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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유혹을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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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9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43) 유혹을 어떡해

 

 

Q. 사순시기를 맞아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죄짓던 습관이나 유혹에 빠지던 습관을 뿌리 뽑으려고 결심했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어떻게 하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성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유혹을 뿌리째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속상하신가 봅니다. 우선 유혹이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유혹이란 일반적 개념으로 말하자면 ‘사람을 건강하지 못한 삶으로 끌어가려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혹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무겁고 힘겨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서조차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세례를 받을 때에도 세 번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겠노라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유혹은 아주 오래된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유혹을 당하신 것은 물론,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당한 시점까지 올라가 보자면 유혹이란 하느님 뜻을 따라 살려는 사람들에게 방해꾼 노릇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님만 유독 유혹에 빠지거나 약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쉽게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유혹은 사람에게 순간적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부정적 중독성이 강한 것이 유혹입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에 빠졌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절대로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자아의 힘이 약하고, 의지가 약하면 유혹을 끊어버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중사고’를 하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도록,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내용상 부정적 교육을 해왔습니다.

 

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 사람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 - 예컨대 지옥 같은 이야기 - 을 교육해서 죄의 유혹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서적 황폐함을 가져올 수 있고, 심리적 균형을 상실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간에서 사용하는 방법, 소위 성공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유용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가브리엘레 외팅겐 교수 연구에 의하면 큰 목표를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실제 목표달성에는 그리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서로 반대되는 믿음을 동시에 마음에 담아둬야 성공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중사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혹에 빠졌을 때 최악의 자기 모습과 유혹을 단호하게 끊었을 때 자신의 괜찮은 미래의 모습 두 가지를 다 마음 안에 뒀을 때 유혹을 끊을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어떤 수험생 교실 한 반에는 ‘나라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라’는 급훈이 걸려 있고, 다른 반에는 ‘공부 잘하면 미래의 부인이 미인, 공부 못하면 부인이 성질 고약한 여인’이란 급훈을 걸었는데, 후자 쪽 아이들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중사고를 실제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유혹은 인간이 창조된 이래로 우리를 괴롭혀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을 뿌리째 없애고 싶어하는데, 그런 발상이 오히려 신앙생활을 힘들고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혹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선 유혹은 우리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뿌리째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유혹은 마치 잡초와도 같아 하나를 없애면 다른 것이 또 나타나 죽을 때까지 귀찮게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칼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하다가 자칫 지칠 수 있습니다. 유혹은 끈질긴 것이니 우리도 끈질긴 마음으로 유혹을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유혹은 신앙생활과 내적 생활 성장에 필요하기도 합니다. 유혹을 일컬어 시련이라고도 하는데, 신앙생활에 아무런 장애물과 유혹이 없다면 견고한 내적 상태를 갖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적당한 자극이 있을 때 분발하는 특징이 있어서 신앙생활에서 유혹은 때로 필요악처럼 존재합니다.

 

세 번째로 다른 모든 불편한 감정이 다 그렇지만 유혹 역시 사람이 살아있다는 신호입니다. 특히 사람이 건강하고 힘이 넘칠수록 유혹도 더 강렬합니다. 어떤 젊은 신부가 노인 신부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어여쁜 처녀들의 유혹이 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신부님은 “힘들어하지 마라. 그건 네가 건강하고 힘이 넘쳐 그런 것이다. 내 나이가 되면 그런 고민은 안 하게 된단다”고 하셨답니다.

 

세상 유혹이 다가올 때 내가 왜 이리 믿음이 약할까 생각하지 마시고, ‘아직 내가 젊고 힘이 있어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고 유혹과의 싸움에서 한판승을 거두는 삶을 만들어간다면 유혹이 다가와도 그리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7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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