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복자 홍인 레오 약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1-31 ㅣ No.394

홍인 레오(1758-1802년)

 

 

홍인(洪?) 레오의 집안은 본디 한양의 이름 있는 집안이었으나, 그의 부친이 경기도 포천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801년 한양에서 순교한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바로 그의 부친이다.

홍 레오의 가족이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1791년경 그의 부친이 양근 땅에 살던 고종사촌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우면서였다. 홍 레오는 부친에게서 교리를 배웠는데, 오히려 부친보다 먼저 천주교 신앙을 진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천주교에 입교한 뒤 홍 레오는, 세속의 꿈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을 섬기고 교리를 전하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면서 효성을 다하는 길은 부친을 신앙으로 이끄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부친의 의심을 풀어 드리고, 입교를 망설이는 부친을 설득하여 마침내 부친을 신앙으로 이끄는 데 성공하였다.

1794년 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홍 레오는 부친과 함께 주 야고보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미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서오촌(庶五寸) 당숙인 홍익만 안토니오, 황사영 알렉시오 등과 함께 교류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또 부친과 같이 포천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도 노력하였다.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홍 레오는 부친과 의논하여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책 상자를 받아 집 안에 숨겨 두었다. 그런데 한 신자가 이 상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가 체포되면서 그들 부자의 이름이 박해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 무렵 홍 레오와 부친은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오래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집으로 돌아왔으며, 바로 그때 포졸들이 쳐들어와 그들 부자를 체포하였다. 이후 부친 홍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한양으로, 홍 레오는 포천으로 각각 압송되었다.

이윽고 홍 레오는 포천에서 첫 번째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밀고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지킨 뒤, 경기 감영을 거쳐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그에 앞서 홍 레오의 부친은 한양으로 압송된 지 얼마 안 되어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홍 레오도 그 뒤를 이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으나 신앙으로 극복하였다. 그런 다음 사형 판결을 받고 고향 포천으로 이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2년 1월 30일(음력 1801년 12월 2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형조에서 홍인 레오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는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오랫동안 이를 믿어 왔다. 너의 아버지가 교리를 가르치고 너는 이를 배웠으며, 깊이 여기에 빠져 (교리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경기 감영에서 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 네가 저지른 죄의 실상을 보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파일첨부

37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