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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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1-0619.....삼위일체를 안다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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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6-26 ㅣ No.1049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탈출기 34,4-6.8-9.        코린토213,11-13       요한 3,16-18
2011. 6. 19. 등촌3동   
 
주제 : 삼위일체를 안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삶이 행복을 향하려면, 서로 힘을 합쳐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말은 개인만 잘한다고 해서 행복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백짓장도 두 손으로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의 결과가 좋은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서로 돕거나 협동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로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뿐만 아니라, 개인으로 움직이는 일도 몸과 마음과 정신이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도 우리가 바라는 것과 달라진다는 얘기도 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은 한 분 하느님이시라고 내가 믿는다는 선언인데, 이것은 해석이 필요한 낱말입니다. 내가 하느님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삼위일체라고 인정하면, 하느님은 내 앞에서 갑자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된다는 얘기일까요? 혹시 우리가 하느님의 속성을 삼위일체라고 인정하기 이전부터 하느님은 그러한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은 우리가 이름을 들었을,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던 예수님과 훗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곳에서부터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그 존재를 알린 성령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한 몸이요 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기념하는 축제일입니다. 알아듣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든 내용이지요? 그만큼 인간의 말로 하느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일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할로 나타나는 하느님이 실제로는 세분이 아니라, 한 몸을 가진 한분이시지만, 속성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얘긴데, 이렇게 삼위일체를 얘기하는 배경은 무엇이겠습니까?
 
흔히 신앙을 무시하는 무신론자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속성은 창조주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시샘도 많고, 질투도 많고, 무자비하기도 하며,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인간을 합당한 이유 없이 벌한 무서운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등장한 신약성경의 예수님을 죽게 한 하느님인데,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 특징을 지닌 하느님과 우리 인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과 어찌 동일본체(=호모 우시아)가 되느냐고 비난합니다. 아들을 죽게 한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가 어찌 아들과 같은 몸이요 같은 존재라고 하느냐고 따지는 것이며, 그 현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어디까지 맞는 소리이겠습니까? 여기까지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세상일들 가운데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분명히 있지만, 우리들 개개인에게 받아들이겠는지 혹은 거부하겠는지 그 사정을 묻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높은데서 낮은 데로 물이 흐른다는 중력의 법칙이 그렇고, 지구가 스스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자전도 하며, 1년에 한 바퀴씩 태양을 도는 공전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이러한 일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의문을 품는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지구가 자전을 멈추고 공전도 멈추어버릴까요?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내일 당장 생길 일은 아닐까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본질과 속성에 대해서 묻고, 들려오는 대답이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렇게 복잡한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옳은 소리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독서 탈출기는 십계명판의 두 번째 준비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첫 번째 판은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모세가 깨뜨려버렸고, 두 번째 다시 준비한 돌 판에 계명을 담아주시고, 소리로서 하느님의 속성을 선언하십니다. <‘나는 자비하고 너그러운 신이며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신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선언하신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세상일은 사람의 선택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로봇처럼 되어 자기 생각도 없이 그저 하느님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기뻐하며 살 것, 자신을 바로잡으며 사는 것, 서로 격려하면서 사는 것, 또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을 바라실 것입니다.
 
오늘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에, 억지로 인간의 지식을 꿰맞추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신앙의 정신으로 우리가 배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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