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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리상식: 사적 계시에 대한 우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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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621

[알기 쉬운 교리상식] 사적(私的) 계시(啓示)에 대한 우리의 태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사목회의는 한국교회 안에서 “신앙의 내실화와 쇄신의 노력이 결여된 신심운동과 교회운동은 우리의 의식구조 안에 아직도 건재하기 쉽고, 불안한 사회여건 아래 정서적 안정과 종교적 위안을 찾는 신자들에게 감정위주의 신심을 조장하고 더 나아가 개인적 성화와 개인적 구원만을 강조하게 되어 이웃형제의 선익과 사회개혁에 대한 신자의 소망을 망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사목의안 5, 신심운동 71항)고 주의를 환기시킨 적이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심운동들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도운 것도 사실이지만, 왜곡된 신심행위들로 인하여 교회의 혼란과 분열을 초래한 일도 적지 않았다. 교회가 공식으로 금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눈물 흘린다는 성모상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모친이 받았다는 사적 계시를 사수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사제직을 포기한 형제신부도 있었다.

‘계시(啓示)’라는 말마디는 어원적으로 ‘드러나다’, ‘나타나다’, ‘열어 밝히다(revela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계시란 어떤 감추어져 있는 것이 자기를 나타내 보이거나 자기를 열어 밝혀 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가장 거룩하고 초월적인 존재자로서의 하느님께서 자유로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계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발생하므로,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는 하느님 계시의 대상이요 수단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자연현상과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고, 특정 인물들(아브라함, 모세, 여러 예언자 등)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기도 하신다.

구약시대에 시작된 하느님의 계시는 예수님께 이르러 절정을 이루고 완성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의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위격적(Persona)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은 “예수님은 자신의 전 현존과 출현으로 말씀과 업적, 표시와 기적으로, 특별히 당신의 죽으심과 죽은 이들 가운데로부터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마침내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계시를 완수하시고 하느님의 증거로 확고하게 하셨으니,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어 우리를 죄악과 죽음의 암흑에서 구원하시며 영원한 삶에로 부활시키신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어떠한 공적(公的)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계시헌장 4항)

구약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고 완성된 공적 계시 외에 사적(私的) 계시의 가능성은 있다. 하느님께서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계시는 인간이 마음만 열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사적 계시를 이상한 사건으로만 알아듣지 말자는 말이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사적 계시가 공적 계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계시를 인정해 왔다. 파티마나 루르드, 과달루페 등의 성모발현이나 ‘기적의 메달’, 그리고 성녀 비르짓다와 성녀 말가리다 등이 받았다는 사적 계시도 모두 이에 속한다.

사적인 계시는 공적인 계시를 내용으로 하고 있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가 있다.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면 사적인 계시는 공적인 계시에 어떠한 내용도 보탤 수가 없고, 새로운 내용이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사적 계시가 공적 계시가 된다거나, 어떤 계시가 교회의 인준을 받기 전까지는 사적 계시이고 인준을 받고 나면 공적 계시가 된다고 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또한 교회의 교도권이 인준하였다고 하여 그 사적 계시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적 계시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가 아니라 소극적인 인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사적계시에 대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 중의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서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의 완성이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벗어나거나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계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스도교가 아닌 일부 종교들과 신흥 종파들은 바로 이런 부류의 ‘계시들’에 근거하여 세워진 경우이다.”(67항)

사적 계시를 대하는 우리는 그것이 사기다 또는 조작이다 하여 섣불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 또한 지나친 관심과 대응은 오히려 그들에게 선전효과를 줄 수도 있다. 사적계시에 대한 판단은 교회의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유산,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교회의 전통을 통하여 전달된 성사들을 충실히 거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통하여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잘 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월간빛, 2012년 7월호, 하창호 가브리엘 신부(매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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