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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 효율적인 강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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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69

효율적인 강론 방법

 

 

사목자의 강론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어떤 신자들은 감동을 받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자들에게 사목자들의 강론에 대해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지루하다”, “내용이 부실하다”, “한 이야기 또 한다”, “요점이 분명하지 않다”, “두서없는 잡담을 늘어놓는다”, “본당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이다”와 같은 답을 듣게 된다. 

 

물론 어떤 사목자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강론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제대로 해 보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행스럽게도 강론에 대한 많은 책들이 이미 나와 있다. 이 책들은 강론하는 데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분석하고 피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 가운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골라 여기에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강론마다 핵심 구절을 정하라! 

 

프린스톤 신학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강론과 예배에 대해 강의하는 토마스 롱(Thomas Long) 교수는 「강론의 증인」(The Witness of Preaching)이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강론마다 핵심 구절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핵심 구절이란 전체 강론에 대해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간략한 설명이다. 곧 강론의 전체 내용이 이 한 문장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강론을 작성하는 일에서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성한 문장도 좋은 점수를 받을 정도의 명쾌한 것이 되기 어려운 법이다. 

 

핵심 구절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고, 내용이 응축되며 요점이 분명해야 한다. 사목자가 강론의 내용을 간단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없다면 신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핵심 구절을 작성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강론을 작성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구절은 강론을 작성하는 데 원칙적인 기준이 된다. 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은 빼 버리면 된다. 강론을 쓰면서 사목자는 자신이 작성한 내용을 재삼재사 평가하게 된다. 이 핵심 구절은 강론에 바람직한 내용만을 담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사실 핵심 구절만 작성할 수 있다면 강론은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방법이 잘 사용되고 강론이 핵심 구절의 기준에 맞게 되었다면 강론을 들은 신자들은 미사 후 강론의 내용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잘된 핵심 구절의 예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마르코 복음 8장 1절에서 10절까지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에 관한 강론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는 것은 핵심 구절로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자들의 회심을 목표로 하는 강론에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궁핍한 이들을 돌보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강론은 주님께 대한 존경심 이상의 것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강론은 신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궁핍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셨다.”도 역시 신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구체적 방향 설정을 해 주고 있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 구절이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강론 전체의 내용이 들어 있어야만 한다. 핵심 구절로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채 믿음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을 내세운다고 해서 좋은 강론이 나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위에 예로든 마르코 복음에 관한 바른 핵심 구절은 “제자들이 가져 온 부족한 음식으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 늘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필 계획을 드러내고 계시다.” 정도로 적어 볼 수 있다. 강론을 작성하는 동안 이 핵심 구절은 사목자가 늘 다음과 같은 것을 염두에 둘 수 있도록 해 준다. 곧 이 강론에서는 예수님께서 군중이 매우 배고프다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 제자들의 기여를 활용하고 계심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신자는 이번 강론의 요점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사업에 인간의 협조가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라고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핵심 구절의 ‘어려운 사람들’ 대신에 ‘배고픈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사목자가 배고픈 사람들을 모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인간들의 대표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목자는 강론을 통해 제자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오늘날의 신자들도 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강론을 작성하는 가운데 사목자는 핵심 구절을 명료화하는 데 불필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강론에 연관되는 이야기나 흥미 있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핵심 구절과 연관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런 내용들을 과감히 생략하여 신자들이 불분명하고 산만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강론 때마다 기능적 구절을 만들어 내라! 

 

「강론의 증인」에서 토마스 롱 교수는 효율적인 강론을 위한 두 번째 도구를 제안했다. 그것은 기능적 구절이다. 핵심 구절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가능한 한 매우 간략해야 하는데 항상 “……을 (하기) 위해”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기능적 구절은 신자들이 강론을 듣고 나서 ‘실천’해야 하는 것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기능적 구절은 신자들이 강론을 듣고 각자 나름대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목자가 신자들이 무엇을 행하기를 바라는지 간략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없는데도 신자 스스로 알아서 강론을 듣고 사목자의 의도를 알아채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많은 경우에 강론을 듣고 난 신자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하고 묻곤 한다. 그러나 기능적 구절을 적절히 활용하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위의 마르코 복음에 나온 내용을 인용해 보자. 여기에서 좋은 기능적 구절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어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라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한다.” 다른 경우에 사목자가, 예를 들자면 이웃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 센터 같은 특정한 일에 신자들이 참여하거나 후원하기를 바라는 경우 기능적 구절은 다음과 같이 작성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에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의미에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 센터 봉사에 본당 신자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핵심 구절이나 기능적 구절이 강론 안에 구체적인 문장으로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내용이 강론 때 구체적으로 말해지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 구절과 기능적 구절은 사목자가 강론을 하는 동안 기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목자가 강론을 준비하는 동안 핵심 구절과 기능적 구절이 옆에 놓인 메모지에 적혀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 이 구절들이 사목자의 머리 속에 간직되어 있다면 신자들이 쉽게 따라오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강론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3. 강론의 기본적 기준인 연계 단락 

 

강론에 대해서 백과 사전적 내용이 담긴 책인 「강론학연계 단락과 구조」(HomileticMoves and Structure)에서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의 데이비드 버트릭(David Buttrick) 교수는 대중 연설이란 화자의 정신에 있는 의식을 청자의 정신에 전달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강론이란 사목자의 정신에 있는 내용을 신자들의 정신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버트릭 교수는 전달해야 할 내용이 논리적 단락의 연속의 형태로 이루어질 때 이러한 의식의 전달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버트릭 교수는 이러한 부분을 ‘연계 단락’(move)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방법에 따르면 강론은 전하려고 하는 내용, 곧 토마스 롱 교수가 말하는 핵심 구절과 기능적 구절을 논리적이며 정돈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연계 단락의 연속일 따름이다. 

 

한 연계 단락을 읽으면 보통 3-4분 걸린다. 데이비드 버트릭 교수는 한 연계 단락이 3-4분보다 짧을 경우에는 청자들의 정신에 내용이 전달되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 경우 청자들은 들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연계 단락이 4분 이상 길어지면 청자들이 흥미를 잃고 주의가 산만해지게 된다. 3분마다 새로운 연계 단락이 등장하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자들의 흥미와 에너지를 유지시킬 수가 있다. 

 

데이비드 버트릭 교수가 제시한 연계 단락의 개념을 강론에 응용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기 위해서 성서 안에서 연계 단락을 찾아보도록 하자. 루가 복음에 나온 주님 탄생 예고 사건에 관한 성서적 설화(biblical narrative)를 예로 들도록 하겠다. 이 단원(pericope)을 분석하는 창조적인 방법은 구약의 예언자 소명 장면과 연관시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성서적 문서를 살펴보면 구약의 예언자들은 사목의 소명을 받을 때 다음과 같은 여섯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스러운 만남, 인사, 임무 부여, 거부, 확신, 징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여섯 단계는 루가 복음의 주님 탄생 예고 사건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성스러운 만남은 하느님의 대사로서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난 일을 통해 이루어진다(1,26-27). 인사는 바로 다음에 나온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1,28). 그 다음에는 임무 부여가 나온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에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1,31-33). 임무에 대한 거부가 성모 마리아의 고백의 형태로 그 다음에 나온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1,34) 그리고 이에 대해 확신을 주는 말이 나온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1,35). 그러고는 징표를 마지막으로 해서 종결된다. “네 친척 엘리자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1,36-37). 

 

물론 루가 복음의 주님 탄생 예고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위에서 설명한 대로 여섯 단계를 거치는 예언자적 소명 설화 형식의 장면으로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 경우 각각의 연속적 연계 단락들은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다음 단계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전체의 이야기는 단순히 각각의 연계 단락 안에 있는 역동적인 바탕들 간의 의사 소통과 이 6개를 하나로 묶는 가운데 일관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성서의 내용에 대해 오직 하나의 정답인 연계 단락의 구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목자가 성서 내용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접근하는가에 달린 문제이다. 

 

이제 연계 단락의 원칙을 강론에 적용시켜 보자. 마르코 복음에 나온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강론의 첫 연계 단락은 협력의 가치를 확립시키는 설화적 묘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신자들의 흥미를 끄는 설화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다음 연계 단락은 예수님 역시 협력의 가치를 체험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곧 예수님께서 그 음식을 위해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록 하시고 남은 것은 다시 거두도록 하시는 아름다운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제자들과 협력하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강론의 세 번째 연계 단락은 오늘날의 신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으로써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네 번째 연계 단락은 오늘날의 신자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구체적인 방법을 지적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결론 또는 다섯 번째 연계 단락은 그리스도인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신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강론은 다섯 개의 연계 단락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이 다섯 개의 연계 단락을 하나로 묶으면 앞에서 말한 핵심 구절과 기능적 구절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앞의 다섯 개의 연계 단락 가운데 하나라도 생략되면 강론의 구성적 논리가 상실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목자는 강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의 충실도를 평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척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연계 단락이 강론에서 논리적으로 필수 요소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빼야 한다. 

 

 

4. 자연스럽게 원고 없이 말하라! 

 

다른 사람에게 뭔가 읽어 주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만큼 신자들에게도 말하는 형식으로 전해지는 강론이 자연스럽고 스스럼없기 마련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명문이라 해도 강론을 신자들 앞에서 읽으면 안 된다. 강론은 말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론을 글로 써서 준비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글로 쓰다 보면 강론의 웅변적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찾게끔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주의를 기울여 준비한 웅변적 내용의 일부가 말하는 가운데 생략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원고는 강론대에 가지고 올라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원고는 강론에 필수적인 말의 특성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원고를 암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영향을 미친다. 신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강론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로 해야 한다. 많은 사목자들은 이에 동의하지만 강론을 ‘학습’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데이비드 버트릭 교수가 말한 연계 단락을 강론 작성에 적용할 때 사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각 단계에서 전달해야 할 연계 단락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아주 간단한 문구들을 적는 것 뿐이다. 앞에서 나온 마르코 복음의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에 관한 다섯 가지의 연계 단락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설명한 것을 강론의 기초로 사용한다면 사목자의 기록은 다음과 같은 정도일 것이다. 

 

첫째 연계 단락다른 사람들과 협조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둘째 연계 단락예수님께서는 음식을 나누어 준 제자들과 협력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다. 

셋째 연계 단락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때 그리스도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자들이 깨우치도록 이끈다. 

넷째 연계 단락우리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여기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지역 사회의 구체적인 일에 대한 목록을 작성한다. 

다섯째 연계 단락밖으로 나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자! 

 

이 경우에 첫 번째 연계 단락을 위해 협동과 협력의 보상에 관해 독창적인 사례를 준비했다고 하자. 사목자가 이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면 내용을 다 기억해서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 내용이 기억하기에 너무 복잡하다면 강론에 이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이런 내용을 버려야 한다. 이야기를 하려면 암기할 정도로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연계 단락을 위한 간단한 기록은 한두 단어 정도로 하여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만 하면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야구팀이 팀웍을 잘 이루어서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하는 이야기를 준비했다고 하면 첫 번째 연계 단락을 위한 간단한 기록은 ‘이야기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식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기록은 모든 단계의 연계 단락의 원고가 아니라 다음 연계 단락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만 알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강론을 연계 단락에 따라 구성하면 원고 없이도 강론을 이야기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연계 단락은 하나의 개념만을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한 연계 단락이 간단한 기록의 도움으로만 기억하기에 너무 복잡하면 신자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야 한다. 각각의 연계 단락이 강론의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벽돌 구실만 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 간단한 기록은 다음에 어떤 벽돌을 쌓을 것인지를 알려 주는 역할만 하면 그만이다. 

 

주일 미사 때의 일반적인 강론은 보통 8분에서 12분, 어떤 경우에는 15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이것은 보통 3개에서 5개의 연계 단락으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사목자들이 3-5개의 논리적 연관성을 가진 내용을 숙지하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각 연계 단락에서 이야기 할 내용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 활용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5. 친숙한 내용에 대해 창조적으로 말하라! 

 

아쉽게도 오늘날의 많은 사목자들은 지루한 강론을 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역동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다. 모든 사목자는 신학과 성서 연구를 해야 한다. 신앙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전하다 보면 얼마 안 가서 말할 거리가 다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어떤 사목자는 강론에 쓸 말이 단 한마디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느낌은 곧 새 책이나 글을 읽고, 세미나, 강의 또는 교육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사목자는 늘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신학적 지식을 획득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강론을 주로 하는 사목자는 어떤 형태이든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복음의 불변의 진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쌓아 신자들이 놀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사목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미리 다 알고 있다면 도저히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하여도 이미 익숙해진 방법으로 전달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떤 사목자는 매번 강론을 교부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강론 중간 쯤에 와서는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강론 할 때마다 변함이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역효과만 나기 마련이다. 물론 교회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것은 적절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나아가서 많은 경우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며, 가톨릭 교회의 강론에서 성모에 대한 신심을 앙양하는 것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을 사목자가 강론에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신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어 미사 중 복음 낭독이 끝나고 자리에 앉을 때 “오늘은 어떤 교부의 말씀으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야, 좋다.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강론이 절반은 끝난 모양이네!”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강론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미사 때마다 새롭게 선포하는 것이다. 성서 내용, 그 특징, 이야기의 전개 방법, 강론하는 사목자 등은 좌석에 앉아 있는 신자들에게는 모두 쉽사리 익숙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신자들에게 늘 새로운 방법으로 성서의 내용을 전할 때 강론은 흥미롭고 더 나아가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6. 강론에서 자신의 임무에 대한 세부 내용의 지침을 작성하라! 

 

강론을 하기 전에 강론의 과정에 대해 도표를 작성하도록 하자. 우선 강론대에 올라갈 때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이렇게 하면 구체적인 원고가 아니라 강론을 하는 데서 방향 감각을 키울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목자가 최근에 치과 의사를 바꾼 적이 있다. 그러자 새 치과 의사는 그 사목자에게 자신의 임무에 대한 세부 사항을 기록한 지침을 전하였다. 거기에는 그 치과 의사 나름대로의 치과적 치료 방법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그것을 읽어 보고서 이 사목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이 치과 의사는 자신의 모든 환자가 구강 위생을 위한 예방적 습관을 키우도록 조치하고 정규 개원 시간 외에 긴급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치료를 할 수 있는 방안도 수립한 것이었다. 이러한 임무 지침은 치과 의사의 의도를 환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환자의 치료에 기준과 검사 목록의 역할도 한다. 

 

강론이야말로 사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천명한 제2차 바티칸 공회의 가르침은 잘 알려져 있다. 강론의 정의를 사목자 스스로 내려보고 임무 지침을 작성해 보자. 사목자로서의 임무 지침은 어떠해야 하는가? 일단 한두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 그리고 이 임무 지침을 기준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강론의 목적을 향해 나가도록 하자. 철학을 정립하는 것은 엄청난 일인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임무 지침을 작성, 재작성, 수정, 폐기하고 필요한 경우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오히려 즐거이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 원문 : Michael Monshau, O.P., “Principles for Effective Preaching”, The Priest 58호(2002.9.12.), 20-26면, 이종범 편역.

 

[사목, 2002년 10월호, 마이클 몬셔(도미니코 대학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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