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5: 광야 가까운 고장으로 - 에프라임(타이베), 지프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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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88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 (5) 광야 가까운 고장으로 물러가심 - 에프라임(타이베), 지프나 그리스도인 마을


주님이 태어난 땅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타이베 마을 전경. 왼쪽 위에 동방가톨릭교회가, 왼쪽 아래에 그리스정교회가, 오른쪽에는 라틴(로마가톨릭)교회가 보인다.

 

 

에프라임(타이베) 그리스도인 마을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1,34).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머무셨던 에프라임(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타이베라고 부름) 마을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낡은 소형버스는 털털거리며 올리브밭 사이 산길과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달렸다.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산야가 점점 발 아래로 보이자 버스는 더욱 아슬아슬 곡예를 했다. 한편으로는 탄성을 지르며 또 한편으로는 가슴을 졸이는 순간, 버스가 마을 입구에 멈춰 섰다.

 

에프라임은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20km 떨어진 해발 900m의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인구 1300명의 타이베 마을은 팔레스타인 땅에 오직 하나 남은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된 마을이다. 마을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교회 터가 그대로 유적으로 보존돼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스정교회, 라틴(로마가톨릭)교회, 그리고 동방가톨릭교회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을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그리스정교회는 1770년에 학교를 지었고 라틴교구는 1869년에 남학교, 여학교를 각각 지었는데 이 둘은 1966년에 합쳐져 주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타이베 마을 수호성인 성 조지의 동상.

 

 

타이베 마을에서 만난 두 아이 엄마, 코리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리 시아버지 다우드씨는 가나안 사람으로 전통적 그리스도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인 자파(Jaffa, 현재는 이스라엘 지역임)에서 살았는데 1948년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는 피난민 수용소로 가는 대신 가족을 데리고 그의 아버지가 정교회 성직자로 있었던 타이베 마을로 옮겨왔다. 코리 시할아버지 아부 다우드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협력해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는 모든 희망과 믿음을 주님께 전적으로 맡겼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의 시아버지 역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한결같은 염원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상황이 점점 더 평화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볼 때마다 그들은 자주 시편 13편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주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제 영혼에 번민을 제 마음에 날마다 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원수가 제 위에서 우쭐거려야 합니까? 살펴보소서, 저에게 대답하소서, 주 저희 하느님. 죽음의 잠을 자지 않도록 제 눈을 비추소서. 제 원수가 "나 그자를 이겼다" 하지 못하게, 제가 흔들려 저의 적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의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제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주님께 노래 하오리다"(시편 13편).

 

시편 13편은 많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에게서 세례를 받은 자들로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한 계획을 드러내셨던 바로 이 땅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관해 큰 희망을 일깨우고 있다고 했다.

 

"군사 점령 아래서 겪는 매일 매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종종 절망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우리는 주님이 태어나신 귀한 땅에서 구원자이신 주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사랑과 평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유다 산골 에프라임으로 알려져 있는 타이베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 일인가. 2000여 년 동안 이 작은 마을은 성지의 그리스도인들 현존을 유지하는 은총을 누렸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유혈과 테러와 오랜 기다림을 극복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하느님 나라이므로, 이스라엘의 총구 아래서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십자가를 끝까지 질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뿌리를 보존해야 하는 사명을 잊지 않을 것이다."

 

코리의 말에서 오랜 믿음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과 힘을 느꼈다.

 

지프나 마을 전경.

 

 

지프나 그리스도인 마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지프나(Jifna) 그리스도인 마을에서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주민 1500명 중 80%가 그리스도인인 이 마을은 그리스 정교회와 라틴교회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8개 가문에 속해 있으며 이중 4개 가문은 지프나의 원주민이며 나머지 가문 사람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시리아 같은 외국에서 이주해 온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특히 마을자치회가 두 교회를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는데 마을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공동체적 연대로 긴밀히 대응해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만난 자치회 여성위원 알렉산드라 오데는 마을 주민들 중 그리스도인 수가 계속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직장을 얻어 고향을 떠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혼자 남겨진 노인들을 돌보는 의료서비스 등 자치회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오데는 한국 천주교회가 도와줄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오기도 했다.

 

지프나 마을 입구에 있는 성모상.

 

 

오데는 또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성지에 있는 우리 공동체들과 세계 기독교 공동체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절박한 필요성을 망각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세계 기독교 공동체들과의 연대는 우리가 성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존을 유지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잊지 않고 촉진할 수 있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대사관 통계에 의하면 지난 한 해 동안 이스라엘을 찾은 한국인 방문자 수는 3만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성지순례가 목적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살고 있는 토착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성지순례 중에 이들 그리스도 마을을 방문해 믿음의 전통을 배우고 나누며 작은 연대를 실현해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위해 기도로 함께 해주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진한 감동은 동시에 또 다른 숙제를 내게 던져 준다.

 

[평화신문, 2008년 6월 29일, 이승정(한국 카리타스 대북지원 실무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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