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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이주 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교회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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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99

이주 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교회의 노력

 

 

"가장 중요한 일은 고향을 떠난 노동자가, 영구 이주자이든 계절 노동자이든 간에, 노동의 권리라는 문제에서 그 사회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과 비교해 볼 때 불이익의 처지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이민이 결코 재정적 사회적 착취의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관계에서도, 해당 사회의 다른 모든 노동자들처럼 이민 노동자(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지, 국적이나 종교 또는 인종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커다란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민들 스스로 느끼는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노동하는 인간」, 23항). 

 

 

1. 이주 노동자들의 현주소

 

필자가 이주 노동자를 처음 만난 것은 1991년 의정부에 있는 한 병원에서 현장체험을 하던 신학생 때였다.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옮기고 여러 허드렛일을 하던 중, 한 외국인이 톱밥과 피범벅이 된 채로 들어왔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미 두 손가락은 엉망으로 잘려나간 상태였다. 치료하는 의사에게 연방 서툰 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예의 바른 그 모습과는 달리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응급실 밖에서는 의사와 공장장이 다투는 소리가 났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심각한 상태라고 말하는데, 공장장은 진통 주사나 맞고 나면 데리고 가겠다고 옥신각신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불법체류자인 이 외국인은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돈을 벌 목적으로 한국에 밀입국하여 나무 자르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대형 톱날에 손가락을 잘린 것이었다. 당시에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신분이 노출되면 출입국법 위반으로 잡혀갈 처지였다. 왜 그렇게도 안절부절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다섯 손가락 다 바꾸어도 행복할 수 있다던 그의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에는 참 안됐다는 생각뿐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나 인권문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서 착잡한 심정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20세기 초반 하와이의 농장에서 이주 노동자로서 고향을 떠나 살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우리의 젊은 처녀들이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국민 모두는 깊은 분노를 느끼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도, 이용당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깨닫고 공감하였다. 1960년대 우리 노동자들은 독일로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로 일하러(guest worker) 나갔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중동에서 건설 노동자로서 외롭게 생활하기도 했다. 

 

그 밖에 여러 나라에 여러 가지 일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주 노동자가 되어 이 나라를 떠났다. 우리 노동자들 또한 가족을 위해 돈을 벌거나 집을 사려고, 또는 고향에서 사업을 벌일 희망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하고자 외국에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그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존중되기를 바랐다. 많은 경우 우리 노동자들은 노동력 착취에 시달려야 했으나, 몇몇 국가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환영했고 인격을 존중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일하던 그 나라에 정착하기도 했다. 지금 경제적으로 발전한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수 없는 것일까?

 

이 땅에서 생활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여러 어려움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집을 떠나 낯선 나라에 와서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적은 임금으로 더 오랜 시간을 일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산업재해를 당하여 손과 발 또는 신체의 다른 부분을 잃고 아파하고 있으며, 다친 몸으로 편히 쉴 곳도 없는 열악한 생활환경과 노동조건으로 암과 같은 중병을 얻기도 한다. (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 상황이 1970-1980년대 우리나라의 하급 노동자들이 경험했던 고달픔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 모든 어려움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느낌표'의 '아시아! 아시아!'를 비롯해서 언론매체들은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는 가운데 우리에게 매우 슬픈 소식도 전해준다.

 

 

2. 이주 노동자들의 현황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대외적인 척도와 자랑거리가 되었던 서울 올림픽은 많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코리안 드림'을 안겨주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난한 가족을 돌볼 목적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입국하여 이 땅의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부 공식집계에 따르면,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10여 만 명이던 이주 노동자는 2003년 2월 말 367,158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중 합법적인 이주 노동자는 79,350명(전문기술인력 21,229명, 연수취업자 11,801명, 산업연수생 32,576명, 해외투자기업연수생 13,744명)에 불과하며, 79%에 해당하는 287,808명이 불법체류자이다. 이 통계 외에 밀입국자와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실제 불법체류자는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내 노동자의 3D 업종 기피 현상과 고령화 사회의 진전 등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고 따라서 외국인력의 수요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30년대에 이르면 기반산업을 위해 한국에 100-200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 가운데 약 90%가 동남아시아인이고 이 가운데 약 65% 정도가 조선족인데, 거의 대부분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상담소를 찾는 이주 노동자들의 약 80%가 5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가난한 아시아 사람들이나 남미, 아프리카 사람들은 언어장벽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은 변두리 지역에서 기숙할 수 있는 작은 직장을 선호하고, 조선족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주로 요식업이나 건설현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인들은 같은 동양 문화권이기에 적응이 쉬울 것으로 생각하고 한국에 오지만 문화적 차이, 의사소통 문제, 사회적응 문제, 노동 문제, 한국인의 배타성 등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뿐만 아니라 사기, 폭행 외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이용한 협박과 임금체불 문제 등 인권유린의 문제가 국제적 지탄을 받는 수준이다.

 

한편, 장기체류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따라서 혼인이나 자녀양육 문제가 심각하고 외국인 범죄가 증가하는 부정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국경 없는 마을이 생겨났고(경기도 안산지역), 한국 안에 차이나타운(서울시 가리봉동)도 형성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이주 노동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기에 언제 강제로 출국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노동현장에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도 기피하는 실정이다. 고용허가제가 되어도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이 3년을 넘긴 불법체류 상태이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취업을 위해 재입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행 제도에서는 불법체류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이다. 특히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은 더 곤란한 상황이다.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 역시 대부분 영세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불법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곳에 고용되어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임금체불 등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체불임금이 2000년 12억 원에서 2001년 27억 원, 2002년에는 58억 원으로 늘어난 데 비해, 산재보험 수급자 수는 2000년 1,489명, 2001년 2,074명, 2002년 2,76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3.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교회의 제언들

 

"교구장은 목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연령이나 신분조건이나 국적이 어떠하든지 또 지역 내에 상주하는 자들이거나 잠시 기류하는 자들이거나 간에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신자들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음을 표시하여야 한다. 또한 생활조건 때문에 정상적 사목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자들과 종교의 실천을 떠난 자들에게도 사도적 정신을 뻗쳐야 한다"(교회법 제383조).

 

"부유한 나라들은 자기 조국에서 얻을 수 없는 안전과 생활필수품들을 구하러 온 외국인들을 가능하다면 모두 맞아들일 의무가 있다. 공권력은 손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이 그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연법이 잘 지켜지도록 보살펴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41항).

 

"민족과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자기 노동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타국이나 타지역 출신 노동자들과 관련하여, 보수나 노동조건에서 온갖 차별을 힘껏 막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은, 특히 공권력은 그들을 단순한 생산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 여겨야 한다"(사목헌장, 66항). 

 

교회의 가르침은 확고하고 분명하기에 그동안 정부당국과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에게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였고, 이주 노동자들을 노동의 동반자로서 대우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93년 7월 29일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성명 '너희는 나그네였으니 나그네를 소홀히 마라'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며 온갖 종류의 인권침해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선진사회의 인간다운 노력임을 밝혔다. 또한 이주 노동자들을 단지 값싼 노동수단으로만 여기거나 불법체류 신분을 비인도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생산과정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1995년 1월 23일 이주 노동자 인권에 대한 성명 '저들의 절박한 처지를 착취에 이용하지 마시오'를 통해, 모든 이주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여 노동자로서의 확고한 신분을 보장하고 적정 임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산업재해를 당한 모든 이주 노동자들이 합당한 보상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을 촉구하고,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새로운 사태」 반포 105주년 기념일인 1996년 5월 15일에는 '노동자들의 참다운 권익을 위한 건의서'를 발표하여 산업연수생 제도의 불합리성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 제정을 촉구하였다. 1997년 6월 25일, '다시 한번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의 제정을 촉구하며'를 통하여, 우리나라 노동자 역시 한때 이주 노동자로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이 땅의 이주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기본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1998년도에는 법무부에 요청하여 자진 출국하고자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범칙금을 면제받고 출국할 수 있도록 하는 소기의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2002년 7월 25일에는 정부가 발표한 '외국인력 제도개선 대책'에 대하여 "일자리를 찾는 이민의 문제는 대단히 오래된 현상이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왔고, 복잡한 현대생활의 결과로서 오늘날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현상이다. 다른 지방에서 더 나은 생활조건을 찾고자, 인간은 여러 가지 동기에서 고향을 떠날 권리와 또한 다시 귀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노동하는 인간」, 23항)를 인용하여 이주의 자유와 권리를 천명하였다.

 

또한 현실성 없는 단속과 불법체류자의 강제출국 조치는 불법체류를 자진 신고한 25만 6천 명의 이주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일이며, 교회 관련 단체들과 비정부기구들(NGOs) 그리고 더욱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기에, 오히려 정부가 인권과 정의에 입각한 노동허가제나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고 정의로운 일임을 각성시켰다.

 

 

4.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서울대교구의 구체적인 사목활동

 

1992년 8월에 '외국인 노동 상담소'를 개설하면서 본격화된 교회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사목활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째는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들어주고 문제해결을 도와주고자 외국인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2003년 8월 현재, 서울대교구 안에 '외국인 노동 상담소'(보문동 노동사목회관 4층), '의정부 이주 노동자 상담소'(의정부 녹양동성당 내), '가리봉 이주 노동자 상담소'(가리봉시장 내)가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임금체불, 산업재해, 퇴직금, 항공권, 쉼터, 여권, 출국, 입국, 폭행, 사망 등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강남 여의도 의정부 성모병원, 성가복지병원, 요셉 의원, 라파엘 클리닉, 도티 병원, 가톨릭 의대 간호대학 봉사팀 등 뜻있는 의료인들의 도움으로 무료진료와 건강검진을 하고 있다. 한편, 언어별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상담뿐만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의 빠른 사회적응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언어권별로(영어, 타갈로그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등) 담당 사제들이 함께 상주하며 신앙상담과 성사생활도 도와주고 있다.

 

둘째는 이주 노동자들이 놓인 어려운 상태에 따라 다양한 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베다니아의 집'(외국인 산재 노동자 쉼터, 보문동)은 1996년 김수환 추기경의 승인을 받고 세워졌는데, 노동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병들어 힘들게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무료숙식과 편의를 제공하려고 개설한 쉼터이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조선족), 필리핀,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페루 등 지금까지(2002년 말 현재) 약 84개국의 984명이 입소하여 단 장기간의 무료숙식을 제공받으며, 건강을 회복하여 노동현장으로 복귀하거나 본국으로 출국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 쉼터가 가난한 이주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가 받은 마음의 상처와 그 상처로 생긴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주고 보살펴줌으로써 이들이 한국을 떠날 때에는 참으로 좋은 생각과 인상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기에 이 땅에 몸 붙여 사는 다치고 병든 가난한 이주 노동자들에게 '베다니아의 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벗들의 집'(러시아 매춘여성 쉼터, 구의동)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였던 강우일 주교의 승인을 받고 2001년 2월에 개소하여 그해 3월 러시아 여성 2명이 입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강요된 매춘소굴에서 힘겹게 도망쳐나온 러시아 여성들을 위한 재활 쉼터이다. 착한목자수녀회의 도움으로 두 명의 수녀가 상주하며 이들을 돌보고, 2001년과 2002년 동안 각각 30여 명의 러시아 여성들이 입소하여 보살핌을 받다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다달이 한 번 이상 미사를 거행하고 있으며, 무료숙식과 신변보호, 상담과 통역, 의료 등 국내에서 매춘업 또는 이와 관련한 업종에 종사하는 러시아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삶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포주들의 행패 때문에 이 불쌍한 여성들을 돌보던 수녀님들도 담을 넘어 러시아 여성들과 함께 피신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주 노동자 아가방'은 한국인과 혼인했지만 심한 가정폭력을 못 이겨 피신해 온 필리핀 여성들과 그 자녀들, 그리고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강요하는 한국인들로부터 도망쳐온 외국인 여성들이 낳은 어린 아기들을 돌보는 '유아들의 쉼터'이다. 이곳에 오는 아기들은 생후 2개월에서 3,4세까지인데, 100명이 넘는다. 그러나 2003년 8월 현재 20여 명을 간신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여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며, 재정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

 

세 번째 방향은 국가별 공동체를 형성하여 노동계 안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운 삶의 조건 속에서도 그들 스스로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자국 사제와 선교사를 영입하여 공동사목을 하고 있다. 2003년 8월 현재 필리핀 공동체, 남미 공동체, 베트남 공동체, 태국 공동체, 중국 공동체가 형성되어 자국 사제들과 선교사, 봉사자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 공동체는 1990년대 초부터 필리핀 선교사들이 자국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해 왔다. 현재는 늘어나는 필리핀인들의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두 명의 필리핀 사제(글렌, 살바도르)가 성무를 집행하면서, 다수의 봉사자들과 함께 필리핀 노동자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약 2천여 명의 필리핀인들이 혜화동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대교구는 옛 살레시오 신학생 숙소를 구입하여 필리핀 가톨릭 센터로 이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남미 공동체는 2001년 6월, 홍세안(미카엘) 신부(파리 외방전교회)가 동두천성당, 금촌성당, 노동사목회관에서 남미계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작되었고, 매월 둘째 주일 11시 미사 후 노동사목회관에서 친교와 음식 나눔, 혼인식과 세례식을 하고 있다. 부천, 수원, 포천 지역에도 남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그 지역에서도 미사 봉헌이 절실하다. 따라서 교구 간의 협력이 요구된다. 

 

베트남 공동체는 전담 사목자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미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고, 초기 우리나라 신앙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살레시오회 소속인 팜 신부가 1년 반의 노력 끝에 올해 4월에 입국하여 이들의 신앙생활을 돌보고 있다. 자국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생활을 함으로써 베트남 공동체가 활성화하고 있다. 

 

태국 공동체는 태국 주교단의 '이주 노동자와 피난민 위원회'에서 자국민 선교사 농(Nhong)을 파견하여 서울대교구와 협력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편,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태국 노동자들을 위해 보문사(보문동 소재)와 연계하여 그들의 종교생활을 돕고 있어, 종교를 초월한 공동체 운영이 기대된다. 

 

중국 동포 공동체는 2003년 6월 29일,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가리봉동 지역에 세워졌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조선족이 가장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중국 동포들을 위한 사목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싼 월세방과 편리한 교통을 지닌 가리봉동과 구로동 그리고 대림동 일대에는 차이나타운이라 불릴 만큼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소수이긴 하지만 한족(중국인), 러시아인, 몽고인, 필리핀인, 베트남인들도 꿈과 희망을 안고 이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김정수 신부(살레시오회)가 2003년 1월부터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5. 평가와 제안

 

위에서 언급한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에 비해 교회가 하고 있는 노력은 미미하지만,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작은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교회는 이주 노동자들의 종교와 신앙을 존중하고 있으며, 종교를 초월한 형제적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상담 업무에 주력하여 고충문제의 해결만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떳떳한 노동자로 설 수 있도록 각종 문화행사와 한글교실 운영, 한국문화 소개, 컴퓨터 교육 등 문화교육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를 위해 재정의 확보와 지원이 필요하며, 자원봉사자들과 직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한 언어 교육, 법률 교육, 교회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복음정신의 함양 등 다양한 양성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문성을 지닌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국가기관(노동부, 법무부, 여성부 등)과 협조체계를 강화하여 제도적인 뒷받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 등 정의로운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촉구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교구별 외국인 사목 담당 사제들의 정기적인 모임과 교류, 또한 교구별 일선 실무자들의 연대와 정보 교류, 친교를 통해 전체 교회가 폭넓게 외국인 사목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2003년 7월부터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가 구심점이 되어 교구별 담당사제들과 실무자들의 모임을 정례화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교구별 사목활동을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역별 특성을 살린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교회는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교포사목' 차원에서 배려하여 이들의 영신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도록 국가별 외국인 사제의 영입을 적극 추진하고, 교구 차원에서 한국인 사제들이 외국인 사목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재정적 투자가 요청된다.

 

[사목, 2003년 9월호, 허윤진(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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