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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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상처받는 게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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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08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64) 상처받는 게 싫어요

 

 

Q.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이 너무 싫어서 세속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고자 합니다.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오로지 기도만 하는 그런 수도원을 알려주세요. 상처 입지 않고 상처 줄 일이 없는 그런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들어갈 생각입니다.

 

 

A. 형제님은 마음이 매우 여리신 분인가 봅니다. 사실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하는 형제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수도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아 수많은 상처를 입고, 여러 가지 콤플렉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상처입기도 하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형제님께서 정말 착하고 순수한 수도자들만이 사는 수도원을 찾아간다고 해도, 그래서 아무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형제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편안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도피적 사고방식임을 알려 드립니다. 

 

그래도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주고 싶지 않다면 자기 안의 여러 가지 욕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 나만의 세상을 갖고 싶은 욕구 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그러한 욕구의 좌절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 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장과정의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들이 마치 항구에 배를 맨 밧줄처럼 이런 욕구들을 꽉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좀 더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상처를 극복하는 현실적 방법이란 상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갖는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받거나 주게 되는 상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상처는 사람을 영적으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 욕구와 충돌하면서 받는 상처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욕구를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또 인생이란 본래 상처받고 상처주는 삶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자기 한계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범위의 상처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강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상처 입을 때마다 마음 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데,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가진 자연치유력에 의해 피가 멎고 찢어진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납니다. 이렇게 생긴 새살은 예전의 살보다 더 강합니다. 상처 입고 아물고 하는 삶을 반복한 사람들은 마치 전장에서 숱한 승패를 경험한 장수처럼,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혀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마치 무균실에서 사는 것처럼 상처를 피하면서 살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마음이 순수하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주지도 않는 이상적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몸은 약간 더러운 상태에서 살아야 여러 가지 병균들이 몸을 거쳐 가며 면역력이 생깁니다. 너무 위생적인 상태에서 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오히려 중병에 잘 걸립니다. 그처럼 상처입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사고능력이 마비돼 심리적 불구자가 되기 쉽습니다.

 

상처는 사람을 성숙하게 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의 경우가 전형적 사례입니다. 세상에 나가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에는 온갖 마음의 상처를 다 받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다 아버지에게 돌아온 둘째 아들은 상처입은 것 이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됐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별 상처 입을 일이 없이 살아온 큰 아들은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아버지를 비난할 정도로 심리적 기형아가 됐지요. 상처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잘 압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군대생활. 자주 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생활이라 본인들은 힘들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가 어른이 돼가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매우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왠지 어리고 미숙한 아이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상처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거름이란 말이지요. 형제님께서도 진정 성숙한 성인이 되고자 하신다면, 상처 받을 일을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삶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0년 8월 1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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