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27: 그리스도인의 개별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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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14 ㅣ No.73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27) 그리스도인의 개별 성소


그리스도인 영적 여정의 다양성

 

 

‘가톨릭’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보편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보편적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뉘앙스는 아마도 획일적인 일치보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에 가까울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것처럼 거룩하고 완전해지도록 불렸다고 하더라도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방법을 취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와 일꾼으로 불린 사람들도 맡겨진 소임은 달랐습니다. 부활 후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온 세상을 누비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소임을 주십니다(마태 28,19 참조). 또한 승천한 후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불러 사도로 삼으시며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소임을 주십니다(사도 9,15 참조). 한편 사도들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방문한 지역 교회마다 원로와 감독을 선발하여 그 지역 교회와 제자들을 돌보라는 소임을 맡깁니다(사도 14,23; 20,28 참조).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여정도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은 로마 제국의 박해 때문에 순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시절에는 아직 구체적인 형태의 성소의 길이 정해져 있기보다는 당신의 자녀로서 당신을 위해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응답하는 길이 대체적인 여정이었습니다. 다만 불행히도 이 길이 로마 황제의 뜻과 충돌하면서 박해를 받게 되었기에 순교의 길이 하나의 성소같이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종교 자유의 시대가 오자 하느님 자녀로서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하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자신의 일상생활이 걸림돌이라고 판단하고 고요한 은신처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은 은수자의 삶이 거룩함에로의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중세까지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교회로부터 다른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가운데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할 때 대부분 수도자의 삶을 동경하며 모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근세에 들어 이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은 저서 「신심 생활 입문」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의 다양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그 교회의 생활한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명하신다. 귀족과 직공, 왕족과 노복, 과부와 주부, 소녀들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신심은 각각 달라야 한다. 또 한층 이것을 개인의 능력, 일, 직무에 맞추어야 한다.… 신심 생활이 군인들의 병사, 직공들의 공장, 제왕의 궁정, 결혼한 자들의 가정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유설이며 이단의 교설이다”(「신심 생활 입문」 제1부 제3장).

오늘날 교회는 사제 성소, 수도 성소, 결혼 성소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직분에 나아가는 사제 성소는 그 직분을 합당하게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까지 다 내놓을 각오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방편으로써 수도 성소는 예수님의 극단적인 요구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응답하며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수도자들은 지상에 이미 마련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삶의 한 장소로 여기는 결혼 성소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구현하는 사랑의 공동체의 모범을 따르기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통해 이루는 가정이야말로 애덕을 완성하는 훌륭한 영적 여정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개개인을 부르십니다. 물론 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능력과 개성을 다 고려해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적 여정을 옆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영적 여정의 방향과 발전 속도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를 어느 길로 부르시는지 잘 알아듣고 그곳을 향하여 매일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염려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15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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