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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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0)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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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66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10)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성자 예수가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곳에서 시작,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까지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이 없었다면 죽음을 넘어선 부활도 없다. 실패를 넘어선 사랑,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늘도 수많은 순례객들이 걷고, 기도한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힘든 길을 스스로 걸어간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쓰러지며 죽음의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조롱했다. “예수를 못 박으라!” 아무런 저항도, 변명도 없이 수난의 길을 걸어간 예수의 발끝에 담긴 구원의 신비, 그 누가 알았으랴! 그 길을 따라 오늘도 순례객들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밤새 채찍질당하고 십자가형 받다

 

제자들과 올리브산에서 최후의 만찬(22일자 20면 참조)을 들고,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 괴로워하던 예수는 유다의 배반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끌려가서 밤새 갈퀴 채찍으로 매질을 당해 초주검이 된 예수에게 극형인 십자가형이 선고됐다. 바로 로마 집정관인 빌라도 관저에서였다. 여기가 제1처,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시작점이다. 제1처는 과거 이슬람 재판정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이슬람학교(엘 오마야 칼리지)로 바뀌었다. 제2처에서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진 예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다. 로마 군인들은 자신마저 구원하지 못하는 초라한 몰골의 예수를 때리며 조롱했다. 채찍질당하는 예수, 이 정직한 사람의 피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손을 씻는 빌라도, 그리고 풀려난 바라바가 기뻐하는 장면을 담은 색유리화가 제2처에 있다. 제3처는 십자가의 무게를 못 이겨 예수가 첫 번째로 넘어진 곳이다. 힘없이 쓰러지는 예수를 손가락질하며 “이젠 끝”이라며 외쳐대던 그때처럼 시끌벅적한 도로변 제3처를 지난다. 거리는 소란하나 순례객들은 그에 휩쓸리지 않는다.

 

 

세 번 넘어지고 골고다에 오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희랍어로 해골산이라는 뜻, 영어로는 갈보리)로 향하던 예수님이 슬픔에 젖어있는 성모 마리아를 만난(제4처) 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다.(제5처) 제5처 바닥의 움푹 파인 곳은 예수님이 손으로 짚은 자국이다. 목숨이 붙어 있으니 피땀을 흘리며 걸어가는 예수님의 얼굴을 베로니카가 손수건으로 닦아준 제6처. 이때 예수께서 닦고 돌려준 손수건(현재 로마 베드로 대성당 보관)에는 예수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님은 제7처에서 두 번째 넘어졌다. 제7처는 시끄러운 바잘거리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이 안타까워 울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은 제8처 돌벽에는 ‘예수는 승리하셨다.’는 뜻을 담은 희랍어 ‘NIKA’가 새겨져 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음의 길 끝에 이 세상 구원이 있음을 그 누가 알았을까? 제8처를 왼쪽으로 돌아서 시장길을 조금 더 걸어가 돌계단을 올라서니 예수께서 세 번째 넘어진 제9처가 나온다. 제10처부터 14처까지의 5처는 골고다에 있는 ‘주님무덤 성당’(the Holy Sepulcher: 일명 성묘교회) 안에 있다.

 

 

예수의 성혈이 아담의 죄를 씻다

 

‘주님무덤 성당’ 안 제10처, 제11처, 제13처는 로마 가톨릭에서, 제12처, 제14처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제10처는 예수님이 옷벗김을 당한 곳이다. 팬티만 걸친 채,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겉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예수를 모두 비웃었다. 메시아라는 기대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 옆 제11처에서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혔다. 쾅! 쾅!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제12처에서 운명했다. 십자가를 꽂은 구멍이 있는 제12처 주변에는 휘장이 쳐져 있다. 예수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인간 관계가 찢어졌음을 암시하듯이. 사랑을 전하던 메시아는 이렇게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33세 짧은 삶을 마감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주님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예수가 숨지던 성 금요일 오후 3시, 골고다 언덕에는 광풍이 휘몰아치며 어둠이 내렸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갈라진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그 밑에 묻혀있는 아담의 두개골을 적셨다. 흘러내린 십자가의 보혈이 아담의 두개골을 흠뻑 적신 사건, 이로 인해 아담의 후손인 전 인류는 구원받았다.

 

 

죽음이 생명으로 부활하다

 

성혈이 구원의 강물이 되어 온 세상을 적신 현장을 보며 충격에 빠진다. 피가 흘러내린 바위틈, 십자가가 세워진 구멍, 그 아래에 있는 아담의 뼈…. 지금이라도 십자가의 피가 바위틈으로 흘러내려 우리 죄를 씻어줄 것만 같다. 죄없이 숨진 예수의 주검을 성모 마리아가 내려받은 곳이 바로 제13처이다. 숨진 예수를 눕힌 성모 마리아의 가슴은 창으로 찔린 듯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참으려 예수의 주검에 기름을 바르고, 장례를 준비한 제13처의 바위는 성자의 피와 죽음을 상징하듯 불그스레하다. 이 바위 제단에 성물을 잠시라도 얹으면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서인지 순례객들은 묵주 등을 올리고 묵상을 드린다.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던지 제단의 성석이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예수님이 묻힌 무덤(다음회 게재)은 제14처로, 죽음이 생명으로 변모된 부활의 현장이다. 전세계 주교좌성당(지역에서는 대구 계산성당, 안동 목성동성당)에서 다같이 거행되는 성목요일(올해 4월 5일) 오전 성유축성미사까지 계속될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적기이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매일신문, 2007년 3월 29일, 글·사진 골고다에서 최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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