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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지나치게 진지한 신앙생활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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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97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50) 지나치게 진지한 신앙생활의 부작용

 

 

Q. 저는 그동안 안이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기도생활도 게으르게 하고 성당에는 하느님을 만나러 간다기보다 제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봉사활동보다는 사람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사는 게으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사순특강에서 신앙인은 세속을 멀리하고 늘 기도하며, 주님처럼 세상 힘든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저의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보고 싶어 노는 것도 멀리하고, 세상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들을 묵상하면서 기도도 바쳤습니다. 성당에서도 기도하는 자세로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영적 대화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왠지 마음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제 성당 친구들은 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 진정한 신앙인이 되나보네” 하면서 제게 함부로 농담도 하지 않고 기도하도록 저를 배려해주는데, 저는 이유 없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어떤 분에게 상담을 청하니 그런 모든 것들이 마귀가 저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려는 술책이라고 하시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영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A. 형제님의 힘겨움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노력을 하는데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든다는 형제님의 고민은 사실 열심인 신앙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갖는 공통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형제님 문제는 지나친 진지함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건 일상생활이건 진지한 자세는 필수적입니다.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노력의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진 모든 요소가 그러하듯, 진지함 역시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선 기도생활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하는 분들은 편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진지한 생각을 많이 하면 뇌가 압박을 받아서 편두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약을 먹는 것보다 어디론가 멀리 나가서 온종일 바람을 쐬고 오면 그런 증상이 바로 사라집니다.

 

두 번째는 짜증을 잘 내거나 속이 아주 불편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표정이 늘 밝지 않은 ‘우거지상’을 하고 다닙니다. 왜냐면 지나치게 진지하게 살려고 하는 분들은 감정 억압이 심하고 그로 말미암아 내면의 욕구와 도덕적 신념 사이에 충돌이 끊이질 않아 마음속이 늘 싸움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성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떠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아이들이 저렇게 떠들게 내버려두는 것이냐, 성당이 무슨 놀이터냐” 하고 항의하는 분들, “신자들이 기도하는 자세가 왜 저리도 단정치 못하냐”고 잔소리를 하는 분들, 성당의 이모저모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판을 하는 분들은 거의 지나친 진지함의 심리적 부작용에 시달리는 분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 번째 문제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저명한 학자분이 있으십니다. 이 분의 학식이 워낙 뛰어나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경청하려고 모여들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분을 찾는 이가 점점 줄었다고 합니다.

 

이 분을 존경하면서도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 분은 말씀 내내 아무런 농담도 아무런 유머도 없이, 작은 웃음 하나 없이 단순한 어조로 세상 불행한 일들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이 질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당에서 버스 두 대로 야유회를 가게 됐다고 합니다. 한 대는 본당신부가, 다른 한 대는 보좌신부가 인솔하게 됐는데, 두어 시간쯤 가서 휴게소에 도착해 잠시 쉬는 동안 본당신부가 탄 차의 신자들이 보좌신부에게 오더니 본당신부와 바꿔 타 줄 수 없겠느냐고 하더랍니다.

 

이유인즉, 보좌신부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음악을 틀어 신자들과 신나게 놀면서 가는데, 본당신부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묵주기도를 시켜 지금까지 계속 기도만 했더니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튀는 리더’란 용어가 있습니다. 무작정 ‘하면 된다’는 식의 물고 늘어지는 삶의 패턴이 아닌, 많이 놀고, 많이 자고, 많이 즐기면서 많은 결실을 보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인데, 이것은 비단 사회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아주 필요한 자세입니다.

 

주님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튀는 리더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늘 근엄하시고, 기도만 하시고,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분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람들을 가까이하시고 담소를 나누시고 술도 즐기시며, 시간이 나면 등산도 하셨던 건강한 휴식코드를 가지셨던 분이십니다.

 

형제님께서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님께서 그러하셨듯 지나치게 진지한 삶을 살지 마시고 튀는 리더의 삶을 사셔야 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0년 4월 25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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