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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한국 순교복자 수도회 - 자신을 비우고 비우는 겸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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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132

[수도 영성] 한국 순교복자 수도회 - 자신을 비우고 비우는 겸손으로

 

 

순교정신으로

 

한국 순교복자 수도회의 설립자이신 무아(無我)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은 순교자의 삶 안에서, 순교자들이 어떻게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서로의 선익을 위해서 생활했는지를 점성(點性), 침묵(沈默), 대월(對越)의 정신에서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활이야말로 수덕생활의 최종 목적지인 면형무아(麵形無我), 곧 성체신비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임을 확신하셨습니다. 이 계시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서가 아니고 세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인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하느님의 원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들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설립자 무아 방유룡 신부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면서 우리를 위해서 무(無)에까지 내려가신, 자신을 철저하게 무화(無化)하신 하느님을 점성과 침묵 그리고 대월 생활로 철저히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께 의탁한 순교자들의 삶 안에서 발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저희에게 순교자적 삶을 따름으로써 피의 상속자가 되고, 상속자로서 하느님의 영광과 각자의 성화를 위해서 ‘있는 자’로서 그리고 ‘사는 자’로서, ‘깨닫는 자’로서, ‘이지적 행동을 하는 자’(감정이나 본능에 치우치지 않고 깊은 지식으로 사물을 분별하고 이해하는 슬기로운 자)로서, ‘성령을 모시는 자’로서,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인(人) · 사(事) · 물(物)과 현상(現像), 모욕과 천대, 무시와 미소한 일, 범상한 일과 십자가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조하는 삶을 정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삶 가운데 점성정신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자기 본분에서 요구된 범상하고 미소한 일까지도 알뜰하고 빈틈없이 정성스럽고 규모답게 행하는 삶으로, 일의 종류나 크고 작음에 따라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마음가짐, 곧 정신에 따라 덕이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점성정신은 무(無)로 비천한 곳까지 내려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써 그분이 걸어가신 무시, 모욕, 천대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희생적인 삶으로 봉헌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침묵생활은 말 안하는 무언(無言)의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늘을 기쁘게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삶으로 우리 자신과 정신을 극기로써 밝히며 절제하는 것으로, 침묵십계(沈默十戒)라는 ‘분심, 사욕, 귀, 눈, 말, 맛, 코, 수족, 이성, 의지’를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침묵은 크게 내적 침묵과 외적 침묵 그리고 영혼침묵(이성침묵과 의지침묵)으로 나누고, 완덕오계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완덕오계에서 1계와 2계는 내적 침묵에 해당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계는 분심잡념을 물리치는 절제된 삶으로 인 · 사 · 물 안에서 하느님 뵙기를 노력하는 것, 호기심을 억제하여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하지 말 것과 지향을 바로 갖기에 힘쓰고 상상이나 추측 그리고 오관을 절제하는 삶입니다.

 

2계는 사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맑은 양심을 기르는 것과 나만 좋게 나만 편한 이기주의와 교만한 마음과 고집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침묵입니다.

 

외적 침묵에 해당되는 3계는 용모에 명랑과 평화와 미소를 띠고 언사에 불만과 감정을 발하지 않으며 태도에 단정하고 예모답고 자연스럽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영혼침묵 중에서 이성침묵에 해당되는 4계는 양심 불을 밝히는 데 있으며, 양심 불을 밝히려면 선행이 필수입니다. 선행이 중단되면 양심 불이 꺼지므로 선으로써 양심 불을 켜고 덕으로써 양심 불의 촉수를 높이는 삶이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지침묵에 해당되는 5계는 “자유를 천주께 바치고 그 성의를 따를지니라.”는 삶의 계율로, 우리의 가장 귀한 자유를 하느님께 바치면 더 완전한 자유를 받으며,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자유의지를 다스리는 행위입니다.

 

 

면형무아의 삶

 

대월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대면하게 자신을 정화시키는 행위로서 관상적 삶입니다. 이 삶은 3칙과 2효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칙은 내 자작으로 아무것도 아니한다. 2칙은 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한다. 3칙은 나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바를 항상 해드린다.” 그 효과로서 “첫 번째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두 번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친히 하신다.”

 

결국 대월의 3칙과 2가지 효과는 어떠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 · 사 · 물에서조차 제한받지 않는 관상적인 삶으로 초대를 뜻합니다. 이 초대는 하느님을 영적으로 맛들이게 하고 하느님 계획 안에 머물게 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면형무아는 순교정신의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습니다.

 

설립자는 강론에서 성체는 처형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사랑을 표시하기 때문에 순교자의 양식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순교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심으로써 수난을 통감하고 수난에 드러난 사랑에 참여하듯이, 순교는 자기 몸을 바침으로써 성체 안에서 이루어진 결합의 실체를 제시하고 성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명시합니다. 그래서 표징으로 시작된 결합이 실제로 완성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면형무아는 자신을 비우고 비워 허무에까지 내려가는 겸손으로 신비세계에 새로 탄생하여 하느님과 일체되는 성화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순교정신으로 점성, 침묵, 대월 그리고 면형무아의 영성을 다시 한 번 완덕오계라는 생활의 계율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계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2계 사욕을 억제하고, 3계 용모에 명랑과 미소를 띠며 언사에 불만과 감정을 발하지 말며 태도에 단정하고 예모답고 자연스럽게”라는 침묵생활은 매사에 ‘열심’으로 무장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열심의 시작이 성의(거룩한 지향)이고 그 절정은 애덕으로서 노력이 수고로 진행해서 순간마다 열심히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침묵생활인 완덕오계의 1, 2, 3계를 잘 수행하면 4계인 양심 불은 자연히 밝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 삶을 대월생활이라 합니다. 성의와 노력으로 얻어진 열심한 삶이 치열한 불로 옮겨 붙어 하느님을 더욱더 뜨겁게 체험하는 관상의 생활입니다. 마지막 계율인 5계는 면형무아에 해당되는데, 이 치열한 불이 어떠한 수고함 없이 발하고 수고를 모르고 진행되는 애덕의 삶입니다. 애덕의 삶은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자유의지로 선택한 진(眞) · 선(善) · 미(美) · 호(好)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이렇게 한국 순교복자 수도회의 영성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살았고, 그분을 위해서 근본적 결단을 내리며, 그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원의 중에 살았던 순교자들처럼 피의 상속자들로서 점성, 침묵, 대월의 삶으로 애덕의 극치인 면형무아에 도달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황석모 세례자 요한 - 한국 순교복자 성직수도회 수사신부  · 한국 순교복자 성직수도회 신학원장.

 

[경향잡지, 2007년 9월호, 황석모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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