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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부활의 영성: 모두 부활잔치에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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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479

[부활의 영성] 모두 부활잔치에 오십시오!


주님께서 돌아가셨고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인 갈릴래아의 삶 속에서, 날마다 부활을 희망하면서 살게 하는 우리 신앙의 근원이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죽은 이의 소생을 위한 것도, 죽은 뒤의 삶을 위한 것도 아닌, 살아있는 이를 진정으로 살게 하고, 현세에서 구원에 희망을 두고 살게 하는 근원이다.

인간의 폭력과 증오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 이 주님의 성령이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형태의 죽음의 힘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정말로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어낼 수 있고, 늘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웃을 위해 베풀 수 있도록 하는 내적인 힘의 원천은 바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힘이다.


해방된 인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베드로 사도 이야기가 사도행전 3,1-10에 나온다. 사회적으로 동정의 대상이었던 불구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우리는 부활한 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사도 3,6-8).

억눌린 상황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앉은뱅이가,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하면서, 두 발로 서고, 걷고, 새로 난 힘으로 껑충껑충 뛰는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바로 현세에서 구원된 모습이고 부활한 모습이다. 부활을 신기한 현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의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하는 사람이 되고, 모든 형태의 죽음의 권력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를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꽂혀있는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느님께로 돌려, 그분의 사랑에 내맡길 때, 우리는 일상의 여러 사건과 변화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새롭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생에서의 부활이고, 이것이 진정한 기적이 아닌가? 부활이란 새로운 존재양식이며 모든 형태의 죽음의 극복이다.

부활의 기쁨은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으나, 우리의 삶을 다르게 살도록 우리 존재를 변화시켜 준다. 주님께서는 쾌락도, 원하는 것이 채워졌을 때의 포만감도 아닌, 우리 안에 잔잔히 흐르는 노래처럼 지극히 경쾌하며 박진력 있는 기쁨을 약속하셨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이는 주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감사로 솟구치는 기쁨이고, 이웃을 내 형제자매로 알아보는 기쁨이며, 이웃의 다름이 위협이 아닌, 선물로 수용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자 용서와 화해의 기쁨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과 통교하시어, 이 부활의 기쁨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고 싶어 하신다.


행복하여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루카 14,15-24)

부활의 기쁨의 잔치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순간마다 초대하신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오십시오.” 지금이 바로 이 잔치의 시간이라고, 지체하지 말고 지금 바로 부활 잔치에 오라고 초대하신다.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이유와 유혹을 떨쳐버리고, 응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잔치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일어나는 내적인 소동에 의해서 초대에 응하지 못한다.

부활의 잔치는 기쁨, 희망, 용기, 정의, 사랑의 잔치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생명을 살게 하는 잔치다. 이 큰 잔치의 비유는 결국 우리 실존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로운 행위를 받아들이는 데 달려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이들이, 어떻게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분을 기리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나눔, 봉사, 기도, 그리고 선교의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하며, 사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게 하는 윤리관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 곧 경제, 정치, 사회, 과학, 예술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가운데서 부활신앙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증거하고, 하늘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가족중심적이며, 신심위주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앙, 이웃의 고통을 나누고, 모든 이와 화해하려고 애쓰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끈다.


부활 없이는 그리스도 신앙도 없다

예수 부활이 우리에게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야 하는 운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망각하게 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로 직면하고 수용하게 한다.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우리를 현실에서 더욱 깨어 살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직면하면서 악에 대한 승리와 투쟁을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두려움을 수락하시고 이를 끝까지 가셨고, 그리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부활 없이는 그리스도 신앙도 없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핵심이 되는 신비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이 현세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현세 생명의 무한한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통해서 죽음이 사실상 극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볼 때 모든 것이 끝난 곳에서 생긴 하느님의 창조적 행동이시다.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이루신 하느님의 사랑의 기적이다.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애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김미정 아녜스 - 프랑스에 있는 성안드레아수녀회 수녀. 신학과정을 모두 프랑스에서 이수하고, 파리 예수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금까지 전임교수로 일하면서, 문화와 종교분과 책임을 맡고 있다. 불어로 「조화와 죄」를 출판하였고, 불어로 여러 공동저서를 출간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2년마다 한 학기씩 강의를 하고 있다(kmjagnes@gmail.com).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김미정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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