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셀카 속에 담긴 행복,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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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30 ㅣ No.493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셀카 속에 담긴 행복, 상품입니다!


카스야, 카스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누군가 말합니다. “정말 여자들은 이해가 안 돼요. 스스로 자기 얼굴을 찍어 카스(카카오스토리)와 인터넷에 올리고 친구들끼리 ‘예쁘지?’ ‘잘 나왔지?’ 하면서 보고 또 본다니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을 ‘셀카’로 찍어 교정하고 ‘뽀샵’하여 SNS에 올려놓고는 마법의 거울을 보듯 자주 묻습니다. “카스야, 누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니?” 그러곤 ‘좋아요.’, ‘멋져요.’라는 반응이 올라오면 무척 만족해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내가 보는 ‘나’는 사라지고 남에게 보여주는 나, 남에게 찬사 받아야 하는 ‘나’만 남습니다.

외모와 몸매에 집착하는 사람들, 도대체 얼마큼 예뻐야 하는 걸까요? 최근 프랑스 AFP통신이 한국의 양악수술 열풍을 집중 조명했다는 기사(오마이뉴스 2013년 5월 29일)를 읽으면서 씁쓸해지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요? 뼈를 깎는 고통과 그에 따른 부작용까지 감수하면서 성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성보다 미모를 더 요구하는 오늘의 사회가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만들었을까요?

외모가 실력이고 생존이라며 내면을 채우기보다 다이어트, 화장, 처세술에 공을 들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얼굴에 빠져 “카스야, 누가 제일 예쁘니?” 하며 반복하여 묻지만, 정작 자신을 지켜줄 ‘내면’에게는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렇게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지혜 9,15 참조) 하고 외모보다 빛나야 하는 ‘내면’을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서글픈 현실입니까?


여가마저도 ‘나’를 홍보하는 바쁜 일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지요. 연극은 무대에서 ‘나’ 아닌 ‘누구’를 연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은 “커뮤니케이션은 곧 상황조작에 따른 인상관리 행위”라고 하지요. 정말 그러할까요? 그런데 SNS무대를 보면 아쉽게도 정말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고 위선이고 기만인지 알 수 없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듯, 진실과 거짓의 구분도 무너진 것일까요?

SNS공간에서는 단 한 컷의 사진으로 멋지고 행복한 상황을 기막히게 연출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세상을 복제하여 온라인에 실어 나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진짜 세상에 있어도 가상무대에 서있는 셈이지요.

가족여행을 다녀온 한 형제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넋두리를 합니다. “이해가 안 돼요. 가족여행인데 수지엄마는 실시간 사진 찍고 카스에 올리는데, 이건 뭐 놀러온 것인지 취재 나온 것인지…. 카스중독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려는 집착은 현실을 충분히 살지 못하게 합니다. 아직 그 즐거움을 누리기도 전에 ‘나 정말 즐거워!’ 하는 설정과 연출이 먼저 실행됩니다. 그 순간 남편과 자식들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지요. 반면 무엇인가 올렸는데 누군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면 화가 나고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관계까지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아름다운 것, 신나는 것, 기분 좋은 것을 보면 감상하기보다 찍기에 바쁩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 첫 번째 치르는 중요한 의식은 사진을 찍는 일입니다.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자연 앞에 멈춰 서서 충분히 감상하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먼저 꺼내 바쁘게 찍어댑니다. 그러니 여유를 즐기러 갔다가 또 하나의 바쁜 일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여가마저도 ‘나’를 홍보하는 포로가 되어 바쁘게 된 것이지요.


SNS무대, 내가 주인공입니다!

가상공간의 사람들에게 받는 칭찬과 격려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받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일까요? 마치 연극무대에서 수많은 관중들 앞에 서서 멋진 공연을 한 뒤 박수갈채를 받는 그런 황홀한 느낌일까요?

실제로 SNS공간은 내가 주인공입니다. 댓글을 다는 수많은 사람들은 관객이고 무엇인가 올려놓고 연출하는 나는 주연이지요. 그래서 마치 무대 위에 선 주인공인 양 자신을 만들게 됩니다. SNS공간에서는 자신에 대한 인상을 통제하게 되지요. 그렇게 가상의 무대에 선 내가 익숙해지다 보면 진짜 나 자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연출하는 가면만이 남게 되겠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현실의 사람들과 충실하게 살아가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가족들로부터 “엄마, 멋져요!” “당신 좋아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최선의 행복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자칫 SNS무대에 서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가상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 그리고 상상 속의 ‘나’로 살아가게 되지요. 그러다가 현실로 내려오면 허망하고 공허하게 됩니다. 밥 한번 진솔하게 같이 먹을 수 없는 가상의 친구들에게 ‘나’를 만들어 보여주는 데는 분주하고, 실제로 나와 함께하고 나를 위해 울어줄 가족에게 소홀해서는 안 되겠지요.


행복은 파는 것이 아니고 나누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사나 행동을 주체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하지요. 남의 시선에 갇혀 나의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고 ‘보이는’ 것에 매여 행복을 파는 노예가 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만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이고 하느님을 닮은 사람으로 내 스스로 내 자신에게 충실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진정한 행복은 저절로 전달되고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인정받고 보이려는 행복은 대가성 있는 상품이 되고 말지요. 그저 주어서 행복하고 나눠서 즐거운 기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넘쳐 이웃에게 흘러들어가니까요.

UC샌디에고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파울러의 행복 네트워크 조사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 옆에는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 옆에는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행복하면 내 이웃의 3단계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참된 행복은 수많은 관객들에게 보이는 데 있지 않고, “지혜에 전념하고 지각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 마음속으로 지혜의 길을 숙고하고 지혜의 비밀을 명상하는 사람”(집회 14,20-21 참조) 안에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 옆에 있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그 행복은 넘쳐흐르겠지요.


<더 공부하고 싶으세요?>

“현실세계에선 자기를 ‘표현’하지만 가상세계에선 ‘만들어’ 낸다.”

가상세계에서의 ‘나’는 정말 ‘나’일까? 「소셜네트워크e혁명」의 저자는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조작한다고까지 표현한다. 잘 모르는 친구들 수백 명과 비밀이야기를 나누는데 과연 정말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들의 반응에 맞춰 연출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선보이는 ‘사이버 퍼스낼리티’는 늘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인상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자기를 표현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온라인에서는 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셜네트워크e혁명」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소셜미디어에 대하여 다각도로 살펴보게 도와준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소셜미디어의 전반적인 것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면 매튜 프레이저와 수미트라 두타가 쓴 이 책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 김용은 제오르지아 - 살레시오수녀회 수녀. 부산 살레시오영성의집 관장으로 청년과 평신도 신심단체를 위한 현대 영성 강좌 및 피정지도를 하고 있으며 여러 수도단체에 디지털 시대의 봉헌생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을 전공하고 버클리신학대학원 내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영성을 수학했다. 「세상을 감싸는 따뜻한 울림」, 「3S 행복 트라이앵글」, 「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김용은 제오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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