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김천애 안드레아, 최여겸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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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13 ㅣ No.1362

[124위 시복 특집] 한정흠 스타니슬라오(1756-1801) · 김천애 안드레아(1760-1801) · 최여겸 마티아(1763-1801)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제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전라도 김제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정흠 스타니슬라오는 먼 친척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집에 머물며 그 집 자녀들의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유항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한정흠은 주문모 신부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성사를 받는 등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자의 본분을 성실히 지켜갔습니다. 한정흠은 1801년 3월 유항검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혹독한 형벌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유항검의 종이었던 김천애 안드레아는 양반임에도 천민을 형제처럼 대하며 허물없이 한데 어울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유항검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신분 차별 없이 사람을 하늘같이 존중하는 천주교 교리에 감격하여 기꺼이 입교하였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김천애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정성껏 지켜 나갔습니다. 김천애는 1801년 3월 유항검의 맏아들 유중철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윤지충과 이존창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한 최여겸 마티아는 대단한 열성으로 신앙을 실천하며, 고향인 전라도 무장은 물론 인접한 영광, 흥덕, 함평에까지 천주교를 알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1801년 4월 최여겸은 한산에서 체포되어 일단 그곳에서 문초를 받고 감사의 명에 따라 무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관장은 즉시 그에게 형벌을 가하며 문초를 시작하였지만 곧 어떠한 형벌로도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했습니다. 계속되는 문초와 형벌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던 최여겸은 옥중에서 열심한 신자 한정흠과 김천애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최여겸과 그의 동료들은 그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마침내 1801년 8월 21일 형조는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각각 고향으로 보내 처형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김천애가 남긴 최후의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제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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