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14: 완덕 완성 위해 노력하는 영적 여정으로서의 수덕생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30 ㅣ No.476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14) 완덕 완성 위해 노력하는 영적 여정으로서의 수덕생활

악행 끊고 덕행 습득 실천 … 수덕생활 두 바퀴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은 성경시대에서부터 성령의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자체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로만 베푸는 요한의 세례를 대신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다(참조. 사도 1,5).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교회 신자들에게 아폴로가 요한의 세례를 베푼 것을 알고 성령의 세례를 다시 베풀었다(참조-사도 19,1~6).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족들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 지체없이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참조-사도 10,44~48).

성령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즉시 거룩함에로 불리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과의 합일을 갈망하며 신비생활을 추구해 나아간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은총과 성령의 이끄심으로 종착지인 하느님 대전에 도착할 수 있지만, 완덕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발전적인 영적 여정을 걷게 된다. 그리고 이 영적 여정을 걷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덕행을 수련하여 성성(聖性)에 도달하는 수덕생활을 살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은 신비생활과 수덕생활의 분명한 구분없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실천되어 졌다.

하지만 수덕생활에도 고유한 전개 방식이 있다. ‘수덕’이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운동선수들이 줄기차게 노력하고 반복해서 훈련을 하여 자신의 운동 종목을 능숙하게 익힌다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이 의미를 영적 여정에 접목하여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탄생시켰다.

사실 사도 바오로도 영적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을, 달릴 길을 최선을 다해 달음질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곤 하였다(참조-1코린 9,24 필리 3,12~14 2티모 4,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수덕생활 안에서 완덕의 완성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과 투쟁하며 자신을 억제하고 포기할 뿐만 아니라, 아직 성취하지 못한 완덕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적으로 가능한 모든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게 된다.

초대 교회에서부터 수덕생활은 악행을 끊는 노력과 덕행을 습득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실천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교회 신자들에게 육의 행실인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과 같은 악행 목록과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와 같은 덕행 목록을 제시하였다(참조-갈라 5,19~23).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육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자고 권고하였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수덕생활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삶으로 이해하였던 그리스도인은 특히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범적인 수덕생활로 순교의 삶을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수덕생활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면서 이 세상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다.

이런 맥락 아래에서 그리스도인이 전통적인 수덕생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동방교회에서 사막 은수자들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사막의 은수자들은 관상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합일을 염원하면서 완덕에 방해되는 요소를 살펴 피하고자 하였고 도움이 되는 덕행을 찾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실천했던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자가 기도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잡념으로 ‘폭식, 간음, 탐욕, 슬픔, 분노, 나태, 허영, 교만’과 같은 악행 목록을 언급하였으며, 이러한 나쁜 생각을 극복할 수 있는 덕행으로 ‘무정념(無情念)’을 강조하였다. 이후 수도자들은 이와 유사한 목록들을 마련하여 완덕을 완성하는 수덕생활의 방편으로 실천하였다.

한편 서방 가톨릭교회로 옮겨온 수도생활은 중세에 들어서서 더욱 발전하면서 하느님과 합일의 신비생활을 위하여 자신과 악덕을 끊는 극기의 삶을 수행하면서 성덕을 쌓는 수덕생활을 더욱 열심히 실천하였다. 다만 일부 수도자들이 과도하게 고행을 실천하면서 편태 등의 고신극기를 마치 하나의 미덕처럼 여기는 감상적인 측면이 극대화되는 폐단도 발생하였다.

근세에 들어 인문주의의 출현으로 수덕생활에서 과도한 고신극기의 분위기는 한풀 꺾였지만, 중세 말엽에 이르러 지나치게 학문적으로 이론화된 신비생활에 반발하여 영성훈련이라는 새로운 신심운동 방법이 출현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수덕생활을 실천하였다.

이런 가운데 영성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신비생활의 경우에는 쉽게 접할 수 없으므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도, 수덕생활의 경우에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그 실체를 보다 쉽게 느끼고 삶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수덕생활에 매진하는 경향을 보였다. 얀센주의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인에게 지지를 받는 수덕생활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17세기 가톨릭교회에서 얀센주의와 정적주의라는 이단적인 영성생활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은 신비생활과 수덕생활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영성생활을 만들어 실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단적인 영성생활의 출현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신비생활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로 신비생활은 영성생활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으며 수덕생활만 홀로 실천되었다.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는 수덕생활을 가지고 이단적인 영성생활의 피해를 극복하려고까지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18세기에 윤리신학자이면서 영성신학자이었던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성인은 이단주의자들이 성사생활에서 오는 은총의 힘을 믿지 않고 성사생활을 거부하였던 모습에서 착안하여 성사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수덕생활을 열심히 실천할 것을 권고하였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구원의 은총에 더욱 다가갈 수 있으므로 자주 미사에 참여하여 매번 성체를 영할 것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체조배와 성체강복 등 성체와 관련된 신심생활을 실천하면서 이단적인 영성생활의 나쁜 영향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18~19세기에 영성가와 신학자는 신비생활과 신비신학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수덕생활과 수덕신학을 조명하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신심 행위들이 이 시기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완덕을 추구하며, 일시적으로라도 주님의 은총을 얻고, 구원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질서에 참여하고자 대중적인 다양한 신심 행위들을 실천하게 되었다.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심 행위와 관련하여 예수 성심 신심과 성체 신심이 출현하였다.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며 주님을 찬미하는 예수 성심 신심은 신앙인들에게 구원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하기도 했다.

성체 신심은 신앙인들이 자주 성체를 영하도록 유도하였고, ‘지속적인 성체조배’와 ‘세계성체대회’와 같은 신심운동을 촉발시켰다. 또한 성모님의 발현과 관련하여 마리아 신심이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성모님께 전구를 부탁하는 다양한 형태의 기도신심단체가 탄생하였고, 마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남녀 수도회들도 많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대중적인 신심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수덕생활의 실천은 얀센주의의 잔재를 없애는데 특히 효과가 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실천하는 수덕생활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소 감상적인 측면에 바탕을 두고 윤리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던 수덕생활은 점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높아지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는 보편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은 성사생활에 참여하면서도 성사 안에 담긴 신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외적인 동작만 실천하게 되었다.

결국 20세기를 맞이하면서 가톨릭교회에서는 보다 교의신학에 바탕을 두는 수덕생활이 절실히 필요하였고, 어렵사리 다시금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신비생활도 대중적인 지지를 끌어내야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 전영준 신부는 1991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30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91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