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무엇이 기쁜 소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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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570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무엇이 기쁜 소식인가?


정확히 언제쯤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 살 때 둘째 큰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큰아버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개울가에 달려가 걸레를 빨아다가 마루를 닦았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마루를 닦고 또 닦고 여러 번 닦은 기억이 나는데, 그렇게 했던 이유는 아마도 서울에 사시는 부자인 큰아버지께서 오신다면 맛있는 것을 많이 사 오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어린이에게는 부자인 큰아버지의 오심은 맛있는 간식의 도착을 의미했기에 이것은 아주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지요.


기쁜 소식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기쁜 소식이란 곧 복음을 의미하지요. 우리는 미사 때에 성경 말씀을 들은 다음에, 또 미사를 마치면서 복음을 전하자는 사제의 말씀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며 응답을 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마치고 무엇을 전해야 하는 것일까요?

신학생 때 같이 붙어 다닌 형님이 있었습니다. 이 형님이 어느 날 제게 묻더라고요. “규화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이 무슨 짜장면인지 알아?” 저는 어떤 짜장면 이름을 대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속으로 ‘이 형이 어디서 무얼 먹고 와서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뭔데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먹는 짜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이야.”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아직도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을 써 내려가면서 복음을 큰 틀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란 틀 말이지요. 그래서 복음의 시작과 끝 부분에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1장 23절 :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28장 20절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전해야 할 바로 그 복음, 기쁜 소식이지요.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왜 기쁜 소식인가?

얼마 전에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어머니께서 말씀을 하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살짝 옆을 보았더니 눈을 감고 계시더라고요. 피곤하신 모양인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조용히 운전이나 하면 되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어머니를 깨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께 “아니, 이젠 잠이 옵니까? 불안하지 않으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눈을 뜨시면서 “불안하긴, 이젠 편안해요.”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운전면허증을 따고 처음으로 중고차를 사서 직접 운전을 하여 수원에 있는 집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먼 거리를 혼자 직접 운전하고 오려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보좌신부로 있던 용인 수지본당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제 차에 타고 수지까지 동행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제 차를 타고 함께 오시면 나중에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셔야 하니까 마음이 좀 그랬지요. 또 왕초보인 제 옆자리에 앉으신다는 것은 아직 부담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어머니를 태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제가 아주 단호히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더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길을 잘 아니까 옆에서 조수 노릇을 잘할 수 있고, 제가 무사히 귀가하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당신은 버스를 타고 돌아가시겠다는 겁니다.

결국에는 어머니께서 제 옆자리에 타서 저의 귀가를 도와주고 가셨는데, 그때 일이 생각이 나서, “아니 그때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는데 왜 굳이 제 차를 타셨어요?” 하고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엄마는 다 그런 거예요!” 하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엄마는 조심해서 잘 가라고, 안전운전하라고 인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지만 직접 몸을 내던져서 함께 그 위험을 헤쳐나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바로 세상의 엄마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식들과 함께하듯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어떤 메시지를,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방법만을 던져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 안으로 몸소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면서 우리 곁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이 무엇이었는지 사도행전에 있는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린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분이고, 주님의 부활은 주님을 믿는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작은 복음들

소식은 전해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말한다면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하고 기쁘게 받아들일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뭐라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있다고? 그게 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기쁜 소식 자체이신 말씀이 우리의 복음이 되시려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심이 진정 모든 이의 복음이 되려면, 모든 이에게 복음으로 다가가려면, 우리 안에 육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으로 향하게 하는 세상의 작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접하게 되고, 우리와 함께 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를 통해 빛나소서. 저를 통해 함께해 주소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더욱 깊이 깨달아 알고 생활함으로써 세상의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함께하심이 진정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최규화 세례자 요한 - 수원교구 신부.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의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남 은행동 성가정본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3월호, 최규화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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