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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한국교회 인권 수호 활동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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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08 ㅣ No.993

인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한국교회 인권 수호 활동 조명

인권 향상, 복음의 요구이자 성직의 핵심


인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과 영상에 뿌리박고 있다. 모든 사람을 본질적으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하느님의 모상이다. 인간의 완전한 발전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더욱 명백하게 한다. 우리 시대에 와서 교회는 이 진리를 점차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은 복음의 요구이며, 인권의 향상이 성직의 핵심이라고 교회는 확신한다.’(인권과 화해 4항, 교황 바오로 6세 메시지)

생명에 대한 가르침 등 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은 십계명을 비롯해 성경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교회가 본격적으로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의 의미, 국가의 역할 등을 주요 내용으로 교황 레오 13세가 1891년에 반포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가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헌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칙은 노동자의 ‘인권’을 다루고 있지만, 이후 여성인권과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으로 확장되면서 ‘세계인권선언문’을 이끌어냈다. 또한, 1960년대 냉전 시대에는 전쟁, 분쟁, 대량학살이 빈곤, 기아, 질병 등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인간 발전을 외치고 다양한 평화운동을 일으키는 동력이 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러서는, 교회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낸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과 ‘공동선’을 부르짖음로써 사회에 대한 교회의 존재론적인 입장을 천명하게 됐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인권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침해는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교회가 인권신장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또 다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인권 옹호의 고무자라는데 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 중립을 지키거나 방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 성직의 핵심이고 복음의 요구라고 본다.

특히 교회는 인류 구원은 영신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적 구원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인간의 구원이 요구한다면 불의를 규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교회와 인권 57항)며 인권 수호가 교회의 사명임을 가르친다. 아울러 인간의 기본권, 영혼의 구원에 필요할 때 교회는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사목헌장 76항)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교회는 인권을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해서 구원된 인간이 갖는 권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자연법적인 인권의식을 뛰어넘는 성스러운 의식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말하는 인권은 영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Gaudium et Spes)은 인권론에서 “그리스도적 기본 권리는 인간의 인격을 일종의 사회적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며 인권의 내용은 바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명시할 때에 가장 큰 힘을 미칠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는 항상 개인이나 인간의 인격적 권리의 옹호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는 복음에 비추어 드러내 보여야 할 것이다”고 밝힌다. 또한 인권을 가정에 대한 권리, 종교자유권, 사회안에서의 인권, 노동권, 재산권, 피교육권, 정당방위권, 이민권, 여성들의 권리, 생존권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 자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것은 곧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권문제에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신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정신이다.(간추린 사회 교리 144-148항 참조)


한국교회의 인권 수호 노력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펼쳐온 인권 수호 노력은 주로 독재정권시절 권력에 희생당한 이들과 산업화과정에서 탄압받는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한 연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인권분야에서 보여 온 교회의 활동은 해방 이후 1967년까지의 「자각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 한국사회 현실 안에서 구현되어 가는 1968~1979년 「성장기」, 1980년 이후 현재까지의 「확대기」로 구분할 수 있다.

자각기에 교회는 주로 시혜적 차원에서 인권 수호 활동을 펼쳤다. 미국 전국가톨릭복지협의회 산하 기관인 「가톨릭구제회」의 지원을 통한 활동, 한센인들을 위한 사목, 1961년부터 시작된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또한 1958년에 창립된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인권운동과 함께 소규모의 노동운동을 전개해나갔고, 1964년 이후에는 직접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자를 위한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가노청의 활동은 이 시기 농민운동에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성장기에는 교회가 사회정의 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창립되고, 이듬해에는 원주교구에서 부정 부패 추방 운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불의와 부정,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교회의 사회정의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1974년 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과 관련된 정의 인권 운동, 1974년에 결성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교회의 활동은 인권분야는 물론 한국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노동ㆍ농민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1967년의 강화도심도직물사건에서 시작된 노동운동은 1970년대 들어 한국모방, 태광산업(광진섬유) 사건, 서울통상 및 인천 동일방직 사건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옹호에 힘씀으로써 인권운동의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아울러 1972년에 출범한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함평고구마사건, 안동농민회사건 등을 통해 농촌 현장에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1980년 이후 확대기에 한국교회의 사회정의 운동은 시민 중심의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되었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교회의 내적 역량을 기반으로 민족 화해와 일치 운동 등을 통해 인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갔다.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 창립을 계기로 도시빈민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중심으로 농민운동은 생태ㆍ환경 등으로 인식이 확장되며 교회 안팎에서 인권운동이 활성화되는데 밑거름이 됐다. 실제로 일반 사회 차원에서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았던 북한돕기ㆍ민족화해 등의 영역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9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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