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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사목] 너희가 노인을 아느냐? -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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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107

너희가 노인을 아느냐? -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인들

 

 

"도대체 어떤 사회가 당국이나 종교단체의 항의도 받지 않은 채 채소나 육류 대신 인간의 시신을 냉동창고에 보관하는가?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이른바 경보체계라는 것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파트 안에서 고통받는 것을 알리지 못하는가?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정부가 넘쳐나는 환자들을 의료진에 내맡긴 채 바캉스를 즐기고, 야당이 우리 문명의 본질을 드러낸 비극을 갖고서 부끄러움도 없이 정쟁을 벌일 수 있는가? 그 죽음들의 주된 원인은 더위도 아니고 노화(老化)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독이었다." 

 

지난 여름, 사상 최대의 무더위가 휩쓸고 지나간 프랑스에서는 한 지성의 이러한 넋두리가 온 국민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오늘의 사회를 일컬어 "울리지 않는 전화기 옆에서, 활짝 열린 냉장고 앞에서 노인들이 죽어가는 사회"라 부르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프랑스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동안 사망한 1만 1,435명 가운데 81%가 75세 이상의 노인들이었고, 여성이 사망자의 61%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올 여름 유럽 전역을 휩쓴 폭염으로 발생한 독거노인들의 대규모 사망 사태의 주범은 더위가 아니라 고독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65세 이상의 여성 3명 가운데 2명이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 사회가 치러야 했던 필연적 비극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이 외국에서 의사, 박사를 하고 있는 부유한 가정의 한 할머니가 계셨다.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였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기 시작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어디 다니러 가셨나보다.'라고 생각하였는데 하도 오래 나타나지 않아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이 도착하여 할머니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는 이미 목숨을 끊은 뒤였다. 할머니의 일기장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는데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오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냉대와 무관심 속에 자살하는 노인이 하루 7명꼴로,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 연간 전체 자살률의 2.3배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노인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퇴직 후 경제적 상실감으로 자존감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불안정은 건강 악화를 낳고 각종 장애를 수반하게 하여 사회참여를 어렵게 하고 점차 고립적 개체로 남게 된다. 배우자의 상실 등 가족관계의 축소 또한 견디기 어려운 사건들이다. 이러한 무력감과 절망감은 자신이 처한 모든 문제를 자살을 통하여 해결하게 한다. 또한 노인 교통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노인학대의 경우도 해마다 증가하여 올해 연말에는 10배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어놓기도 하였다.

 

결국 동방예의지국임을 자랑스러워하며 효 사상을 제일의 덕목으로 여기던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 사회의 진행과 경제적 어려움의 가중으로 노인의 목숨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슬픈 사회가 된 것이다. 

 

 

1. 늙어가는 한국사회 

 

'세계 노인의 날'이었던 지난 10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60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현재 6억 500만 명이며, 2025년에는 두 배로 되었다가, 2050년에는 20억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는 경제정책, 생활방식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경제마비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는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비율은 현재 22%이나, 오는 2050년에는 46%에 달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연금 수요도 폭증하게 되어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엔은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노인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일 때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로, 14% 이상일 때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337만 1천명으로 전체 인구 4,727만 명의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출산율 감소로 고령 인구 증가폭은 더욱 심화되어 2019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 127년 만인 1991년에, 스웨덴은 85년 만인 1972년에, 영국은 47년 만인 1976년에, 독일은 40년 만인 1972년에, 일본은 24년 만인 1994년에 고령사회가 되었다. 지금까지 고령사회에 가장 빨리 진입한 나라는 일본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이보다 5년 앞선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장수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노령화 속도에 비해 노후복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나 제도 마련 등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점이다. 고령사회에 진입하기 전 '고령자 10개년 계획'을 마련하여 노인복지 인프라가 잘 구축되었다고 평가받은 일본도 상상을 뛰어넘는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수명이 느는 반면 출산율은 낮아져, 전체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고령화이다. 따라서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사회적으로는 의료비 부담이 늘고 경제활력이 떨어져 성장률이 낮아지는 등 경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여기에 급속한 서구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가족의식 또한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 고령사회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이 겪고 있는 4가지 고통, 곧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병고(病苦) 등 노인문제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1) 빈고

 

노인의 건강문제와 더불어 고령자가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노인문제는 경제적 어려움[貧苦]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의 한달 생활비는 10만 원 미만이 28.6%, 10-20만 원이 29.8%, 20-30만 원은 21.4%로 우리나라 노인들 대부분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자녀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를 희망하고는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급여수준도 아주 낮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으나, 사오정(45세 정년)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갈수록 퇴직연령이 낮아져 '젊은 노인들'이 양산되는 것도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다. 

 

일터에서 50세 이상을 퇴출 대상으로 분류한 지 오래되었으므로 30년 이상을 아무런 경제력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거에는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만한 퇴직금과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은행 이자로 퇴직 후에는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삶의 질 향상으로 지출은 늘어가고, 은행금리 하락과 경기침체로 일자리는 줄어들어 경제적 어려움은 날로 심각해진다. 

 

미국 정부는 미국 사회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노령층의 이민자에게도 다달이 4백50달러 가량을 보조해 준다. 수입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의 일환이다. 유럽 국가는 공통적으로 성장률의 둔화와 실업률의 증가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노인들의 기본 생계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던 영국은 65세 노인에게 전액 노령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노인복지예산은 2,770억 원으로 정부 일반회계예산의 0.32%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생활보호대상 노인과 저소득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경로연금 2000억 원을 제하면 새로운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경로연금으로 노인들은 노년층 한 달 평균 용돈 1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3-5만 원씩을 지급받게 된다. 정부는 올해까지 경로연금 지급대상자를 전체 노인의 35%인 85만 명으로 늘리고 예산도 1%대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2) 병고

 

몇 년 전 다국적 담배 회사인 필립모리스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필립모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담배를 피우면 평균 수명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정부가 노인을 위해서 지출해야 할 예산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결국 필립모리스의 시각에 따르면, 노인은 국가의 예산을 갉아먹는 짐스런 존재일 따름이다. 

 

노인의 건강문제[疾病苦]는 빈곤문제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노인문제에 속한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10년 전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높아져, 남자는 72.8세, 여자는 80세, 전체 평균 76.5세에 이르렀다. 평균수명에는 교통사고 등 갑작스런 사고사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천수를 다했을 경우 80세 이상까지 장수하게 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장수는 건강이 뒷받침될 때 의미가 있다. 한국 노인의 86.7%가 퇴행성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그 가운데 11.5%는 전화걸기 등 일상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으며, 8.2%는 치매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일은 만성질병 유병률(인구 100명당 연간 만성질환자 수)이 1992년 20.5%에서 1995년 29.9%, 1998년 41.0%로 갈수록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질병은 일상생활을 방해하여 스스로 자립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일상생활(식사, 옷 갈아입기, 화장실이용, 걷기, 앉기, 목욕하기) 가운데 한 가지라도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31.9%이고, 이 모두를 의존하는 경우도 3.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바가 있다. 특히 치매와 같은 경우는 가족 구성원의 갈등을 일으켜 가족해체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등 그 정도가 심각하다. 현재 27만 명이 넘는 치매노인도 2020년에는 6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전문요양시설은 전국적으로 24개에 불과하고 수용인원도 2,400명으로 태부족이다. 

 

일본은 95%의 재택 노인들을 위하여 개호보험을 실시한다. 이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음에도 돈과 집이 없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른바 '사회적 입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또 외출이 불가능한 노인들에게는 신체 개호 서비스와 가사원조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있는 노인들은 병원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국민연금도 탈 수 없을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사람들은 저소득층 의료지원, 곧 노인의료보험(medicare)의 혜택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건강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자 2007년부터 노인요양 보장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 치매전문병원 등 노인요양시설과 서민중산층 대상의 시설 수요 충족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보건소와 요양시설 등을 최대한 활용해 치매노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를 확립할 방침이다.

 

3) 무위고

 

퇴직 후 무료하게 말년을 보내는 것[無爲苦] 또한 노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4-1999년에 우리나라 노인들이 일을 그만두는 평균 연령은 67.1세로, 일본(69.1세)에 이어 두 번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자영업자가 아닌 고용되어 일하는 비율도 68%로 드러나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이 비정규직이거나 무급으로 일하고 있어 충분한 일자리 보장이 되어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한노인회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노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51.2%),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 위해(20.4%), 건강유지(13.4%), 소일거리(12.0%), 자기능력 확인(3.0%) 등의 이유로 취업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젊은 세대 중심의 변화지향적 사회경쟁체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노년층의 일자리는 욕구에 비해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 대한노인회가 노년층의 재취업을 알선하고자 운영하고 있는 전국 70개 고령자 취업알선 센터를 통해 취업한 노인은 지난해에 16만 7천 명이지만 그 가운데 1개월 이상의 취업은 1만 3천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취로사업이나 농촌 일손 돕기, 유휴지 개간 등 단기간의 취업에 머물렀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으나, 아직 노인들의 근로현장은 열악할 뿐이다. 

 

정부는 고령자의 근로환경을 조성하려고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능력위주의 임금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다. 또한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종 개발을 확대하여 중장기적으로 정년 연장을 검토할 것이다. 또한 내년에 설치될 노인인력운영 센터를 중심으로 2007년까지 일자리 30만개를 창출할 계획이다.

 

또한 2002년도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의 여가 활용 방법으로 60.6%가 텔레비전 시청, 라디오 청취를 선호했으며, 주로 연속극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령자의 문화생활이 지극히 제한적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5.4%, 인터넷 이용자는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보화에 대한 소외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치참여율은 젊은 세대보다 높아, 지난해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0대는 83.7%, 60대는 78.7%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는 사회참여 의지는 높지만 지극히 접근방식이 제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쉬운 투표 행위와 텔레비전 시청 등에 높은 참가율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4) 고독고

 

한 일간지에 최근 일본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오레다요, 오레(나야 나)" 사기사건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사건은 노인의 외로움과 노환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기사건이었다. 

 

지난달 29일 홋카이도 지방에서 진도 8.0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지방에 사는 82세 할머니에게 한 남자가 전화를 해왔다. "할머니, 나야 나. 지진 때문에 놀랐죠?"라며 마치 손자처럼 굴던 이 남자는 "교제 중인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서 그런데,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돈을 부쳐달라."고 요청했다. "급전이 필요하다."는 남자의 말에 할머니는 35만 엔(약 350만 원)을 그 남자가 일러주는 계좌로 입금시켰다. 그 남자를 손자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지난달 28일 도쿄에서는 86세 할머니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전화를 걸어 70만 엔을 빼간 사건도 발생했다. 이러한 사기사건은 귀가 어두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범죄의 배경에는 고령화 사회와 노인들의 고독이 깊어지는 사회현상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평소 가족들에게 소외당하는 노인들이 실제로 그런 부탁을 받게 되면 '내가 아직 아이들에게 의지가 되는구나.'라는 기쁨마저 느껴 선선히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 가운데 자녀와 별거하는 노인은 전체의 41%에 달하며, 농촌지역의 경우는 54%에 이른다. 또 노인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60세 이상 노인 가운데 4분의 1이 단독가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여성 노인이 87%를 차지한다. 또한 부모의 노후생계에 대한 가족의 책임의식은 크게 감소해 가족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7%로 98년 대비 19.2% 포인트 낮아졌다. 아직까지는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높지만 갈수록 가족 부양을 기대하기 힘든 세태로 나아가고 있다. 60세 이상 노인들의 견해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부모의 노후 생계를 주로 장남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28.5%로 98년에 비해 11.8% 포인트나 하락한 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13.6%로 4.7% 포인트 높아졌다. 자녀와의 별거나 노인가구의 급증은 노인들의 경제적 빈곤과 정서적 소외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2. 노인인권에 대한 유엔의 기준

 

1991년 유엔 총회는 고령화에 대한 행동계획의 이행을 강화하고자 '노인에 관한 유엔 원칙'을 채택했다. 일자리를 비롯한 자조할 수 있는 독립의 원칙, 사회에 통합되어 자신의 안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관여하는 참여의 원칙,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보살핌의 원칙,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는 자아실현의 원칙,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며, 착취와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존엄성 원칙 등 다섯 가지 기준이 유엔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유엔 총회는 또한 1999년을 '세계노인의 해'로 선포하고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를 향하여'라는 기본 원칙 아래 세대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노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데, 노인은 의존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속적으로 개발의 과정에 참여해야 할 주체이자 개발의 혜택을 함께 누려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노인인권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의식주는 물론 배변과 목욕이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신체적 정신적 장애, 쇠약으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생활하지 못하는 노인은 공적 부담으로 수발이나 원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신체 질환이나 장애에 대한 적절한 의료나 조치를 받아야 한다. 넷째, 노인 자신이 일해서 수입을 얻을 권리와 일할 수 없을 경우에 그에 상응하는 소득이 보장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재산상의 관리와 보호를 보장받아야 한다. 여섯째, 정치와 정책에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긴 노년을 보람되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여가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노인의 권리가 침해당하거나 불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아야 하고, 폭력이나 학대를 받았을 경우 신속히 구제받아야 한다. 

 

 

3. 왜곡된 시각이 노인문제 해결의 걸림돌

 

지난 연말에 개봉된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는 우리에게 "너희가 노인을 아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70대의 실제 인물이 연기를 하여 관심을 끌었던 이 영화는 파격적인 노출신 등으로 등급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등급 논란은 노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불같은 사랑이 당연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기에 두 노부부의 성애 장면이 불온시되었지만, 동일한 장면을 젊은 연기자가 연기했다면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까닭이야 어떠하든 이 영화는 수많은 노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70대의 노인들도 20대 젊은이 못지않은 뜨거운 연애 감정을 느낄 수가 있고, 육체적 사랑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많이 늙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젊은 사랑을 하며,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다. 마음은 전혀 늙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몸이 늙어간다는 사실이 슬프긴 하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은 꼭 삶이고 인생이며 지금,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오늘날 노인문제는 노인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 우리 사회는 노인을 부양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있으며, 부양의 책임도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효율성과 경쟁력이 절대적 가치로서 경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질서를 좌우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은 그저 '어쩔 수 없이 떠맡아야 하는 가족이나 사회의 짐', '발전이 멈춘 존재'로만 인식된다. 이에 따라 노인들이 다른 연령 집단과 다름없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이 위협받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인인권의 보호는 정부와 사회가 일차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노화'는 전 생애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이므로, 사회정책은 전체 인구의 노인기 이후의 삶을 대비할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노인과 다른 연령대의 사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노인인권 보호는 자신의 부모님이 겪고 있고, 자신이 곧 겪을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내 삶을 준비하듯이 노령사회를 준비할 때 우리는 자연히 세대 통합을 이룰 수가 있게 된다.

 

[사목, 2003년 11월호, 서헌성(아름다운 재단 1% 나눔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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