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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마음이 자주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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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8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8) 마음이 자주 우울합니다

 

 

Q. 다른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우울해진다는데 저는 계절과 상관없이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해지곤 합니다. 제가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자주 바깥출입을 하고 친구들도 만나지만, 우울한 기분을 씻은 듯이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치료센터에서는 매일 활짝 웃으며 살면 된다고 해서 며칠 해봤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울한 감정을 없앨 수 있을까요?

 

 

A.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매님은 절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분들은 자기 마음 안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살기에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자매님처럼 적극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그냥 우울한 마음을 가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매님은 우울한 마음을 지겨워하고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웃고 살자는 캠페인이 번지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마음마저 우울하면 건강을 해치기 쉬우니 활짝 웃고 살면서 건강을 찾자는 것이지요.

 

근래에는 웃음치료라는 심리치료 기법도 나오고 전문가들도 양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사가 그렇듯이 너무 한쪽만 발달시키면 다른 한쪽이 무너져 결국엔 균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즉, 웃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우울한 감정을 없애려고만 하는 것은 자칫 심리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늘 웃고 사는 삶을 강조하다 보면 우울한 감정을 억압할 수 있는데 자칫 우울한 감정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억압해 심리적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지속하다 보면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엔 늘 자신감 있는 웃음을 띠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안의 우울한 감정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울한 감정은 의식이 성숙해져 가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합니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늘 방긋거리고 지내다가 어느 날 우울한 얼굴로 밥도 잘 안 먹고 무슨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걱정하면서도 “이제 우리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섰구나, 우리 아이가 이제 어른이 돼가는구나” 하며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도 백수생활을 하는 자식이 늘 희희낙락하고 다닌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저건 언제 철이 드나, 저건 자기 앞날도 걱정이 안 되나” 하면서 혀를 찰 것입니다. 우울한 감정이 성숙의 지표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감지한 것입니다.

 

둘째, 우울한 마음은 겉으로는 무력해 보일지라도 내적으로는 치열한 생각의 싸움을 벌이는 상태입니다. 즉, 자기 인생에서 만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상태이지요. 따라서 이런 우울한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무장 해제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울한 감정은 영성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사는 게 마냥 즐거운 사람들은 절대로 과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술자리 구호도 “이대로”라고 외치지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우울해지면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려오면서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갑니다.

 

여러 가지 회한이 밀려오는데, 바로 그 시간에 자기 내면의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울한 감정은 영성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우리 교회는 일부러 신자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시기를 전례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순시기가 바로 그런 때이지요.

 

성당에 아무런 장식도 못 하게 하고 본당 행사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와 보속으로 지내게 하는 것은 바로 신자들 마음을 우울한 감정으로 채워서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하려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울한 감정이 불편한 분들은 조금은 기다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물에 빠졌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물에서 헤어나오려고 힘들여 허우적거리는 때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결국에는 익사하고 말듯, 우울감에서 조급하게 나오려고 하는 것도 그런 결과를 갖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졌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몸의 힘을 뺀 채 밑바닥까지 내려가려고 하는 게 오히려 몸을 뜨게 하는 방법인 것처럼, 우울감 역시 그 바닥까지 가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오히려 벗어나기가 수월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을 현실적으로 활용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아주 쉬운 탈출방법 하나를 알려 드립니다.

 

우선 볼펜을 이빨로 물고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볼펜을 입술로 물면 삐친 얼굴이지만, 이빨로 물면 웃는 얼굴이 됩니다. 그런 자기 모습을 거울로 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울한 감정에 휘둘리는 분들은 지금 바로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09년 11월 15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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