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26: 그리스도인의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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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08 ㅣ No.73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26) 그리스도인의 성소


예수님 부르심에 세상 것을 버린 제자들



필자와 함께 시작한 영성 산책도 어느덧 반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 글을 읽으면서도 수덕 생활을 위해 이렇게 어렵사리 노력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견해가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의 길’만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최소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의 길 문턱에라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이 영성 산책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의 차별이나 낙오도 없이 모두 다 거룩해지고 완전해지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단순히 가까스로 구원받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은 단계에 다다르면서 구원의 완전성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권면의 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권면의 길을 통해 영적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최선을 다해 영적 여정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명의 길에 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더 노력할 마음이 없이 계명의 길을 통해서만 영적 여정을 걸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던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선 처음에는 십계명에 포함된 계명들을 언급하면서 계명의 길을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계명의 길을 잘 걷고 있다고 자신하는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점을 발견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애덕을 실천하라는 권면의 길을 권고하셨습니다. 재산이 너무 많았던 부자 청년은 이내 시무룩해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마태 19,16-22 참조).

어쩌면 이와 같은 권고 말씀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 안에는 그리스도인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의 말씀만 있을 뿐이지, 어려울 것 같으면 다소 쉬운 길로 돌아가도 된다는 식으로 권고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임무를 거부하고 쉽게 돌아가려는 잔꾀는 절대로 통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자신이 무엇이기에 파라오 왕과 이스라엘 자손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라며 머뭇거렸지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항상 함께 할 것이니 ‘있는 나’가 보냈다고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탈출 3,7-15 참조).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자 아이라서 말할 줄 모른다고 핑계를 댔지만,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함께하면서 구원해 주실 것이고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레 1,4-10 참조). 또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던 몇몇 사람이 예수님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거나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죽은 이의 일은 죽은 이에게 맡기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루카 9, 57-62 참조).

따라서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한 제자들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야고보와 요한도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18-22). 심지어 마태오는 세관에서 일하다 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9,9).

이렇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에둘러 돌아가는 쉬운 길이 없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단계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길만이 눈앞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인간적인 셈을 하느라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최고로 어려우면서도 최상의 선을 보장해 주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세상일을 내려놓고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지고 완전해지도록 하느님께 불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꼭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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