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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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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618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


2011년 4월 22일 성금요일에 교황님께서 이탈리아 국영방송 라이우노(Rai Uno)에 역사상 처음으로 출연하셨다. 방송 프로그램 ‘A Sua Immagine(당신 모상대로)’에서 준비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7가지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었다.

질문 ‥ 교황 성하, 2009년 부활절부터 식물인간 상태인 제 아들 프란치스코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더 이상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영혼이 그의 육신을 떠난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영혼이 그의 육신 안에 깃들어있습니까?

답변 ‥ 물론입니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육체 안에 존재합니다. 그의 현재의 상황은 마치 줄이 끊어진 기타와 흡사합니다. 그 상태로는 더 이상 연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는 상처받거나 손상되기 쉬운 악기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의 영혼은 현재 그 손상된 악기로는 연주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감추어진 것처럼 보이는) 영혼은 당신들의 사랑을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섬세하고 세부적인 것들, 이야기들,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사랑하는 부모님들, 특히 소중한 엄마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육신의 부활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에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 죽은 뒤 영원히 존재하는 ‘그 무엇’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 무엇이란 ‘영혼’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을 ‘영혼과 육신의 결합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체험의 영역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음이다. 의학적으로 죽음을 정의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심장박동의 정지라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뇌파의 정지 또는 호흡의 정지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단 그 문제는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신학적 정의를 바탕으로 설명해 본다.

죽음의 신학적 정의는 명료하다. 죽음은 ‘영혼과 육신의 분리’이다.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는 순간을 죽음이라 한다. 죽은 뒤 영혼은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받는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판관으로 우리 신앙인의 지상의 삶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우리 영혼은 ‘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빠져나간 우리 육신은 어찌 될 것인가?

우리 육신은 부패하여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본디 사람을 죽지 않도록 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원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인간은 이 죽음을 마치 외부에서 밀어닥친 폭행같이 느낀다. 원하지 않는 것이기에 발버둥 치며 저항해 보지만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인간은 이 죽음을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1코린 15,26)로 인식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당신 외아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물리치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절대적 순명을 통해 죽음을 맛보셨다. 불순명의 죄의 결과로 인간세계에 온 죽음은 순명의 결과로 받아들인 죽음을 통해 극복되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우리의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 썩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인간의 육신을 부활시키시어 새로운 몸을 지니게 하셨다. 부활하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그분은 당신의 영을 받아들이는 이는 누구나 당신과 같이 부활하리라고 가르쳐주셨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그분은 썩어 없어진 우리의 육신이 마지막 날 영혼과 재결합하여 새로운 몸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이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영원한 삶

교회는 전통적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펼쳐질 운명을 사말(四末)로 표현하였다. 죽음과 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다. 한순간에 펼쳐지게 될 것이고 결정될 것이다. 죽음과 더불어 심판받게 될 것이고 최종적이며 영원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여기에서는 심판과 천국 그리고 연옥과 지옥에 대해 알아보자.


심판

심판은 사심판과 공심판으로 나뉜다. 사심판이란 죽은 뒤, 곧바로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주님께서 내리시는 판결이다. 공심판은 세상 마지막 날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관으로 오셔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심판 전에 산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육신의 부활이 있을 것이고, 영혼과 결합된 육신은 그분으로부터 최종적이며 결정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사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육신과 결합된 다음, 그 결과를 다시 한번 확인받게 될 것이다.


천국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수난의 공로로 우리에게 열어주신 ‘곳’이다. 설명하기 쉽게 장소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장소적 개념을 초월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부족하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을 그리워한다. 우리 영혼 속에 묻어있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참된 것과 아름다운 것 그리고 선한 것을 추구하게 하였다.

천국에서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분 앞에서 열망하던 영원한 복락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상태라고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생활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이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연옥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다. “우리는 사후에 바로 심판관이신 예수님 앞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눈길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응시하시는 그 눈빛은 한편으로 우리를 정화시키는 시선일 것입니다. … 예수님의 눈빛은 우리가 하느님과 모든 성인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특히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께 나아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해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천국에 이를 수 없다. 죽은 뒤 정화를 거쳐야 한다. 그들이 거쳐야 할 정화를 연옥이라 한다. 이는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신앙 교리로 확정했다. 교회의 전승과 성경을 토대로 확정된 교리이다.

마태오 복음 12장 32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성령을 거스르면 내세에서조차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도 있다는 것이다.

마카베오기 하권 12장 45절을 보면, 죽은 이를 위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죽은 이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교회 초기부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미사성제를 드렸다. 이것은 그들이 정화되어 지복직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모두를 위해 자선과 대사(大赦)와 보속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

죽을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지옥이란 이처럼 하느님과 또 복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거부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자주 언급하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마태 13,41-42).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죽을죄의 상태에서 죽는 사람들의 영혼은 죽은 다음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며, 그곳에서 지옥의 고통, 곧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는다. 지옥의 주된 고통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이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과의 단절이다.

지옥에 대한 성경의 단언과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라는 호소이다. 그리고 동시에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 홍기선 히지노 - 춘천교구 신부. 2001년 교황청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교구 사법대리, 법원장이면서 양구본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7월호, 홍기선 히지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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