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902.....연중 제2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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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9-01 ㅣ No.1853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홀수 해

콜로새 1,1-8                루카 4,38-44

2015. 9. 2. 이태원

주제 : 내가 간직한 희망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네의 삶은 아주 많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표현으로 하면, 아무래도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한 것이 세상에서 더 잘 드러난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 전문가에 해당하는 일은 삶의 결과가 좋은 것으로 드러나든, 나쁜 것으로 드러나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습에서라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을 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우리가 굳이 부정적인 모습을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할 말로 내가 사용할 시간이 충분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낭비해서 얻을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같은 신앙고백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평소에 드러내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뜻으로 짤막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말씀에서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마귀가 하는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목소리의 높낮이가 담겨있지 않고 글로 쓰여 있으면, 내용에서 불만족이나 안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겠지만, 목소리로 들리면 판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신앙고백(!)을 말 그대로 고백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가 살던 자리를 빼앗기는 일에 대한 발악이요 항의로 들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세상에서 우리가 신앙을 드러내는 것도 어떠한 자세이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남산에서 젊은 공무원이 연세 드신 일용직근로자를 향하여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만을 가져봐야 소용은 없지만, 세상에서는 맡은 직책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을 신앙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인으로 바르게 산다는 것은 희망을 올바르게 간직하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들은 콜로새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사도의 편지의 주된 뜻입니다.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뜻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여러 가지 판단이 가능하지만, 신앙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이룰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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