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1997년 제5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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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1-31 ㅣ No.22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5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1997년 2월 11일)


성모님과 함께 해방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1. 올해 세계 병자의 날인 1997년 2월 11일에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모 순례지에서 성대한 모임을 가질 것입니다. 이곳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사실, 저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겪었던 저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던 그날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하고자 5월 13일에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느님의 헤아릴 길 없는 계획에 따라, 그 극적인 사건은 묘하게도 1917년 5월 13일 코바다이리아에 나타나셨던 성모님의 첫 발현 기념일에 일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제 가슴에 특별히 가깝게 와닿는 병자의 날과 같은 공식적인 기도의 날을 파티마에서 거행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복음에서처럼 회개와 참회를 요청”하시는 동정녀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듣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하셨던 이 요청은 특별히 금세기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신 성모님께서는 특별한 통찰력으로 시대의 징표 곧 우리 시대의 징표를 꿰뚫어보신 것 같습니다”(1982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 한 훈화, Insegnamenti V/2 [1982], 1580면).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성모님의 사명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사명은 이미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있었던 혼인 잔치에서 그리스도께 첫 기적을 하시도록 요청하시면서, 마리아께서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고 말씀하십니다. 파티마에서,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께서 공적 사명을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그 특유의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때가 다 되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회개하라고 하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줄기찬 권유는 바로 회개와 용서가 필요한 인류 가족의 운명에 대한 그분 모성애의 표현입니다.

 

2. 마리아께서는 파티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 주시는 대변자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히 코바다이리아에서 울려퍼졌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전세계에서 이 복받은 땅으로 몰려오는 순례자들의 무리 그 자체가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구원과 위로의 필요에 대한 웅변적인 증언이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사람들이야말로 “구원”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신뢰를 지니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의사이신 하느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실 수 있습니다. 파티마에서 이러한 구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섭리로 질병을 치유해 주시는 육체적인 구원인 경우도 있지만, 흔히는 내적 은총의 빛으로 충만해진 영혼이 고통받는 종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고통스러운 질병의 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과 형제자매들을 위한 구속과 구원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힘을 얻게 되는 정신적 구원일 때가 더 많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생활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특히 우리 시대에,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거듭 되풀이하시는 어머니 마리아의 목소리는 이 힘든 길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세계 병자의 날은 십자가 밑에서 인류를 맡으신(요한 19,25-27 참조) 예수님 어머니의 권고를 다시 한번 듣고 받아들이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 병자의 날은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삼년의 첫해에 맞이합니다. 이 첫해는 그리스도께 대한 묵상에 온전히 바쳐진 해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중심성에 대한 이러한 묵상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수행하신 역할에 대한 인정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실제로 하느님이신 당신 아들을 끊임없이 가리키고 계시며 모든 신앙인에게 실천하는 신앙의 모범으로 드러나십니다”(2000년 희년 준비에 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 43항).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에게서 배우라는 권유에서 마리아의 모범은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조건을 완전히 받아들이시어 스스로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큰소리와 눈물로”(히브 5,7) 부르짖으시며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흠없는 희생제물로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을 구원에 이르는 사랑의 은총으로 변화시키시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4.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도록 고통을 부정적인 체험으로만 보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고통받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병자는 자기 고통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고통과 질병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로 물든 나약하고 한계를 지닌 피조물인 인간의 조건에 속합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인간 고통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합니다. 고통은 실패가 아니라 신앙과 사랑의 증거를 보여주는 기회로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병자 여러분, 사랑 안에서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구원적 의미와 여러분이 품고 있는 모든 의문에 대한 타당한 답”(인간 고통의 그리스도교적 의미에 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31항)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사명은 교회와 사회에 모두 지극히 고귀한 가치를 지닙니다. “고통의 짐을 지고 있는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 가운데 첫째 자리를 차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팔레스티나의 길에서 만나셨던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사랑이 가득한 눈길을 보내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결코 모자람이 없습니다”(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에게 한 연설, 투르, 1996년 9월 21일,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6년 9월 23-24일자, 4면). 여러분의 고통을 봉헌함으로써 이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는 헌신적인 증인이 되도록 하십시오. 고통의 봉헌은 인류 구원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복지와 소비주의 위에 미래 사회를 세우려 하고 또 모든 것을 효용성과 이익의 잣대로만 재려고 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질병과 고통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준 수단으로 완전히 정복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없애버리고 있습니다. 

 

질병과 고통은 인간적인 마음으로 볼 때 분명히 하나의 한계이며 시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추어볼 때, 질병과 고통은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매우 좋은 시기가 되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귀중한 도구가 됩니다. 

 

5.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실”(마태 25,31) 때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복음서 대목에 그 판결의 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심판 기준은 다음과 같은 장엄한 마지막 선언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이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흔히 사회에서 버림받은 외로운 병자들이 있습니다(마태 25,36 참조). 여론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병자의 날을 거행하는 주요 목적의 하나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유익하게 변화시키도록 그들 가까이 다가서는 것, 또 그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사람들을 돕는 일, 이것이 바로 병자의 날이 요구하는 활동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도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복자 루이지 오리오네가 한 말처럼(Scritti, 57,104 참조),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의 아들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형제자매의 고통을 연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 곁에 멈추어, 인간의 온전한 건강을 위한 봉사와 사랑의 행동으로써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회의 특징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가정과 사회 공동체의 사랑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파티마에서 가난한 세 어린 양치기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복음 메시지의 전파자로 삼으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개인이나 사회 생활에서 역경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또 요즘 말로 ‘소외’의 희생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고, 적절한 때에, 권세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신다는 것을 당신과 함께 선포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해방의 노래(Magnificat)를 새롭게 부르셨습니다”(자포판 순례지에서 한 강론, 1979년 1월 30일, 4항; Insegnamenti II/1[1979], 295면).

 

6. 이 기회를 빌려, 저는 또한 국가 지도자들에게, 국제적 국가적 보건 기구들에, 그리고 의료인들과 자원봉사단체들과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교회의 노력에 동참하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호소합니다.   

   

파티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서 모든 사람이 이 세계 병자의 날을 “새로운 복음화”의 결정적인 계기로 삼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소망을 안고,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세계 병자의 날과 관련되는 모든 일에 어머니로서 보호해 주시기를 간청하면서, 사랑하는 병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지들에게, 의료인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그리고 고통받는 여러분과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의 사랑이 가득한 축복을 기꺼이 보내드립니다.

 

바티칸에서,

1996년 10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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