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교정사목] 교정사목 체험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86

교정 사목 체험기

 

 

필자가 교도소에 드나든 것도 벌써 9년 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의정부 교도소에서 자매들을 만났고 그후 현재까지 영등포 교도소에서 형제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지금까지 교도소에서 형제들을 어떻게 만나왔는지, 그곳에서 만난 형제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경험한 대로 써 보려 한다.

 

 

1. 교회 전례 생활

 

1) 미사 봉헌

 

한 달에 두 번 미사를 봉헌하는데, 교도소가 소속되어 있는 서울대교구 고척동 본당 주임 신부님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신부님이 집전해 주신다. 고척동 본당 주임 신부님은 십자성호도 긋지 못하는 새로 나온 형제들에게 하나하나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면서 미사를 봉헌하시어 형제들이 좋아하며 감사한다. 그리고 아나뚜스 합창단과 등촌동 성당 산타마리아 성가대도 함께해 준다. 영성체 때와 미사 후에 들려주는 특송은 참으로 아름다워 듣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기쁨이 넘쳐 나게 한다. 이번 추석 전에는 '`오빠 생각'을 준비하여 형제들과 함께 불렀는데 그들의 향수를 달래 주는 듯해 흐뭇했다. 형제들도 답례로 준비한 곡을 선보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2) 또 다른 행사

 

이 밖의 행사에는 3월에 레지오 마리애의 아치에스가 있다. 세족례와 최후의 만찬에서 형제들의 발을 씻어 주었더니 감격하여 눈물이 나왔다느니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느니 하며 좋아한다. 부활이 지나서 성가 경연 대회를 한다. 올해에는 불교, 개신교도 어울려서 함께 했는데 대성황을 이루었다. 5월에는 성모님 공경의 날, 개신교가 우세한 이곳에서 천주교가 '마리아교'가 아님을 강조하며 전파한다. 9월에는 순교자의 얼을 새기기 위해 성인 한 분을 선택하여 발표하거나 순교극을 준비하여 발표하고 있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에서 형제간의 일치와 순교 정신을 깨닫게 된다. 또한 종교 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여 상품을 준다. 상품은 책, 먹을 것, 일용품이다. 12월 성탄 행사는 정해진 날(천주교 집회는 매주 화요일에 있다.)에 하는데 아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이곳에 맨 먼저 오시나보다.

 

 

2. 교도소에서 단체 활동

 

교도소에서는 강당을 '교회당'(敎誨堂)이라고 부른다.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신자와 예비신자 그리고 호기심을 가진 경우나 일을 하기 싫은 형제들도 있다고 한다. 참석자에게 간식으로 떡, 빵, 초콜릿, 과일, 음료수 등을 주고 성탄 대축일에는 먹을 것과 함께 양말이나 장갑 등 선물이 든 봉투, 부활 대축일에는 계란과 세수 비누나 타올 등을 준다. 함께하는 봉사자들은 기쁨을 나누고 언젠가는 인생의 근본인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정과 자신들이 속한 본당에서의 활동 등으로 바쁘면서도 시간과 주머니를 쪼개어 열심히 봉사한다.

 

1) 레지오

 

세례 받은 형제를 위해서는 매주 레지오 마리애 회합이 있어 봉사자들이 함께 참석하여 돌보아 주고 간식도 챙겨 준다. 지도 수녀는 훈화 시간에 신자 재교육뿐 아니라 새 출발을 위한 교양의 일환으로 미약하나마 기초를 다져 주고 있다. 교실과 시간 관계로 1개 쁘레시디움을 운영하는 데 허락된 인원이 30명이다. 출, 입소가 빈번하기 때문에 영세식이 있은 후에는 인원이 넘치지만 요즘은 20명이 좀 넘게 참석하고 있다. 좁은 공간과 한정된 시간이지만 단원들은 기도와 이웃 봉사(병약한 형제와 연장자의 빨래를 해 주거나 돕기,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 하기 등), 전교 활동을 하며 예비신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신이 인도한 예비신자들이 비록 처음에는 떡 신자거나 호기심 때문에 와보는 사람도 차차 변화되는 모습이 되어 단원으로서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주회 때 내는 비밀 헌금은 돈 대신 묵주 기도를 바친 수를 적은 쪽지를 헌금 넣는 주머니에 넣는다. 어느 날 '210단'이라고 적힌 쪽지가 나오자 회계가 "21단이겠지." 하자 마침 앞에 앉아 있던 형제가 210단이 맞다고 하여 새삼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선함이 철철 넘치는 모습이었다. 쁘레시디움의 단장직이 비게 되어 그를 지명하였더니 흔쾌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봉사했다. 출소 후에 그는 불교의 3천 배를 생각하여 그것을 목표로 묵주기도를 바쳤다고 말했다. 또 남에게 주기는 했어도 얻어 보지 못하다가 갇혀 있으면서 얻어 먹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며 도움을 주고 싶어하다가 그후에 맞은 주회 300차 축하로 기념 수건을, 또 순교자의 전기를 발표한 형제들 9명과 성가 대원 20명에게도 상으로 내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이들이 종종 있어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하다. 어떤 교도관이 이 이야기에 관해 듣고는 그런 것이 교정(矯正)의 꽃이라며 함께 기뻐했다.

 

2) 성가대

 

신자와 예비신자 약 20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는 매월 한 번씩 밖에서 지도자 한 분을 초청하여 도움을 받으며 연습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거의 천주교 거실에서 아침 출역(교도소 내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연습하므로 어려움이 많다. 물론 토요일 오후와 주일에는 좀 많은 시간을 연습할 수 있다고 한다. 전례에 부를 곡목은 수녀가 골라 레지오 단원에게 활동으로 지시한다. 특송은 스스로 선곡하여 연습하고 발표한다. 대축일에 형제들이 테너, 베이스를 연습하여 합한 하모니를 들려줄 때 듣는 이의 기쁨은 대단하다. 출소하고 입소하는 이들의 변화가 많기 때문에 악기를 다루는 이가 있을 때는 행운이다.

 

한때는 악기를 다루어 보지 못한 형제가 거의 매일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이어폰을 끼고 키보드를 연습하여 지휘를 맡은 적도 있었다. 지금 그는 외부 공장에 통근하고 있다. 신원 보증을 받아야 갈 수 있고 수입도 교도소 내의 공장보다 좋다. 매사에 성실한 그는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장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그 사장이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그의 영세 대부도 그를 후원해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3) 성령 기도회

 

월 1회 성령 기도회를 한다. 예비 선교 수준으로 말씀과 찬미의 봉사자가 온다. 말씀의 봉사자는 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의 임원으로 계신 분이 다달이 추천해 주신다. 대부분 자신의 체험담으로 강의를 이끌고 있는데 형제들 가운데는 그와 공감대를 이루고 감동되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는데 이것으로 성령께서 오심을 체험하기도 한다. 찬미는 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부부 듀엣 '두님'이 바쁜 가운데서도 달마다 시간을 내어 감미로운 신앙의 멜로디를 들려주며 묵상으로 이끌어 준다.

 

4) 예비신자 교리

 

천주교 반장과 인도자의 도움으로 예비신자를 선발하여 준비시킨다. 개인 면담에 앞서 사도신경과 십계명을 외워 카드에 쓰게 하고 그 카드는 본인이 간직하도록 한다. 출석 성적과 통신 교리 수료 여부와 마르코 복음과 이사야서 쓰기를 마친 형제를 우선으로 하고 그 조건에 못 미쳐도 사정을 보아 영세를 허락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연락해 준다. 신자인 가족은 물론 신자가 아닌 가족도 대부분 기뻐한다.

 

예비신자 교리는 매주 집회 전에 1시간 [함께하는 여정]으로 하면서 통신 교리도 하게 한다. 그리고 교리 시간이 짧으므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천주교 거실이나 공장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복음 나누기를 한다. 복음 나누기는 10명이 1개 조로 4개 조가 있어 개개인은 1개월에 1회 참석한다. 조마다 봉사자 두세 명이 함께 하며 간식도 챙겨 준다. 형제들이 처음에는 어려워하지만 곧 진지하고 회개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지며 복음을 생활화하는 방법을 익혀 간다. 어쩌면 본당의 일반 신자들보다 더 잘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눈물은 흔하지 않은데 이 시간에 그 눈물을 자주 볼 수 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거나 불효에 대한 회개의 눈물, 특히 갇혀 있을 때 상을 당한 경우에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럴 때 함께 있는 형제들과 봉사자들도 가슴이 뭉클하여 눈시울을 적신다. 가정의 따뜻함을 못 느끼고 자란 형제들에게는 이 시간이 더욱 기다려지리라.

 

영세를 앞두고 3일간 집중적으로 교리를 하고 하루는 피정을 한다. 영세 전 9일 기도를 하는데 단식을 하는 형제도 있다. 흰 세례복을 입고 장미꽃을 단 그들의 모습은 회개와 기쁨의 눈물로 더욱 빛난다. 영세자에게 대부 서 주기를 꺼리는 이도 있다. 처음 서 주는 대부는 연민의 정으로 대자에게 잘해 주려 하는데 그 중에는 좋지 못한 결과를 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첫째로 기도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대부 서 주기를 청한다. 젊은 대자의 편지에 친절하게 답장을 써 주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출소 후 대부로서 인사 받는 이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취업 후에 대자 편에서 연락을 끊는 것을 보면 전과에 신경이 쓰여서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그럴 때는 가만히 지켜보아 주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3. 종교를 떠나서

 

종교적이 아니라도 유익한 영화를 비디오로 보여 준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강당에 작은 TV를 중앙에 한 대 중간 양편에 한 대씩 설치한 TV로 관람하니 조는 사람이 많다. 늘 숙제였던 것을 후원 회원의 도움으로 넓고 밝은 액정 화면을 기증받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교도소는 물론 봉사자와 형제들 모두 기뻐했다. 액정 화면을 설치하고 처음으로 관람한 영화가 '마지막 승리'이다. 갇혀 있는 형제들에게 마침 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달아 오른 때 걸맞은 내용이랄까 장애를 딛고 외팔로 야구 스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후배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준 내용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에는 영화 '몰로카이'─ 다미안 신부님의 일생─를 관람하였다. 흑백영화였으나 나병 환자와 함께하며 나병 환자로 생을 마치는 고귀한 사랑, 예수님을 닮은 삶에 감동되어 숙연해졌다. 끝났는데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4. 청소년 사목

 

청소년 범죄자 대부분이 열악한 가정 환경과 나약한 의지력 때문에 나쁜 생활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밴다. 그런 친구끼리 어울리다 교도소에까지 온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평화로운 가정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절감하고 있다.

 

어느 봄에 태백시에 있는 한 성당에 갔다. 삼척 시내에는 벚꽃이 지고 초록의 잎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태백은 그제야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기온이 달라도 늦게나마 때가 되면 자연은 어김이 없다. 늦둥이도 기다려 주면 그 나름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날이 있는 법인데 어른의 눈높이에 맞추려다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면 놀라 가슴이 아프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 않고 성장한 사람이 있을까? 어른이 되어도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받기 일쑤다. 그러니 어떻게 그에 대처하여 이겨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호랑이도 새끼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강인성을 길러 준다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이요 하느님의 법이다.

 

 

5. 재소자 가족

 

교도소에서는 1년에 두 차례 명절을 앞두고 합동 가족 접견을 마련해 준다. 출소 일이 가까운 경우나 상으로 허락된다. 가족은 음식을 해 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다. 부산에서 항공편으로 오는 가족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 멀어서 허락되어도 못 오는 가족, 올 만한 가족이 없는 형제들을 위해 봉사자들이 음식을 마련하기도 한다. 물론 교도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락되는 음식물로 제한된다. 재소자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서로 눈시울을 붉히는 가족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이때 필자도 참석하여 신자와 영세를 준비하고 있는 형제의 가족을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들으며 격려하거나 특히 만나기를 원하는 분은 시간 내어 만난다.

 

외부 통근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가족의 보증이 필요하다. 고아 출신은 그런 혜택도 못 받는다는 긴 편지를 받은 일이 있다. 담당 직원에게 가서 부탁하니 신상서를 보며 하는 말이 집행 유예 8범이란다. "이보다 나은 사람도 못 가는데 이 사람을 보내요?" 할 말이 궁했다.

 

 

6. 교도소 사목의 사례

 

다음은 교도소에서 만난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좋고 어쩌면 나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하신 "갇힌 이"들의 것이다.

 

한 형제는 수형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성모님께 옮겨져 묵주기도를 잘 바쳤다. 영세 전에 그의 형에게 전화를 하니 "그놈은 나쁜 놈이에요." "그래도 잘 하고 있어요." "잘 하라고 하세요." 그후 그가 필자에게 "형이 뭐래요?" "잘 부탁한대. 그 형 친형이야?" "제일 큰형이기 때문에 나이 차가 많아요." 그는 덤덤했고 즐거운 기색이었다. 친형이 처음으로 통화하는 수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하고 의아했다. 출소 후에도 잘 지내는 듯했다.

 

어느 어머니는 아무에게도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아들의 이름 석자를 불러주어 고마워했다. 그의 할머니가 떡 장사를 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약사로 약국을 경영했다. 장남에게 기대가 컸는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아 친구들과 함께 일을 저질렀다. 15년형을 받고 10년 복역 끝에 영세했다. 정서가 불안한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어머니는 아들이 화를 낸다며 아직 멀었다고 한탄했다. 그런 아들이 좀 안정되었을 무렵 형기 3년을 남기고 가석방되었다. 필자는 그 어머니에게 아들과 함께 가까운 성당에 나가라고 했다. 그 성당에 친구도 있다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았나 보다. 어머니의 말이 "그곳에서 나온 아들의 변화에 감탄했는데 2개월이 지나자 이전의 버릇이 나왔어요." 하며 한숨을 쉰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랜만에 궁금하여 전화하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해 상의하러 온다더니 소식이 없었다. 필자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못했다.

 

사실 갇혀 있는 이의 가족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생을 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의 부인은 신자이기에 남편이 출소하면 세례를 받게 하라고 했다. 그 말을 전해 주었을 때 덤덤히 웃기만 하는 망나니이다.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그럴까! 열심한 부모는 아들의 영세를 환영하며 반가워했다. 그래서 부인에게 다시 한 번 권해 보았다. 나가서 다시 배우러 다니는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가하게 세례를 받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다행히 응답을 해서 그는 세례를 받고 출소했다. 부인은 그의 언니와 만두 가게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만나보니 세례명이 '보나'인데 그 이름대로 착한 모습이었다. 그는 그동안 가족에게 못 다한 정성을 보속하듯 스스로 성당에 나가 견진성사를 받고 본당 빈첸시오회에서 활동하는 등 대단한 열정을 발휘하며 봉사자와 함께 청송 교도소에도 다녀왔다. 또 부인이 하는 만두 가게를 넓혔고 원주에도 공장을 짓는다고 했다. 장차 어려운 사람을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이기도 했으나 요즘은 바빠서인지 연락이 없다.

 

전에 천주교 반장을 지낸 정00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어려운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교무과 직원도 "저렇게 욕심이 없고 겸손한 사람은 처음 보겠다."라며 놀라워했다. 같이 일을 할 때 늘 앞서가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의 죄명은 횡령이고 형기는 7년이다. 변명도 하지 않아 그 형기 때문에 늘 안쓰럽고 궁금했으나 묻지 못했다. 어느 날 용서에 대한 강론 때 신부님이 "용서 못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고 그를 지적했다. 신부님은 그의 가슴에 외부 통근자의 총 반장이라는 표시를 달고 있는 것 외는 알지 못한다. "네,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그 사람이 면회를 왔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그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역시 그는 다른 이의 죄 때문에 형(刑)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또 한 젊은이가 형의 주소를 알아달라는 부탁을 해서 동사무소에 가서 사정을 하니 수녀이기 때문에 호적 등본을 떼어 주었다. 편지를 해도 소식이 없어 또 큰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알아주었으나 야단만 맞았다. 지금은 수녀와 봉사자가 보증을 서서 외부 공장에 나가서 일하는 형제들이 있다.

 

어느 날, 최00과 형, 동생처럼 지낸 이라며 전화가 왔다. 그가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으니 꼭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말끔하게 생겼고 내게 보내온 편지 글씨도 또박또박했었다. 죄명만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교리 공부도 많이 빠지고 동료 간에 포악한 성격 때문에 영세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영세 준비를 위해 집중 교리를 하는데 서슬이 시퍼래서 교리실에 왔다. 그는 혼자서는 다니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왜 나는 세례를 안 주느냐?"며 따지러 온 것이다. 필자는 그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같이 앉아 공부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세례를 받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교리를 시작한 형제 중 제대로 공부는 하지 않고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동료들 간의 체면 유지 또는 대부, 선물 등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필자와 함께 교리 공부를 하고 영세한 형제들에게는 아들과 같은 강한 인연을 느끼게 되어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디에나 갔었다. 출소한 형제가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받는다고 해서 전남 구례, 천안 성당에까지 가서 축하해 주었다. 지금은 아기도 낳고 잘 살고 있다.

 

서울 구치소에 영등포 교도소에서 전근간 계장에게 미리 부탁한 바 있어 여자는 이순자(전두환 씨의 부인)씨 외는 아무도 허락되지 않는 당시 특별 면회를 허락받았다. 그 형제에게서 나를 만난 반가움보다 `'수녀를 이용해야지'하는 눈초리를 볼 수 있었지만, 그가 부탁한 대로 장안동 어느 다방으로 피해자를 찾아갔다. 오전 10시경인데 여인 둘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종업원이 천주교 신자여서 친절히 앉으라고 자리도 권해 주어 어설프게 앉았다. 1시간이 지나자 주인이 가까이 와서 "뭐 하러 왔어요? 돌아가세요."라고 했으나 끈기 있게 기다리는 필자에게 수녀이기 때문에 말한다면서 자신의 신상 이야기와 복면을 하고 들어온 가해자에 대한 공포 등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수긍하고 아파하며 들어주었다.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아들 둘을 열심히 키웠다는 개신교 신자인 그녀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작은아들은 군에서 얼마 후면 제대한다는 말에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군요. 하느님은 꼭 좋게 해 주실 거예요. 그도 어머니는 병원에 있고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여 등록금 때문에 ......" "그럼 일 해서 마련해야지요."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만 다음에 탄원서를 부탁할게요." 하고 돌아서 나올 때는 배웅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양심을 속이는 한이 있더라도 형기를 줄이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 피해자를 찾아가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고생하며 열심히 두 아들을 키운 이야기를 가해자뿐 아니라 수용되어 있는 형제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의 형이 확정되고 공주에서 편지가 왔다. 용돈이 있으면 보내 달라, 딸에게 전화해 달라 등. 영치금을 송금해도 받았다는 편지가 없었다. 딸에게는 성바오로 수도회에서 출판하는 월간 [내 친구들] 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딸이 아버지의 수감을 알고 있어서 직접 편지하라고 주소를 알려 주어 부녀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환기시켜 주었다. 소식이 끊긴 지 오래고 그 곳에도 천주교회에서 봉사하고 있고 딸은 중학생이 되어 미술 음악에 소질이 있어 이복 여동생이 보살피고 있다고 하니 손을 놓았다.

 

교도소 안에서는 외부인도 개호(介護) 없이는 다니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교도관이 "수녀님은 혼자 다녀도 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필자는 마음속으로 답한다.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하겠지요.'

 

[사목, 2002년 11월호, 강순분(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



49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