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사목신학ㅣ사회사목

[통일사목] 정상회담 이후 남북 종교 교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83

정상 회담 이후 남북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를 위한 제언

 

 

1. 남북 정상 회담의 의의와 성과 

 

지난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 회담은 말 그대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서로 비난하고 경계하며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남과 북의 정상이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연회장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수차례 축배를 외치는가 하면, 5개항의 '6 · 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헤어지는 순간에는 감격에 겨운 포옹까지 하였으니, 이를 예기치 못한 우리에게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충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만남은 한낱 '충격적 사건'이 아닌 참으로 '역사적 사건'이며 여러 관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이 주지하는 대로이다. 첫째, 남북 정상 회담은 현 정부가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대북 포용 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북한 당국이 남북 정상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은 그 동안 '반북 대결 정책', '흡수 통일 정책'으로 매도해 온 우리의 대북 포용 정책의 참뜻이 남북간 화해 · 협력 및 평화 공존 · 공영에 있음을 인식하고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남북 정상 회담은 남북한이 서로의 정치적 실체와 대화 상대로서의 위상을 상호 인정한 것이며, 이는 곧 현 정부의 대북 정책 추진 기조 가운데 하나인 남북간 문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이 구현되었음을 의미한다. 셋째, 남북 정상 회담은 남북이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 · 협력과 평화 공존 · 공영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넷째, 남북 정상 회담은 탈이념 · 탈냉전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역행해 온 우리 민족이 바야흐로 세계 질서의 흐름에 주요 역할 수행자로서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며, 이로써 남북 정상 회담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동북아 평화 · 안정에 이바지하는 바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남북 정상 회담은 개최 자체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1994년에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중재로 성사된 남북 정상 회담 개최 합의와는 달리 남북 당국자가 직접 접촉하여 자발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성사되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역사적, 정치적, 상징적 관점에서와는 또 다르게 남북 정상 회담은 종교적 관점에서도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바, 이는 남북 정상 회담에 즈음하여 [서울 주보](2000년 6월 18일자)에 실린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글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을 가지게 된 것을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생각합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외세에 의해서 우리 나라가 분단된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대희년 6월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 회담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작용하시는 듯합니다. 

 

위의 글에서와 같이 2000년 대희년에 성사된 남북 정상 회담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큰 일보 전진이요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로 우리 모두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서울주보], 2000년 7월 2일자) 일이다. 또한 남북 정상 회담의 가시적 성과물인 5개항의 '남북 공동 선언'은 선언적 의의만 남긴 채 사장될 문서가 결코 아니다. 이는 여타의 남북 합의 문서와는 달리 남북한의 책임 있는 최고 당국자들이 직접 합의하고 서명하여 그 실천적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공식 표명한 문서이다. 그러나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며, 평화 통일을 이루기까지는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시작 단계에서 지나친 요구와 섣부른 기대는 자칫 실망과 좌절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 합리적 사고와 태도로 통일을 지향한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2. 남북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의 의의와 중요성 

 

남북 화해는 통일의 선결 조건이면서, 또한 통일 후 남북한의 '마음의 통합'을 위한 필수 선행 과제이다. 통일의 선결 조건 또는 선행 과제로서 남북한의 화해는 남북간 상호 불신과 적대감 해소를 뜻한다. 남북한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며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 과정에서 남과 북은 그 동안의 상호 정치, 이념 그리고 군사적 대결 관계를 지양하고 평화 통일을 지향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이익과 민족의 복리를 도모하는 상호 호혜적인 의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른바 한반도 냉전 체제를 종식하고 평화 통일을 지향한 공존 · 공영 체제 구축을 도모하는 것이며, 지난 6월의 남북 정상 회담은 이를 위한 의의 있는 첫 걸음이었다.

 

통일의 선결 조건으로서 남북 화해는 상호간 꾸준히 접촉하고 대화해야만 가능하다. 동 · 서독 간 '상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고 단계적 접근 방법인 '작은 걸음의 정책'을 수행한 독일 통일의 예는 대표적 모범 사례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에 대해 정치적 대응보다는 비정치적 차원에서 교류하고 협력함으로써 정치적 관계를 개선하려 했으며, 동독 정부는 실리 추구 차원에서 동 · 서독 교류와 협력에 호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 · 서독 사이의 상호 이해와 신뢰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이래 남북한의 경제, 사회, 문화의 교류와 협력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와 같은 남북 교류와 협력 동향은 2000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 공동 선언'의 제4항에도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함으로써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상호 신뢰 구축을 명시해 놓음으로써,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의 선행 과제로서 남북 교류 협력의 의의와 중요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 분야를 포함한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의 의의와 중요성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는 다음의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 활성화의 근본 취지는 남북간 사회, 문화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남북한의 '사회, 문화 공동체' 형성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의 차이를 열등 관계가 아닌 대등 관계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상호 존중과 이해를 도모한다는 데 있다. 둘째, 남북 사회, 문화 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는 남북간 이질화 극복과 동질성 회복을 위한 필수 선행 조건이다. 남북 사회, 문화 교류와 협력은 남북한이 상호간 삶의 양식을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하며, 남북한은 상호 사회,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로써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나아가 사회, 문화적 이질화로 통일 후 예상되는 남북 주민 간 문화, 심리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의 활성화는 북한 사회 변화와 체제 개혁, 개방 유도를 위한 비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활용 가치가 높으며, 활용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특히 최근 들어 점증하고 있는 남북 간 언론과 종교 교류, 협력을 더 적극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의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이바지할 것이다. 남북간 사회, 문화적 접근의 확대와 강화는 남북 관계에서 정치, 이념적 논리의 상대적 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편 화해는 진실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남북간 화해가 진실에 근거하려면 화해를 위한 회개와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할 때, 특히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는 그 의의와 중요성을 더하게 된다. 남북간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서로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태도 그리고 화해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화해 노력이 좋은 결실을 얻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이러한 사고와 태도, 용기, 그리고 확고한 믿음은 우리 종교인, 신앙인들의 강점이기 때문이다. 

 

 

3.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현황과 문제점 

 

1) 현황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은 북한의 종교관과 종교 정책에서 전향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 선언과 핵 문제에서 비롯한 남북 관계 경색에 따라 1993년 이후 한동안 종교 교류가 저조했으나 1997년 이후 종교인의 방북이 점점 늘어나는 등 활성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사된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주요 내용들로는,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한 사찰에서 공동 발원문 봉독(1998년), 천주교의 최초의 방북 성사(1998년), '종교인 북경 평화 모임'에서 남북 종교인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종교인의 역할 논의(1999년), '한국 불교 종단 협의회'와 '조선 불교도 련맹 중앙 위원회'가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한과 해외 불교도 공동 발원문 채택, 봉독(1999년), 200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평양에서 남북한 불교도 합동 법회를 개최할 것에 대해 원칙적 합의(1999년), 남한 목회자들이 북한 교회 부활절 예배 인도(2000년) 등이 있으며, 개신교에서는 오는 8월 예정된 희년 민족 통일 기도 대성회에 북한의 조선 그리스도교 련맹 강영섭 위원장 등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개신교파의 하나인 감리교 서부연회가 종교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평양 신학원' 재개원 사업과 관련하여 통일부에서 '남북 사회 문화 협력 사업자' 승인(2000년)을 받아 종교 분야 시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종교계의 대북 접촉 제의와 교류는 주로 식량 지원, 물품 기증, 복지 시설 건립 등의 대북 지원, 종교 행사 공동 개최, 성소 복원, 각 종파 대표단의 방북, 종교 회의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여러 종파 가운데 비교적 개신교의 활동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통일 준비와 민족 선교의 하나로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지난 1995년 5월부터 북한 교회 재건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 운동은 한국 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대북 선교 사업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정상 회담을 계기로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종교계의 대북 접촉과 제의가 현저하게 증대,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개신교에서는 평양, 또는 서울에서의 남북 교계 지도자 사이의 회담 개최, 북한 내 교회 재건, 의류 · 식량 지원과 선교 활동 강화 등의 대북 교류 활성화 대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불교계는 지난 6월 8일 대한 불교 조계종 산하 통일 전담 기구인 민족 공동체 추진 본부를 발족하고 향후 남북 불교 교류 사업을 논의한 바 있으며, 조계종은 특히 신계사를 비롯한 북한 내 불교 사찰 재건, 오는 광복절에 남북 공동 법회 개최 방침 등을 확정하였다. 지난 6월 한 달을 '민족 화해와 일치의 달'로 정했던 천주교는 6월 25일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 역 광장에서 6천여 명의 신자, 실향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화해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한 바 있다. 또한 천주교는 정상 회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북한 방문을 제의한 데 대해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종교 교류는 종래 주로 남한 종교인의 방북과 제3국에서의 간접 교류 형태로 성사되어 왔다. 그러나 1998년 이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제3국 공동 행사 중심의 접촉 위주에서 순수 종교 교류 목적의 방북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남북 종교 교류의 바람직한 동향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지난해 1999년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상반기에 천도교, 대종교, 불교 등에 종교 행사 공동 개최를 위한 접촉을 제의한 바 있으며, 1995년 이래 종교 교류의 다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대종교 등 민족 종교와의 교류에도 비교적 진지한 자세를 보이고 있음도 최근 남북 종교 교류의 주요 동향으로 지적되고 있다.

 

2) 문제점과 한계

 

최근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이 다양화와 급증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각 분야별로 교류, 협력을 위한 대북 제의와 교류, 협력의 내용이 매우 다양하며 양적으로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특히 남북 기본 합의서 타결 과정에서 북한측이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 남북 언론과 종교 분야의 교류, 협력이 현저하게 늘고 있음은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전망을 밝게 해 주고 있다. 그러나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은 거의 모든 분야의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에 주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종교 교류, 협력을 위한 남북 인적 교류는 주로 남한 사람들의 북한 방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간인들은 대부분 제3국을 통해서 북한을 왕래한다. 둘째,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은 종파별로 단순한 상호 교류 제의와 접촉, 또는 일회적 행사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며 항구적 지속적 교류, 협력이 합의되어 실행되는 것은 거의 없다. 셋째, 북한은 남북 종교 교류, 협력 제의에 대해 순수한 종교적 취지나 목적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실리를 고려하여 이용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호응해 왔음이 사실이다.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주체로 나서는 북한 종교 단체들은 관변, 어용 단체에 불과하며, 북한의 대남 교류 제의와 접촉 대상도 재야 단체와 진보적 인사에 편중되어 있음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넷째, 종래 남한 당국도 북한의 접촉 제의가 남한의 편향적 단체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들의 교류는 북한의 통일 전선 전술에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여, 북한의 정치성을 이유로 남북 종교 교류 승인을 거부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섯째, 남북 종교 교류, 협력에 대한 북한의 소극적 태도이다. 종교를 '제국주의적 침략의 사상적 도구'라고 매도해 온 북한으로서는 이른바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에 따른 체제 동요 또는 붕괴를 우려하여 남북 종교 교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여섯째 남북간 정치, 이념과 군사적 대결 구도이다. 1993년 북한의 핵 확산 금지 조약(NPT) 탈퇴 선언과 핵 문제 발생, 1999년 서해 사태 등 남북간 정치 군사적 쟁점이 발생한 직후 남북 종교 교류, 협력 실적이 급격하게 저조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남북간 정치 이념과 군사적 대결 구도가 남북 종교 교류, 협력에 기본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일곱째, 남북간 사회, 문화적 이질화이다. 남북한은 이질적 사회, 문화에 대한 상호 인식과 이해 부족으로 사회, 문화 교류, 협력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으며, 특히 종교의 기능에 대한 남북간 인식 차이는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또한 이 밖에도 남북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에 주요 걸림돌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중요도에 비해 재정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은 현실적으로 재정적 대북 지원과 연계되어야 지속이 가능하다고 할 때, 재정적 부족은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지속성 유지에 주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4. 남북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를 위한 제언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 방안은 위에서 논한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기본 방향으로 다음의 여섯 가지를 제시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 협조에 관해 간략하게 서술하기로 한다.

 

첫째, 북한 내 종교 유적지 복원과 성역화 사업 등 민족 동질화에 이바지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시범적 협력 사업을 적극 발굴하여 추진한다. 지난 5월 감리교 서부연회가 종교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평양 신학원 재개원 사업과 관련하여 통일부로부터 '남북 사회 문화 협력 사업자' 승인을 받아 종교 분야 시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음은 모범적 실례라고 하겠다.

 

둘째, 종파간 개별적인 직접 선교나 포교보다는 순수한 온정과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이를 위해 북한에 학교, 병원, 복지 시설 등을 설립하도록 범종파적으로 적극 지원한다. 이를 통해 북한에 범종파적인 사랑과 자비를 전파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남북간 화해와 상호 신뢰 구축에 이바지하는 바 클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종교 현황과 실태, 북한 종교의 특성 또는 기능에 대한 사전 인식 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김일성, 김정일을 신격화하여 숭배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종교는 일반적 개념의 종교와는 많이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북한 종교의 실체는 주체 사상과 영생의 김일성, 그의 후계자 김정일을 의미한다. '우리식'의 북한 선교와 포교가 북한 당국을 크게 자극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넷째, 교류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여 체제적 모순이나 현실 상황의 취약점을 자극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북 선교와 포교, 또는 대북 지원에서 북한을 구제, 또는 시혜의 대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자들에게 대북 선교와 포교 사업, 대북 지원 사업, 종교 교류의 취지와 목적 등을 정확하게 인식, 이해시켜야 한다.

 

다섯째, 무계획적 인적 교류 확대, 또는 물량주의를 지양하며 중장기적 전략 아래 점진적, 단계적으로 종교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종파간 상호 협조와 지원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파간 개별적 경쟁적 종교 교류와 협력 추진을 지양하고 종파간 조정, 협의 기구를 통해 남북 종교 교류 · 협력의 실효성 제고와 활성화를 도모한다.

 

이 밖에도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조 강화가 필요하며 주요 내용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장기적 안목에서 종합적 체계적 종교 교류, 협력 방안을 마련하며, 남북 종교 교류, 협력 제도화와 활성화 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둘째, 관련 정보와 자료 제공 그리고 재정 지원 등 남북 종교 교류, 협력 관련 연구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 셋째, 남북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를 위해 가능한 한 관련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남북 협력 기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종교 교류, 협력 활성화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 다섯째, 가능한 한 남북 종교 교류, 협력의 상대적 독자성 자율성을 보장한다. 

 

 

5. 맺음말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 사이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 적대 관계의 청산과 남북 화해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남북 정상 회담의 의의를 구현하고 그 성과를 하나하나 성실하게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요 사항이 있다. 그것은 남북 화해의 선결 조건이다.

 

남북 화해의 선결 조건은 회개와 용서이다. 화해를 위해서는 남북한 모두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여기에서 회개란 종래의 냉전적 사고와 태도를 지양하며 진정한 화해의 정신과 의지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한다. 용서는 남북한이 서로의 잘못을 덮어 주고 감싸주며 서로를 배격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자비로운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사랑으로 대하는 행위이어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를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고 신뢰하며, 지난 일을 초월하여 새로운 토대에서 남북 관계를 재건하고자 할 때에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용서란 이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때, 남북한은 상호 용서의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상호 이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접촉해야 한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남북 화해의 실천적 과제들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통일 전, 그리고 통일의 과정에서 교회는 인도적 대북 지원, 탈북 귀순자들의 남한 사회 적응 도모 등으로써 북한과 통일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또한 교회는 반종교적, 부정적 종교관으로 의식화되어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리고 긍정적인 종교관, 교회관을 심어 주며, 이로써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 되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일치를 선포하고 그 증인이 되어야 하는 우리 교회 공동체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앞장서서 그 필요한 일을 다해야 한다"(서울대교구 민족 화해 위원회, [민족의 일치를 향하여], 14면).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해 낼 수 있도록 교회는 온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형제들이 참으로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는'(이사 2,4) 주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알아뵙고 그분을 자유롭게 찬미하고 예배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서 한국 교회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교황께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 땅의 교회가 제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꾸준한 노력과 기도를 바쳐 오셨습니다([서울주보], 2000년 7월 2일자).

 

[사목, 2000년 8월호, 임순희(통일연구원 연구위원)]



44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