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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호스피스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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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20

호스피스와 죽음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임종자를 돌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며,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삶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더구나 죽어가는 이를 돌보는 소명을 지닌 이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임종자의 편안한 죽음을 도와주기 위해서도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1.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발전하며 성숙되고 노쇠하며 죽게 됩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 지닌 정상적인 궤도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o, 1450-1519)가 충만된 낮의 생활도 수면의 기쁨을 주지만 인생은 죽음의 기쁨을 준다"고 하였듯이, 죽음은 인간에게 자연적인 현상이며 인생은 죽음을 전제로 한 삶인 것입니다. 삶 한가운데서 우리는 죽음에 둘러싸여 있고 죽음에 대한 질문도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뜻이며 불가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일회성은 삶의 허무를 말하거나 삶의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고, 삶이 단 한 번뿐이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큰 것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희망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임종의 순간에 ‘자매인 나의 죽음이여’ 라고 하며 죽음을 사랑하는 자매로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하느님 안에 있음을 확인했고, 형제들에게 ‘형제들이여!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시다’ 라고 하며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천명하였습니다. 죽음에 관해 올바른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철학자도 의사도 신학자도 법률가도 죽음에 관해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며 단지 경험적, 이론적인 견해만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죽음은 여러 권위자들에 의해 정의되어 왔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공식적인 정의에 의하면 죽음이란 본질적으로 중요한 특징의 불가역적인 상실로 말미암아 생물체가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 의학적인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의학적 측면에서 다루는 죽음은 주로 신체적인 죽음에 해당되며 신체적 죽음은 다시 임상적 죽음과 생물학적 죽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임상적 죽음은 호흡이 없고 심장이 정지된 상태이고 뇌의 활동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불가역적인 경우가 아니고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 소생을 주도하고 치료가 적절히 수행되면 정상적인 뇌기능을 포함하여 모든 신체 장기의 기능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소생술을 하지 않거나, 소생술의 효과가 없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데, 뇌의 신경과 모든 조직이 괴사되는 과정입니다. 순환이 되지 않고 약 1시간 후면 심장, 신장, 폐 등이 괴사되기 시작하며 약 2시간 후면 간이 괴사되기 시작합니다. 피부는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괴사되기 시작합니다. 즉 생물학적 죽음은 신체의 건강한 상태로부터 세포 전체가 생명 현상의 정지에 이르는 점차적인 이행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적인 죽음의 판정 기준은 죽음에 대한 개념의 중점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서 변화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호흡 정지, 심장박동의 정지, 피부색의 변화, 근육의 이완과 경직이 죽음 판정의 지침이 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의학이 발달됨에 따라 비록 뇌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어도 인공호흡 보조기 등의 도움으로 호흡이나 심장박동 등의 활력 증상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의학적인 죽음을 판정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고 법적인 문제에까지 파급되었습니다.

 

'뇌가 죽었다'고 하는 뇌사의 개념은 이미 1800년대부터 정의되어 왔지만 뇌사를 둘러싼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것은 1967년 남아공화국의 크리스챤 버나드 박사에 의하여 세계 최초의 심장이식 수술이 성공한 이후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뇌사가 무엇인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뇌사설에 대해 사회 각계 각층에서의 찬반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1993년 대한의학협회에서 제정한 ?뇌사에 관한 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망은 심폐기능의 정지인 심폐사 또는 전뇌기능의 소실인 뇌사로써 판단한다.

② 뇌사의 판정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 행위의 중단, 새로운 생명을  재창조하는 장기 공여의 경우에만 시행한다.

③ 뇌사의 판정은 대한의학협회 제정(뇌사 판정기준)에 따른다.

④ 뇌사 판정을 하고자 하는 의료 기관은 뇌사 판정 기준이 정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었는지에 관하여 심사와 인준을 받아야 한다.

⑤ 뇌사 판정을 한 의료 기관은 그 사례에 대한 점검 내용을 대한의학협회에 보고하여 인준받아야 한다.

⑥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고자 하는 의료 기관은 대한의학협회 제정 [장기이식 의료기관 요건]을 갖추어야 하며 그 인력과 시설에 관하여 대한의학협회의 심사와 인준을 받아야 한다.

 

현대 의술의 발전으로 인한 뇌사 판정은 잘 적용될 경우 과학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으나 뇌사가 장기이식의 효율성을 높일 목적으로 이용될 때는 사회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뇌사 인정이 장기이식과 관련된 것이면 그 조건이 윤리적이어야 하며 뇌사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곧 장기이식을 마음대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3. 종교적인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로부터 죽음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종교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임종자와 이를 돌보는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1) 동양 종교의 죽음관

 

(1) 한국의 무속 신앙과 죽음

 

우리의 옛 풍습에서는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정말 죽은 것이고, 그 영혼이 다시 그 육체 속으로 돌아오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호흡을 멈추면 그 사람이 입던 옷을 가지고 지붕 한가운데로 가서 북쪽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이름을 세 번 길게 부릅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 혼이 다시 몸에 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복(皐復) 혹은 초혼(招魂) 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그때에야 비로소 ‘죽음’으로 규정합니다.

 

한국인의 영혼관은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사람이 죽은 후 저승으로 가는 사령(死靈)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깃들여 있는 생령(生靈)입니다. 이와 같이 무교에서는 영혼을 평안히 모셔서 저승으로 잘 가게 하는데 특색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영혼에 대한 모습과 성격 규정을 살아있는 사람과 동일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 살다가 늙어 수명이 다하면 저 세상으로 ‘돌아가서 살게 된다’는 한국인의 생사관의 반영입니다.

 

(2) 중국의 유교 사상과 죽음

 

공자의 제자인 계로가 공자에게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태어나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유교는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자도 경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가는 죽음 자체의 의미나 죽어서 시작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삶과 죽음을 대자연의 법칙에 의한 신귀과정으로 봄으로써 형이상학적 문제로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삶과 죽음 때문에 앞뒤로 연장될 수 있는 상념을 처음부터 단념하고 거의 일회적인 인생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한 것처럼 귀신과 죽음의 질문을 뿌리치면서 사람과 삶에의 정열적 관심과 사랑을 나타낸 것이 유가였습니다. 죽음은 인생을 시작해서 엮어가다가 마치는 엄숙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생사에 대한 생물학적 또는 종교적 관심에서 벗어나서 자기 책임 아래 인생을 엮어간다는 자율의 도덕론적 관심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3) 도교 사상과 죽음

 

도교는 중국 고대의 민간 신앙을 바탕으로 삼는 신선설(神仙說)을 중심으로 불로장생을 주목적으로 하는 현세 이익적인 자연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교는 죽음을 문제시하지 않고 죽음을 단지 자연 변화의 일부로서 도(道)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장자의 도교적 입장의 죽음관은 특이합니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삶은 죽음의 동반자요,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어느 것이 근본임을 누가 알랴? 삶이란 기운(氣運)의 모임이고 기운이 모이면 태어나고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 것인데 이같이 사(死)와 생(生)이 같은 짝을 만나면 무엇을 조심하랴. 내 생애를 잘 지냈으면 죽음 또한 의연하게 맞이해야 한다.”

 

(4) 인도의 힌두교와 죽음

 

고대 인도인은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세상을 야마(Yama)라고 불렀고 이것이 불교에 들어오게 되면 염라(閻羅)라고 음역됩니다. 그러나 후기 베다시대(기원전 8세기경)에 이르면 야마의 왕국에서조차 삶과 죽음이 있다는 논쟁이 일어나서 윤회 사상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가사의를 죽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도인의 죽음관을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죽음이란 것을 낡은 옷을 벗고 새옷을 갈아 입듯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껍질을 벗는 새롭고도 영원한 재생으로서 파악하였는데 이는 죽음을 바로 생명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인도인들의 사상 속에는 인간의 본질적 자아가 생사의 순환을 벗어난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에 현세의 죽음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내세의 생명과 죽음까지도 정복하기를 열망합니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 죽음의 공포는 자취를 감추고 생사의 순환에서 자유로우며 육신의 죽음은 깨달은 자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아니라고 봅니다. 죽은 것은 육신이지 본질적 자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5) 불교 사상과 죽음

 

불교에서는 죽음을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았습니다. 이 현실의 냉혹한 자각을 통해 죽음이라는 실상을 초연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진실을 체득함으로써 현실적 죽음의 문제가 극복된다는 것이 붓다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극복을 통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 전반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死後) 의 존재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식이었습니다. 즉 삶에도 번민하지 않고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명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업과 윤회를 벗어난 경지로서 번뇌를 꺼 버린다는 원의를 지닌 열반입니다. 죽음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교의 궁극적 인식인 ‘생사 즉 열반(生死卽涅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도가 됩니다. 불교에서의 죽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며 마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무심(無心)의 상태, 즉 적정(寂靜) 이며 열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때 해결됩니다.

 

2) 서양 종교의 죽음관 - 그리스도교 사상과 죽음

 

죽음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사상은 우선 구약성서를 통해서 그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창세기부터 시편 이후까지는 죽음의 보편성과 아울러 연관된 인생의 허무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죽음의 보편성에서 다시 새로운 죽음의 의미를 부여하여 죽음과 죄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불사불멸하도록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죽음을 면제받을 소지를 지니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원조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순종치 않음으로써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죄로 인해 ‘죽음’이라는 벌을 받게 된 것으로 믿습니다.

 

신약에서의 죽음관은 예수와 죽음의 관계를 통해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조건으로는 감수해 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최악의 죽음을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벌받은 인간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였고, 그리스도가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하였듯이 모든 인류도 이 세상의 종말에는 모두 부활하고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의 죽음관은 바오로 사도의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비 1,21)” 라는 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죽음은 하나의 위기인 동시에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죽음을 하찮은 일로 경시하고, 부활 사상에 중심을 두어 죽음을 새로운 존재로 이끌어 주는 ‘희망’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4. 말기 환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러한 반응을 보일 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다른 모든 태도나 느낌처럼 개인에 따라 다르며 비록 비슷한 삶의 배경을 가진 자라도 서로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1) 두려움

 

① 미지에 대한 두려움 : 임종환자는 가까운 장래에 죽는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무지(unknown of death)는 다음과 같은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 삶의 과정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없을까 ? 

* 이 세상 삶 후에는 어떤 운명이 될 것인가 ? 

* 죽은 후의 나의 육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 

*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 

* 다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 

* 생의 계획과 목표는 어떻게 되는가 ? 

* 몸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 

* 감정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

 

▶ 어떤 질문은 즉각적인 대답이 가능할 것이고 어떤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어떤 것은 이 세상에서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답이 가능한 것은 해 주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며 환자를 무거운 짐에서 부분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고 공포에 대처하고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②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 외로움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죽 는 이들이 아픔과 괴로운 환경에 홀로 남게 되고 친밀한 환경(가정)에서 소외되고 병원이란 기관에 머물게 됩니다. 홀로 투쟁하고, 아픔을 견디고 두려움을 견디어야 한다는 외로움 고독 통증은 현대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다른이의 존재가 환자에게도 위로와 확신과 안정을 줍니다. 죽음 직전의 환자들이 괴로워하면서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해 준다면 가장 큰 위안이 되겠죠.

 

③ 가족과 친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프고 두렵지만 죽어가는 환자는 전부를 다 잃어 버려야 하 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④ 자기 조절 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 질병이 깊어감에 따라 자신의 신체나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점과 타인의 힘을 빌리고 의존해야 하는 신체적인 부담, 정신적인 부담과 경제적인 부담감을 가져야 하며 자기 비하의 느낌과 과정을 경험해야 하는 두려움입니다.

 

▶ 환자에게 남은 시간 중에도 어느 정도 조정과 조절이 가능함을 납득시키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격려하여 자아 존중과 자기 결정을 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의 비하에서 헤어 나오도록 해 줍니다. 또한 환자가 어떤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더라도 그의 자존심을 생각하고 존중하며 의견을 물어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⑤ 육체의 상실과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 : 육체는 자아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육체의 상실이나 불구, 기능 저하, 마비 등은 자기 자신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아상의 무너짐은 부끄러움과 부적절함, 죄의식, 사랑받지 못함, 원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 우리는 환자가 자기 상실에 대한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도록 기회를 주고, 또한 자아 존중감이나 자기 통합의 상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지해야 합니다.

 

⑥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 괴로움에 짓눌려 소리치며 죽어 가 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고통 그 자체이며 이러한 고통이나 통증은 수술 후의 통증과는 다릅니다. 환자가 통증 후에 완화될 수 있음을 알면 아픔을 덜 느끼게 되지만 죽음의 고통은 완화가 없는 것입니다. 즐거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고, 왜 이런 고통속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회의 속에서 살게 됩니다. 

 

▶ 따라서 통증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고통 중에 홀로 남게 되지 않고 통증이 완화될 수 있음을 알면 환자는 휠씬  고통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⑦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 인간적인 접촉, 관계, 가족, 친구 관계 의 상실, 육체의 구조와 기능, 자기 제어, 자신의 정체성을 협박하는 모든 의식의 상실은 그것들이 자기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 자신의 삶의 부분으로 접촉하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 줌으로 인해 자신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 주며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고 전생애에 있어서 한 부분임을 인정하도록 도와줍니다.

 

⑧ 슬픔에 대한 두려움 :임종환자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상실을 슬퍼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자기 자신을 잃는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 조절 능력의 상실

- 자립의 상실

- 신체적, 심리적 기능과 사고 능력 상실

- 중요한 사람과 외적인 것, 익숙한 환경의 상실

- 자기 자신의 어떤 특성과 정체성 상실(자신의 유능함, 사랑스러운 면, 자신의 매력의 가치 상실)

- 의미의 상실,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 상실, 죽음의 한 과정으로서 상실을 생각할 때,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체험하도록 하며, 특히 모 든 상실이 전부 일어나지 않음을 알려 줍니다. 또한 예측할 수 있는 슬픔은 받아들이고, 만족감을 즐기며, 성취감을 느끼도록 삶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⑨ 퇴행에 대한 두려움 :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환자는 퇴행에 대한 두려움이 더 현저해집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절 능력 상실에 대 한 두려움은 거의 마지막 행동과 관련이 됩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서 신체적 능력 저하와 의식의 불명료, 퇴행의 느낌, 현실감의 상실,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구분의 불명료, 시간과 공간의 느낌 상실 등이 환자를 두렵게 하는 것들입니다. 

 

▶ 환자가 편안하게 현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며, 자신의 위축됨과 승복을 인정하고, 심리적 죽음의 신호와 현실적 삶의 충격으로부터 피하도록 해 줍니다.

 

⑩ 절단과 부패, 매장에 대한 두려움 : 이러한 두려움은 특별히 죽음 의 과정에 포함되지 않으나 임종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두려움입니다. 가령 죽은 후에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이 매장된 후 벌레들에게 먹히는 두려움 등 죽음과 매장에 관하여 무서운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이러한 것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학의 정확성과 조심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2) 우울, 의기 소침

 

우울은 죽음에 직면한 환자의 또 다른 정서적 반응입니다. 임종환자의 슬픔의 한 부분으로서 즉각적인 상실을 인식하는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우울은 하나의 기전으로서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 우울은 환자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며 허용하는 태도로 환자를 지지해 주면 도울 수 있습니다.

 

3) 분노와 적개심 

 

분노와 적개심은 임종환자와 그 가족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이는 미래를 지속할 수 있는데 자신은 미래의 삶을 박탈당한 것입니 다. 다른 이가 삶을 사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며 남은 시간 동안에도 아픔으로 괴로워해야 하며 주위 사람들의 생소한 반응으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환자는 ‘내가 왜?’ 라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흔히 죽음 직전 불치병의 환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이시키기도 하며 이러한 감정들은 더 깊은 아픔과 슬픔, 공포를 은폐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 먼저 적개심이나 분노로서 대항하는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 이면에 분노, 적개심, 슬픔, 공포 등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환자가 자 신의 분노, 적개심을 비판이나 판단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분노의 표현에 제한을 둘 수 있으나 만약 환자가 좌절과 분노를 말로 표현하거나 신체적 활동으로 나타내면 공격심의 정도는 감소될 수 있습니다.

 

4) 죄의식과 수치심

 

임종 상태에 있는 환자들은 흔히 죄의식을 갖는데 정당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과장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우선 환자는 자신의 병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응보의 형태로 믿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으며 자연스러운 슬픈 감정의 체험도 어떤 이들에겐 죄의식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자신의 평정을 잃고 울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 환자가 죄의식을 갖는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은 죄의 결과는 아님을 이야기해 주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가족들에게 지은 잘못들을 성찰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를 용서해 주시 고 받아들여 주시고 살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자비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줍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자신의 신체적 혹은 심리적인 결함 때문에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환자는 자기 신뢰, 자기 조절, 독립심, 자율성 등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도록 요구되며 이러한 이유로 환자는 질병 자체로도 부끄러움을 일으킵니다.

 

▶ 환자를 돌볼 때는 어떤 여건 속에서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 주어야 하 고 환자의 사생활, 사적인 면을 최대로 보장해 주어야 하며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환자 스스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일상의 생활은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5. 말기 환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경험하게 되는 심리 단계는 어떤 것일까요? 각 심리단계에서 필요한 도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퀴블러 로스(E. K bler Ross, 1968)의 죽음의 5단계>

 

① 부정(Denial) 

 

임종에 가까운 대부분의 환자가 경험하는 첫 단계는 부정으로 환자들이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부정은 환자의 언어나 행동에 의해 나타납니다. 즉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라는 표현을 흔히 하게 되고 환자는 진단을 잘못 내렸다는 생각과 좀더 나은 진단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의사와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니게 되며 환자는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정의 단계에서 부정을 표현하는 환자의 말과 행동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심각하지 않게 증상을 이야기한다. 

- 죽음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면 즉시 말을 돌린다.

- 공개적으로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 비의학적 치료법이나 신을 통해 치유받고자 노력한다.

- 자신의 질병이나 증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 증상이 자연히 없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치료를 거부한다.

- 신체나 외모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질병을 가벼운 것으로 이야기한다.

- 아직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 어떤 병인지 알지만 자신은 꼭 회복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 먼저 간호사는 환자가 부정의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환자에게는 부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다음 환자가 사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병에 대해서 좀더 현실적인 견해를 갖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만일 환자가 그의 임박한 죽음에 관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입니다.

 

② 분노(Anger)

 

환자는 “하필이면 내가”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병원 직원에게 또는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분노의 단계는 가족들이나 직원들이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가 수시로 바뀌고 감정을 주위 환경에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나 간호사에게 자주 불만을 터뜨리며 의사에게도 불만이 많습니다.

 

▶ 환자 가까이 있는 사람(가족이나 간호사)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더 자주 환자의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경우 간호사는 환자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환자의 이러한 태도는 주위의 건강한 사람들의 건강을 질투하는 것이며 일찍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은 곧 죽게되고  사람들이 자기를 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불평을 하며 주위로부터 관심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간호사나 의료진이 환자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사적인 일로 받아들이며 분노에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는 더 심한 분노를 일으킬 것이며 환자의 적대적 행동은 심해질 것입니다. 만일 간호사나 가족이 환자로 하여금 그의 분노를 표현하도록 한다면 환자는 편안해 하고 목적 없이 간호사를 자주 부르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환자가 존경과 이해와 관심을 받으며 그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알면 그의 목청은 한결 낮아지고 성난 요구도 훨씬 줄어들게 되며 자신이 아직도 가치있는 인간, 보살핌을 받는 사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활동이 허락된 인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③ 타협(Bargaining)

 

첫 단계에서는 슬픈 현실을 대면할 수가 없고, 둘째 단계에서는 사람들과 신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나면, 환자는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불가피한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착실한 행동을 보이고 특별한 헌신을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소망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 며칠이라도 좋으니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 없이 보냈으면 하는 것입니다. 타협은 대개가 절대자와 하는 타협들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은 비밀로 붙여지거나 다른 말속에 언뜻 비치거나 원목실에서 사사로이 말하거나 합니다. 자기 몸의 일부나 전체를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언약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 심리학적으로 언약이라는 것은 죄의식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료진은 환자의 행동이 미성숙하며 어린아이 같고 환상에 젖어 있으며 어른으로서는 적당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환자의 소망을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간호사는 이러한 행동이 정상적이며 환자가 다음 단계를 위해 준비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④ 우울(Depression)

 

회복의 가망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병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하게 될 때, 증상이 더 뚜렷해지고 몸이 현저하게 쇠약해질 때, 환자는 더 이상 웃어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초연한 자세와 무감동, 분노와 격정은 머지않아 극도의 상실감으로 바뀌며 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이 단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우울증이 있는데, 그 하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이라 부르며 이것은 과거나 현재의 손상과 관계됩니다. 환자는 부모 없이 남게 될 아이들에 관하여 또는 막중한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될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또 다른 우울증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과 물건, 그 자신과 그에게 중요했던 모든 것의 손실과 관련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예비적 우울증이며, 이 단계에서 환자는 아주 조용히 있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 이 시기에는 환자가 슬픔에 젖도록 놓아두어야 하며 그가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필요로 할 때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혹은 이야기를 하며 조용히 귀담아 들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우울증에 빠질 때 환자는 별로 대화를 원하지 않으며 환자는 자기와 같이 느끼고 슬퍼하며 자기 옆에 있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⑤ 수용(Acceptance)

 

환자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또한 앞서 기술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움을 받았다면, 그는 자기 ‘운명’을 두고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 다음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는 이전에 자기 심중을 거쳐간 감정들을 털어놓을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산사람과 건강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이야기할 것이고 머지않아 자기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정든 곳을 잃게 되리라고 한탄할 것이며 또 어떤 기대를 가지고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입니다. 환자는 대개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지며 감정의 공백기를 가집니다. 수용을 행복한 감정의 단계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이 지나가고 몸부림이 끝나면,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의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 임종환자가 일종의 평안과 수용의 단계로 들어감에 따라 그의 관심의 세계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로 인해 환자는 혼자 있고 싶어하고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와하지 않으며, 사람이 방문을 해도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의사 소통은 언어보다도 무언의 대화로 바뀝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침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침묵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뜻깊은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느낌을 수용할 때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에서 큰 위로를 받게 되며 동시에 자신은 사랑받고 있으며 값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환자 못지않게 가족이 도움과 이해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실제적인 환자의 임종준비에 대해 알려 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의 상실감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출처 : 강남 성모 병원 호스피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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