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 마리애와 생명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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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57

레지오 마리애와 생명 사랑



우리가 믿는 하느님

하느님은 생명이십니다(요한 1,4). 하느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죽임 대신 살림을 본질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만 고집하시지 않고 나누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어 육화하셨습니다. 이로써 생명은 생명을 필요로 하고, 생명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생명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헌신하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 방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 인간의 생명을 살리시는 존재 방식을 보여주심으로써 교회가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 할 희망의 근거를 마련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하느님의 존재 방식을 선포해 왔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바로 생명의 복음입니다. 생명의 복음은 바로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사명의 핵심을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습니다.”(요한 10,10)라고 요약하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하느님이시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생명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는 것을 의미하고,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한한 인간의 생명이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거룩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늘에 닿아있습니다. 하늘의 명이 없으면 생명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 시작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이라도 거룩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은 세포 덩어리에 지나지 아니하고, 어느 순간부터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날 생명체는 처음부터 인간의 생명체입니다.


생명을 훼손하는 시대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고귀하고 거룩한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지극히 현세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만을 추구합니다. 피조물과 자연, 우주에 대한 지배력을 날로 강화시키기를 갈망하고, 심지어는 하느님의 지배권에 속하는 영역에 대해서도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침범하기를 서슴치 않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질서를 자신의 이념과 탐욕에 따라 확립하기를 갈구하며, 그것마저도 타인의 삶과 존재에 영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를 희망하고,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절제 없이 누리기를 희망합니다. 그 결과 곳곳에서 끝없는 자기 확장과 자기 방종이 나타납니다.

아울러 과학 기술(생명공학 또는 유전공학)의 이름으로 개입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생명을 상품화시키고 있습니다. 생명을 목적으로 삼지 아니하고 수단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생명이 경시되고 무시되는 현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일상화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화는 점점 더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 행위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물론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를 처벌하지 않으려는 입법화의 모색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은 그 긍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비인간화, 인간성의 부재와 상실, 인간 소외를 부채질하고, 인간 자체를 파괴하고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준 순기능 또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총체적으로는 죽어 가는 문화, 비인간화의 문화, 반생명의 문화를 촉발시키는 원인 제공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오만에 젖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키고 진보는 시켰지만 그것을 인간화시키는 인격과 교양을 갖추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거부하는 세상은 참된 희망에 대한 꿈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젖어버린 세상은 ‘할 수 있음’을 자제하는 통제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마저도 ‘할 수 있음’의 영역에 포함시켜 생명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교만에 젖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번뇌와 슬픔입니다. 그리고 죽음입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다짐 - 생명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규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신앙 고백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는 것을 의미하고,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하느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고 나눔으로써 이 세상에 희망을 주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생명의 소중한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세심한 감각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죽음의 문화와 반생명의 물결에 저항하면서 생명 문화의 회복에 투신해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거부하고 배척하고서는 어떠한 행복도 희망도 꿈꿀 수 없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포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전제합니다.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하느님의 존재 방식을 교회의 존재 방식으로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를 포함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연유합니다.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이시고, 하느님의 사랑은 생명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하느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부여하십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묵시 21,5). 우리 사회는 매우 시급하게 생명의 존엄성을 다양하게 훼손시키는 ‘죄의 구조들’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이 진리는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고 수호하는 일, 곧 생명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생명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화’는 ‘생명의 문화’로 변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 사랑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선물로서의 생명’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사령관이신 성모님께서도 생명을 선택하시고, 그 생명을 가슴에 품으시는 모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것은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죽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자로서 존재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탄생 90주년을 함께 자축합니다. 그 동안 한국 천주교회를 위해 보여주신 단원 여러분들의 열성과 노고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령관이신 성모님의 지휘 아래 늘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10월호, 글 안
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마산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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