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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평신도 영성: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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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480

[평신도 영성 - 실천사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평신도 영성에서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 3월호에서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기도하는 렉시오 디비나, 함께하는 성체조배, 장 라프랑스의 기도 수련에 관한 책을 중심으로 기도를 배우고 싶은 저의 체험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느님 말씀에서 기도로

로마로 떠나기 전에 오랫동안 성경 사도직에 종사하면서 저에게는 늘 한 가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왜 하느님 말씀을 공부하는 우리는 정작 하느님 체험을 하려고 할 때 기 수련이나 명상 등 성경 외의 다른 수단들을 찾는 걸까? 성경으로 기도 체험을 하며 하느님을 만날 수는 없을까?’

학위 논문 주제를 택할 때 제가 바오로의 기도를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안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성경으로 기도 체험을 할 수 있는가? 논문을 쓰면서 성경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갈 기회가 자주 주어졌는데 특히 렉시오 디비나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제가 성경과 기도에 대해 지니고 있던 의문을 많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오 근처의 아벤티노 언덕에 갈마돌리 수녀회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토요일 저녁 6시에 한 번도 빠짐없이 주일미사의 성경 본문을 토대로 렉시오 디비나를 합니다.

처음 저는 십여 년간 한 장소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계속 해왔다는 그 지속성에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와서 렉시오 디비나를 배우고 다른 소그룹을 만들고 말씀은 그들을 통해 세상 안으로 스며들어 갑니다.

여덟 살에 수도원에 들어가셨다는 첸시노 갈가노 신부님의 해설이 이어지고 원하는 참석자들은 자신의 묵상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함께 읽고 들은 말씀은 우리 기도가 되어 분향처럼 하늘로 올라갑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단순히 성경 읽기 방법이 아니라 교회의 고대 전통에서 내려온 성경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매일 복음 말씀을 주의 깊게 읽고 기도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하느님께 바칠 기도의 씨앗이 됩니다.


함께하는 성체조배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도할 곳이 늘 열려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혼자 침묵을 지키며 기도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또한 기도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 로마 여정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성당 두 곳이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그레고리오대학교 근처의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에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와서 머문 감옥 위에 지어진 성 마리아 인 비타 성당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도서관 문을 닫는 오후 다섯 시 반쯤에는 기도할 장소를 찾기가 애매합니다. 거의 여섯 시에는 미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성당은 오후 다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침묵 가운데 성체조배를 할 수 있도록 늘 열려있습니다. 어두컴컴한 바로크 식 작은 성당에 들어가면 제단 위에 성체가 세상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랑자도 노숙자도,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남자도 여자도, 주교님도 함께 성체조배를 합니다. 기도하는 곳에는 오직 하느님 앞에 머무는 하느님 자녀들의 침묵, 하느님 가정의 친교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명동 한바닥 같은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마르코 성당 한쪽 구석에 있는 성체조배실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이 기도의 샘은 하느님 현존을 세상 안에 증언하는 장소입니다.

한 흑인 소녀는 집을 나왔는지 큰 트렁크를 끌고 날마다 이곳으로 출근합니다. 이곳밖에 갈 곳이 없었겠지요. 이 소녀는 졸다가 저녁기도 시간이 되면 자랑스럽게 그곳에 온 사람들에게 기도서를 나누어줍니다. 옆에 온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슬픔과 고통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장소에서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이 세상의 고통에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관상하는 수녀님들을 위해 첫 번째 집을 지으려 할 때 히말라야가 아니라 대도시 한복판인 뉴욕에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의 큰 도시들이 침묵과 관상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데 그분은 침묵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저는 항상 침묵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마음의 침묵 안에서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침묵의 친구이며 우리는 그분에게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시오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기도로 나아가려는 수련을 도와주는 지침서 같은 것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장 라프랑스(Jean Lafrance, 1931-1991년) 신부님이 쓰신 「숨어계신 당신 아버지께 기도하십시오(Prie ton Pere dans la secret)」라는 책을 대단히 사랑합니다.

이 프랑스 신부님은 1963년 사제로 서품되셨고 교구사제로 사시던 중에 자신의 삶을 기도에 바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강하게 느꼈고 이후 국내외에서 피정을 지도하며 여러 권의 저서를 내놓았는데, 그 모든 저서들은 아르스의 주임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인간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청해야 할 만큼 가난한 이들이다.”를 중심어로 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성경으로 지속적인 기도 수련을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저자는 먼저 ‘하느님 말씀’을 호기심 많은 관광객으로, 지식의 탐색자로 다가가지 말고 인간 마음의 심층에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라고 초대합니다. 네 부분, 대화의 하느님(1부), 구원의 길(2부), 구원의 실현(3부), 하느님과의 대화(4부)로 나누어 기도의 여러 단계를 소개합니다. 대체로 길이가 같고 간결한 텍스트가 이어지는데 지속적인 기도를 함양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주제를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제시하여 기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묵상서가 아니라 일정한 방향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기도 체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성경의 기도에 대해 가르칠 때, 기도를 목말라하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었고, 단계별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기도 수련을 저 자신도 해보고 싶었는데 늘 1부에만 머물렀습니다.

지금 이 책은 아쉽게도 절판이 되어 시중에서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나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제 나름대로 각 장마다 기도 주제, 기도 수련, 묵상할 성경 구절로 나누어 요약하여 제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확실하게 배우는 방법은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 책의 논리적인 순서를 어디서든 기억하고 싶어서 각 장마다 장의 내용을 상징하는 그림을 찾아 넣었습니다. 가시나무 떨기 앞에 신발을 벗는 모세를 그린 마르크 샤갈의 그림(탈출 3장), 아버지 품에 안긴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루카 15장), 엘리야의 기도를 그린 지거 쾨더의 그림 등등. 제가 그림을 넣은 것은 교부들이 옛날에 강론할 때 강론의 논리를 기억하려고 모자이크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을 이용했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내용을 기억하며 어디서든지 기도할 때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치과에 가서 천장만 쳐다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등등.

많은 영성가들이 자신의 기도 체험을 수련 방법으로 남겨주었는데 자신의 영성과 환경에 따라 잘 선택하여 한 가지를 꾸준히 수련하면 기도에 대해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론

세상 안에 있으면 기도하고 싶은 갈망을 강하게 느낍니다. 세상이라는 장소가 우리의 기도, 곧 하느님께 우리의 시선을 들어 올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또한 우리가 정원사로서 하느님의 정원으로 가꾸도록 부르심 받은 장소입니다. 저는 평신도들의 영성을 위해 우리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 깊은 산이 아니라 세상의 사막 안에 함께 기도할 장소들, 기도 모임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 임숙희 레지나 -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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