천해야 하는 주체인 인간 자체에게도 관심을 갖고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세속 인문주의자들처럼 신을 거부하고 신의 자리에 인간을 대신 앉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는 변함이 없으나, 하느님을 믿는 행동을 실천하는 인간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은 부정적인 감각으로 보이는 원죄교리보다는 긍정적인 감각으로 보이는 구속교리를 더 강조하는 신학을 전개하면서, 인간은 늘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문예부흥에 세례를 베풀고 인문주의를 경건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는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로 꼽히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 영성을 주제로 하는 저서로는 거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신심생활입문」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서 프란치스코 드 살은 다양한 상황에 놓인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입장으로 영성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언급하였다. “귀족과 직공, 왕족과 노복, 과부와 주부, 소녀들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신심은 각각 달라야 한다. 또 한층 이것을 개인의 능력, 일, 직무에 맞추어야 한다”(「신심생활입문」, 제1부 제3장).


교리교육에 바로크 미술 양식 활용

중세에는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는 영성생활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평신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영성생활을 추구하고 실천하고 싶을 때는 대부분 수도자들의 수도생활을 답습하였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드 살은 인간 한 명 한 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던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맹목적으로 수도자들의 삶의 행태를 좇아가며 영성생활을 실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결국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세상의 다양한 상황 안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에게 더 걸맞은 영성생활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문예부흥과 인문주의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전히 걷어내기 전에 또다시 종교개혁가들의 영향에 직면하면서 가톨릭 평신도들의 신앙을 보호하고 올바른 교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할 의무를 갖게 되었다. 이에 가톨릭교회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통교리와 영성생활을 교육하고자 바로크 미술 양식을 활용하였다. 이는 개신교 세력 확산을 막고 가톨릭 신앙인들을 보호하며 복음 선포를 더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미술을 활용하자는 원칙을 채택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17-18세기에 성행하였던 바로크 미술 양식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사실적인 표현과 함께 극적인 효과와 과도한 장식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러므로 교회 당국은 성경과 신학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미술 작품을 만들게 함으로써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교육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다만 바로크 미술 양식을 활용하였던 바로크 신앙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향력이 감소하였다. 왜냐하면 일부 신앙인들이 과도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지나치게 화려한 예술 작품들에 반감을 가지면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올바른 영성생활 실천 회복에 전력

한편, 18세기는 한 세기 전에 영성생활 분야에서 발생하였던 이단적인 영성실천의 나쁜 영향을 없애고 올바른 영성생활 실천을 회복하는 데 전력을 추구하는 시간이었다.

일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했던 예정설의 영향으로, 선택되지 못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극단적인 고신극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던 얀센주의와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이끄심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에 통상적인 영성생활을 모두 중단한 채 성령의 활동에만 귀를 기울였던 정적주의는 각각의 실천 원리에 각기 다른 문제를 지녔다.

그뿐만 아니라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서 오는 은총으로 성화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성사생활의 실천을 거부하면서 교회 당국을 놀라게 하였다. 결국 이 두 이단사상은 교회 당국에 의해 단죄되었지만, 그 가운데 얀센주의가 주장한 고신극기의 실천은 가톨릭 고유 영성생활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져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문제를 지속시켰다.

그런 까닭에, 18세기에 많은 영성가와 영성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남아있는 얀센주의의 영향을 걷어내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인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우선 성체 신심을 강조하였다. 곧 알폰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자주 성체를 모시는 것이 구원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신앙인들이 고신극기의 방법으로 당신에게 다가오기보다는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다가오는 것을 더 반기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알폰소는 성체조배를 비롯하여 통상적인 수덕생활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구원은총을 얻고자 완덕을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를 실천할 것을 권고하였다.


각종 신심운동의 출현

또한, 19세기의 영성생활도 18세기에 일어난 변화의 영향 속에서 전개되었다.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계몽주의는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영성생활에서도 학문화와 사색화가 이루어지면서 신앙인들의 영성생활이 이성주의적인 분위기로 흐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성주의에 점차 피곤함을 느꼈던 유럽 사회가 탄생시킨 낭만주의는 미학에 바탕을 둔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에 또 다른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얀센주의의 엄격한 분위기도 배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18세기 말에 발생한 유럽의 시민혁명도 외적으로는 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듯하였으나, 내적으로는 세속권력에 기대어 살아가고자 하였던 일그러진 종교심을 회복시키면서 새로운 관점의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곧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수도원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공동체적 영성생활은 일반 대중인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신심생활을 실천할 수 있게 전개되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신심운동들이 19세기에 집중적으로 출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서는 ‘예수성심신심’과 ‘성체신심’을 살필 수 있다. 교회 당국은 오래전부터 지역적으로 기념하던 예수성심축일과 예수성심성월을 재정비하여 보편교회 전체가 기념하도록 권고하였으며,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와 세계성체대회 개최 등을 승인하였다.

성모님과 관련된 각종 신심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성모님의 발현사건과 발현지가 공인받으면서 순례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하였고,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자는 다양한 신심운동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으려는 취지를 지닌 남녀 수도회들이 설립되는 유행이 일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성인공경, 성지순례, 전대사를 얻고자 하는 신심 등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개별적으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영성생활의 방법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다만, 한 개인이 수없이 많은 다양한 신심운동을 모두 접할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해 본 신심운동만 유일하거나 독보적인 영성생활 실천방법이라고 고집하는 폐단도 낳았다. 하지만 근세에 나타난 가톨릭 영성은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다양한 요구에 효과적으로 응답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전영준 바오로 - 서울대교구 신부.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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