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ㅣ기타
만민에게 복음을: 캄보디아 - 쏙써바이떼? |
---|
[만민에게 복음을 - 캄보디아] 쏙써바이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로 10여 시간 북동쪽으로 가면 마지막 도시인 샌모노롬에 도착합니다. 그곳에는 제가 머물고 있는 기숙사(원주민 아이들이 도시의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돕는 곳)가 있습니다. 도시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작은 읍보다 더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저는 이곳 기숙사에서 콜롬비아인인 후안 신부와 함께 아이들도 돌보고 부스라와 닥담으로 미사와 기도모임을 다니고 있습니다. 부스라와 닥담은 캄보디아 몬돌끼리주에 있는 프농족 원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써못처(나무의 바다)를 지나면 바로 베트남과 맞닿은 곳입니다. 외국인이 원주민마을에 3일 이상 머무르면 안 되는 탓에 수요일과 토요일에 가서 하룻밤씩 자고 다시 샌모노롬의 기숙사로 돌아옵니다. 토요일 아침, 기숙사가 분주해집니다. 해가 동쪽 산등성이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주일 아침에 아이들에게 끓여줄 죽 재료를 사려고 시장에 갑니다. 돼지고기, 감자, 양파, 당근, 마늘, 식용유 등을 바리바리 사 가지고 기숙사로 돌아옵니다. 채소들과 다른 식재료는 커다란 자루에 담습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잘게 썰어서 볶아야 합니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상할 것을 대비해서 익혀가야 합니다. 준비가 다 되면 간단하게 캄보디아식 라면을 먹고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마을로 떠날 채비를 합니다. 부스라는 샌모노롬에서 오토바이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길에서 큰 비를 만나게 됩니다. 기숙사를 지킬 학생 한 명만 남겨놓고 오토바이 앞에는 짐을, 뒤에는 한두 명씩 학생들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 학생들이 교리교사이자 요리사이기 때문입니다. 비로 엉망인 도로를 지나 우기에 몬돌끼리는 초록의 바다가 됩니다. 커다란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의 바다는 마치 파란 도화지에 초록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합니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비로 길은 엉망입니다. 부스라 폭포까지는 도로 공사 중이라 어느 정도 가는 길이 수월합니다. 하지만 폭포부터 마을까지가 문제입니다. 폭포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지나면 고불고불한 언덕길이 시작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신부님! 오토바이 연습 더 하셔야겠는데요?” 학생 한 녀석이 웃습니다. “야, 하나도 안 아픈데 빨리 감자나 주워 담자!” 머쓱해진 나는 아픈 다리를 쓱 문지르며 웃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 그 녀석이 진흙 구덩이로 넘어집니다. “뭐야? 나랑 같은데. 안 아프냐? 하하하.” 녀석도 쑥스러운지 팔을 문지르며 대답합니다. “하나도 안 아파요.” 우리는 한참을 서서 웃습니다. 언덕 아래 부스라 폭포는 커다란 초콜릿색 물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갑자기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얼른 성당으로 들어가 보지만 벌써 옷은 다 젖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아까 넘어졌을 때 묻었던 진흙이 빗물에 씻겨 깨끗해진 느낌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제의와 미사경본이 젖지 않아 다행입니다. 입고 있던 옷은 대충 짜서 담요와 함께 처마 밑에 널어놓습니다. 한두 시간 뒷면 다시 해가 뜰 것입니다. 그러면 다 마르겠지요. 미사 도구를 정리해 놓고 청소를 하고 나니 다시 해가 떴습니다. 창문 너머 마을 뒷산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커다랗게 반원을 그린 무지개를 보니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아이들이 저녁거리로 가져온 고구마와 바나나를 먹고 자리에 눕습니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들이 수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보았던 수많은 네온사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게 밤을 비추고 있습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죽 맛 주일 아침. 사제관 밑에서 자고 있던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시끄럽습니다. 이제 일어날 시간입니다. 부스라는 다른 캄보디아 지역과는 달리 산속에 있는 마을이라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와 간이화장실에서 몸을 씻습니다. 춥기도 하고 아직까지 부끄러움이 많아 우물가에서 옷을 벗고 씻을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외국인이 씻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구경을 합니다. 언니오빠들은 벌써 성당에 와서 한 쪽에서는 죽을 끓이고 한 쪽에서는 교리 준비를 합니다. 이제 아이들도 하나둘 성당에 모입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한두 개씩 가져옵니다. 그 나뭇가지들을 모아 오늘의 죽을 끓입니다. 보글보글 끓는 죽에 어제 준비한 돼지고기와 채소들을 넣습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교리 공부하는 아이들의 코를 간질입니다. 교리 공부가 끝나고 먹는 죽맛은 정말 꿀맛입니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날마다 죽을 끓여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주일 하루 아이들이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80여 명이 되는 아이들 손을 씻겨주려면 우물가는 정신이 없습니다. 빨리 죽을 먹으려는 마음에 대충 물만 바르고 가려고 합니다. 옆에서 그런 녀석들을 잡아 비누칠을 해줍니다. 그래도 언니오빠들이 잘 챙겨주니까 빨리 마무리가 됩니다. 식사 준비가 끝나면 노래로 식사 전 기도를 합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앞에 놓인 죽을 맛있게 먹습니다. 몇몇 녀석은 빨리 먹고 와서 더 달라고 죽그릇을 내밉니다. 귀여운 녀석들입니다. 죽을 다 먹고 나면 아이들에게 비타민을 한 알씩 나눠줍니다. 처음에 비타민 약이라고 했더니 몇 녀석이 먹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비타민 사탕이라고 했더니만 먹지 않던 녀석들마저 비타민을 먹습니다. 문득 부모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단다.” “행복하세요?” 캄보디아에는 “쏙써바이떼?”라는 인사가 있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행복하세요?”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서로에게 행복하냐고 묻고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날마다 반복되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합니다. 또 그것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 선교사로 캄보디아에 왔을 때 많은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내 욕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 캄보디아의 작은 원주민 마을인 부스라에 부르신 까닭은, 비록 가진 재물과 가진 재주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과 작은 희망을 나눠주고 또 그 아이들이 받은 것을 서로 나눌 수 있게 옆에서 함께 서있으라는 것을. * 김낙윤 요셉 - 한국외방선교회 신부. 캄보디아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1월호, 김낙윤 요셉] 0 2,29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