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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33: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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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1 ㅣ No.74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33)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⑬


평화와 화해 염원하며 나치 수용소에서 순교



에디트 슈타인이 순교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 정문.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교하다

1940년 마침내 독일 나치 정부는 네덜란드를 침공했으며 거기에서도 유다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치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을 박해하지 않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지만, 사실상 이는 가톨릭 교회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1942년 7월 네덜란드 주교회의는 유다인들의 박해를 멈추도록 나치 정부에 항의하는 서한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치 정부는 복수 차원에서 더욱 격렬하게 유다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에 네덜란드의 에히트 가르멜 수녀원에 피신해 있던 에디트는 결국 네덜란드를 떠나 스위스의 어느 가르멜 수녀원으로 이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그 수녀원에서 에디트를 받아주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서류상의 문제로 인해 이전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안타깝게도 에디트는 1942년 8월 2일 친언니 로사와 함께 나치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붙잡혔을 당시 에디트는 자신의 일생에서 마지막 작품이 될 「십자가 학문」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유작(遺作)인 「십자가 학문」

사실, 1942년은 십자가의 성 요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이 기회에 이 작품을 통해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을 종합적으로 독일 가톨릭 교회에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가르멜 수도회 역사상 처음으로 십자가 성 요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작품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트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을 통합적으로 소개했습니다. 특히 그는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을 ‘그리스도를 따름’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에디트의 전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에 이릅니다. 에디트에게 있어서나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에서 마지막 종착점이 아니라 궁극적인 부활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학문」은 특히 에디트의 영적 여정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에디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몸소 살아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인도하는 여정처럼, 에디트는 나치 경찰에 의해 붙잡힌 지 일주일 만인 1942년 8월 9일 아우슈비츠의 비르케나우 수용소 독가스실에서 살해됐습니다. 그는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고 박해 속에서 죽어가던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지향으로 장렬히 산화해갔습니다. 성교회는 진리를 향한 그의 발자취와 고귀한 그의 죽음을 기리며 1987년 5월 1일 그에게 ‘순교자’ 칭호를 수여함과 동시에 복자 반열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후인 1998년 10월 11일에는 시성했습니다. 마침내 이듬해인 1999년 10월 1일 성교회는 그를 성 베네딕토, 성녀 가타리나와 함께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며 공경하기에 이릅니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하느님 체험

이제 지금까지 진리를 향한 성녀 에디트의 생애를 바탕으로 성녀의 영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녀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녀의 영성을 뒷받침하는 ‘하느님 체험’에 대한 문제입니다. 성녀가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거치며 온 힘을 다해 천착했던 주제는 진리에 대한 인식이었으며, 결국 현상학과 인간학을 통해 진리에 이른 다음,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인식과 체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톨릭 영성의 정수를 간직한 가르멜 영성, 그리고 영성의 원천이자 바탕인 순교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성숙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한 체험’은 성녀 에디트의 영성 세계로 인도해주는 관문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는 여러 회에 걸쳐 성녀의 하느님 체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점진적인 하느님 체험과 함께 성장한 영성

성녀 에디트의 하느님 체험은 진리를 추구해 나간 점진적인 삶의 단계에 병행해서 다양한 국면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유년 시절(1891~1902년)에 그가 체험한 하느님은 ‘유다인들의 하느님’이었습니다. 그가 신앙을 받아 자라난 못자리는 유다교 신앙을 살아가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1903~1921년)에서 에디트의 하느님 체험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하느님을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응답을 거부하는 분으로 체험했습니다. 반면, 세 번째 단계(1922~1933년)에서 그가 체험한 하느님은 당신을 만나고 찾아올 수 있도록 자신을 개방하고 내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1933~1942년)에서 에디트가 체험한 하느님은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응답하시는 하느님이셨고 절대적인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통교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가 마지막에 체험한 하느님은 주님이자 구세주이셨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20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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