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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35: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영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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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1 ㅣ No.751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35)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영성 ②

무신론적 휴머니스트, 신앙의 진리를 깨닫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교좌 성당. 에디트는 이곳에서 인간 곁에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무신론적 휴머니스트

사춘기의 성녀 에디트는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물음에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떠나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휴머니즘’이 그것입니다.

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약 1년간의 방황 끝에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인류를 위한 봉사라고 하는 대의(大義) 속에서 찾았습니다.

이후 그는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17세 무렵부터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는 32세까지 성녀는 철저한 휴머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의 화신으로 생을 불살랐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시기의 그는 인간의 삶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이 보이는 하느님을 거부했습니다. 당연히 어린 시절 받아들였던 전통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부인했습니다. 에디트는 이 현세에서만 하느님의 축복에 대해 말하는 유다교에 대해 실망했고 내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는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휴머니즘의 중심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그러나 세 번째 시기로 접어들면서 에디트는 점차 긍정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신론자이면서 동시에 이로 인해 철저한 휴머니스트로 변신했던 그는, 오히려 휴머니즘의 가치를 진지하게 살아내면서 그 여정의 중심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하느님에 대한 긍정적인 체험을 통해 에디트는 서서히 그분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디트는 이 시기에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 이전에 거부했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 하느님

첫 번째 사건은 프랑크푸르트 주교좌성당을 방문하면서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예술적인 호기심 때문에 방문한 그 성당에서 에디트는 그간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기서 에디트는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성당에 들러 기도하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만 회당에 가는 유다인들과 달리, 일상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만나러 오는 그리스도교 신자를 보면서 에디트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에디트는 기도하는 그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유다교가 전하는 하느님과 달리,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가까이 계신 분이자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인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이의 하느님

에디트가 하느님을 새롭게 보게 해준 두 번째 계기는 하이델베르그 어느 성당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가 우연히 방문한 성당의 내부는 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편은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를 보는 곳이고 다른 한편은 개신교 신자들이 예배를 보는 곳이었습니다. 에디트는 이 색다른 성당 구조를 보면서, “아! 이것도 가능하구나!” 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하느님은 어느 한 민족에게만 국한된 분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하느님

에디트가 새로운 하느님을 만나게 된 세 번째 계기는 절친한 벗이자 멘토였던 라이나흐의 죽음이었습니다. 사실, 에디트가 충격을 받은 것은 라이나흐의 죽음보다도 그의 부인이 자기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희망하는 그 부인을 보면서 에디트는 깊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해주시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굽이굽이 돌아서 만난 인격적인 하느님

이렇듯 에디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새로운 하느님을 알아갔습니다. 그분은 인간과 아주 가까이 계신 분이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게 하는 분이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더불어 에디트는 비록 명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점차 신앙의 깊은 진리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하느님 체험과 더불어 에디트는 신앙으로 나아갔으며 특히 인격적인 하느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은 1922년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만나면서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인격적인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 구세주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 섭리의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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