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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31: 사추덕(四樞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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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14 ㅣ No.74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1) 사추덕(四樞德)


하느님 향한 동아줄 '사추덕'



의덕’(義德)이라고도 하는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가톨릭 교회 교리서」 1807항)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덕(정의)은 그 특성으로 말미암아 발생 및 발전의 순서상 첫 번째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정의와 권리 및 의무인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의덕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 정의로운 행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도와줍니다. 즉, 의덕은 공동선을 위하여 ‘법적 정의’, ‘분배 정의’, ‘교환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인간의 의지를 자극하는 덕입니다.

‘용덕’(勇德)이라고도 하는 “용기는 어려움 중에도 단호하고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윤리적 덕”(「가톨릭 교회 교리서」 1808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덕(용기)은 확고부동한 정신력과 강인한 성격을 통해 드러납니다. 특히 용덕은 다른 모든 덕행과 깊은 관계를 맺는데, 마치 전제조건과도 같아 용덕이 수반돼야 덕행을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용덕을 실천하는 외적 형식은 공격하는 것과 참아내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참아내는 용덕이 훨씬 실천하기 어려운 덕행입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을 더욱 단련시키기 위해서 시험에 들게 하시기 때문에, 정화의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려면 용덕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따라서 평상시에 용덕을 증진하기 위해서 늘 하느님께 용덕을 청해야 하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강화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더불어 수덕 생활의 실천에서 만날 수도 있는 어려움을 대비하려고 한다면 용덕 실천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절덕’(節德)이라고도 하는 “절제는 쾌락의 유혹을 조절하고 창조된 재화를 사용하는 데에 균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윤리적 덕”(「가톨릭 교회 교리서」 1809항)입니다. 쾌락의 유혹을 대표하는 것으로 본능과 욕망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덕(절제) 실천으로 의지력을 강화하여 본능을 억제할 수 있고 욕망을 단정하게 묶어 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각적 쾌락의 원인을 단속해 쾌락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것으로 미각과 촉각을 들 수 있습니다. 미각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탐욕에 물들게 되고, 촉각의 유혹에 빠지면 정결의 덕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덕을 통해 외적 감각에서 나오는 쾌락의 경향성을 완화해야 할 것입니다. 감각적 쾌락을 피하기 위해서 때로는 수치심이나 영예감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감각은 절덕과 함께 감각적 쾌락을 완화하거나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추덕 통해 악행 제거해야

그러므로 사추덕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자신의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잘 조정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인간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장애가 되는 악행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은총으로 초자연적인 지위를 얻은 사추덕은 인간을 하느님께로 직접 이끌 수 있기 때문에 기원전 현자들이 언급한 자연적 윤리덕과 확연한 차이를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사추덕의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초자연적인 덕인 ‘신학덕’으로 넘어갈 수 있는 준비를 차곡차곡 해야 합니다.


윤리덕 실천도 중용이 필요해

다만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듯이, 수덕 생활을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실천해 다른 다양한 방법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실천하는 덕행만 유일한 방법으로 고집하거나 육체와 정신에 해를 끼칠 정도로 너무 과도하게 실천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이단적인 영성까지 출현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윤리덕을 실천할 때 ‘중용’(中庸)의 덕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또한 주입된 초자연적 윤리덕인 사추덕은 통상적인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 및 선의 실천을 통해 증가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13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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