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교정사목] 한국 교정사목의 현주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84

한국 교정 사목의 현주소1)

 

 

들어가는 말

 

'교정 사목'(矯正 司牧, Correction Apostolate)은 재소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줌으로써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교정'(矯正, correction)의 목적도 처벌, 격리가 아니라 교화시켜 다시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세상 모든 이들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는 교회에게 '갇힌 이들에 대한 관심'은 더없이 중요한 몫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라 할 수 있는 '갇힌 이들에 대한 관심', 곧 '교정 사목'을 교회가 어떻게 수행해 왔으며, 현재는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교정 사목'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교정 사목'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서울대교구이며, 현재에도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교정 사목'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보고 평가하는 것이 결국 한국 교회의 '교정 사목'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글의 연구 범위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로 한정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1. 교정 사목의 개념과 태동

 

1) 교정 사목의 개념

 

교도소 제도는 범죄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심적, 육체적 고통의 형벌 등으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를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자유 박탈을 통해 고통을 가하여 범죄성을 교정하고 범죄자들을 감화시킨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엄격한 훈련과 고된 노동에 중점을 둔 것도 사실이다.

 

19세기 말 이후가 되어서야 죄수들의 사회 복귀와 재범률의 최소화를 위하여 여러 방면의 노력이 시작되었으며, 근래에 들어와 여러 제도 가운데 하나로 종교 위원 위촉을 통한 종교 교화 제도를 통해 재소자들이 신앙으로 교화되고, 출소 후에도 신앙의 힘으로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제공하는 종교 위원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교정 사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2) 교정 사목의 성서적 근거

 

교회의 교정 사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2)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하고자 하신 '하느님 나라 완성'의 첫 자리에 바로 '묶이고 억눌린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교정 사목의 정신은 "당신의 법을 내가 잊지 않으리니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건져 주소서. 고발당한 이 몸을 변호하시고 구해 주소서. 약속하신 대로 이 몸을 살려 주소서."3)라는 성서 말씀에 따라 하느님 안에 모두 같은 죄인으로서 형제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하느님의 사랑을 아직 깨닫지 못한 영혼의 형제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데 있다.

 

3) 교회적 사명으로서의 교정 사목

 

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4)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5)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을 때에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바로 이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돌보아 준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억눌린 것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셨고, 당신께서 시작하신 이 사명을 교회가 이어가기를 명하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현대 세계 안에서 실제로 부자유스런 상황에 묶여 있는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마땅히 해야만 하는 사명인 것이다.

 

 

2. 한국 교정 사목의 역사적 발전

 

1) 교도소 후원회 창립 이전

 

한국 교회의 교정 사목은 이미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천주학쟁이로 몰린 신자들이 투옥되어 순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죽이려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6)에 따라 수많은 교우들이 체포, 구금되었으며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요청되었던 것이다. 비공식적이고 비밀스러운 사목이 진행되었기에 그 횟수와 시간은 극히 제한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교정 사목은 순교에 대한 뜻을 겸허하고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데 더욱더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친일파와 공산주의자, 남파 간첩, 전쟁 포로 등의 사상범들이 형무소에 수용되면서 본격적인 교도소 사목이 요청되었다. 교도소 안에서 재소자들을 하느님께 이끌어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려는 노력은 당시의 교도관이었던 고중렬(高重烈)과 몇 사람에 의해서 비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7) 서대문 형무소에서 근무한 그는 간첩 혐의, 사상범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대세를 주고,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였다. 이때 마침 당시 세종로 본당의 박귀훈 신부와 서울 고등법원장이었던 김홍섭 판사가 사형수 허태영을 옥중 방문하여 2년 동안이나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미약하나마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박귀훈 신부는 교도소 사목의 중요성을 깨닫고 후원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당시 가톨릭 여학생 회관에서 정부 고위처에 있던 신자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던 중 교도소 활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러한 이야기가 평소 교도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서공석 신부의 누이 동생인 서금석에게 알려졌다. 곧바로 서금석은 당시 가톨릭 여성연합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김현과 함께 '교도소 후원회'의 설립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2) 교도소 후원회(1970-1978년)

 

1970년 4월 2일 명동 성당 사제관 3층에서 김정수(수산나)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고 창립 총회를 개최하여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도소 후원회'라는 이름으로 교도소를 후원하는 교회 내의 공식 단체가 설립되었다.8) 특기할 점은 '교도소 후원회'가 교구에서 주도하여 설립된 것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970년 7월에 초대 지도 신부로 취임한 장홍선 신부는 본격적으로 각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월 1회 미사를 봉헌하고 교리 지도를 하였다. 이때에 의정부 교도소와 불광동 소년원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한 사형수들에게 회원들을 자매결연 해 주는 운동을 하였다.

 

제2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여형구 신부는 부임한 이듬해인 1973년에 후원 회원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중점적으로 노력하였다.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는 사형이 집행되는 신자 사형수들에 한하여 몇 개 본당9)의 묘지에서 장례 미사를 거행하고 안장할 수 있게 되었다. 여 신부가 재직중인 1974년에는 우리나라가 민주화의 열기에 뜨거웠고, 지학순 주교의 구속과 정의구현사제단 활동 등을 계기로 옥중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교회 내에서도 이들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도 교도소 내의 부조리 척결을 위한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제3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김병기 신부는 부임한 지 4개월 만인 1975년 9월 교도소 후원회의 첫 기관지인 [빛]의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이제까지 후원회의 소식을 대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없었던 후원회에 기관지의 창간은 교도 사목 홍보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4대 한정관 신부가 부임하여 교도소 후원회가 실시하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내실을 기하고자 노력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가난한 재소자들에게 명절에 영치금과 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을 제공하고, 사형수들을 위한 생일 잔치를 월 1회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3) 교도 사목 후원회(1979-1980년)

 

교도 사목은 제5대 안경렬 지도 신부(1978년 9월-1979년 12월)가 부임하면서 좀 더 활기를 띠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안 신부가 부임한 이듬해인 1979년에 '교도소 후원회'의 명칭을 교도 사목의 좀 더 폭넓은 활동의 추진을 위해 '교도 사목 후원회'로 개칭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도소 후원회의 기관지인 [새남터]를 다시 [빛]으로 개칭하여 발간하게 되었는데, 1979년 2월부터는 다달이 발간되는 월간지의 성격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당시 실정에 따라 다달이 발간되지는 못하였다.10)

 

1979년에는 '제1차 전국 교도 사목 실무자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는 새로운 교도 사목의 모습을 모색하고자 전국 규모의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에서는 재소자의 교화 사업 및 복음화 운동과 이감자 및 재소자 가족 문제를 더욱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각 교구의 유대 방안과 전문적인 교도 사목을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이 시기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는 각 교구의 홍보를 통한 후원회 결성 문제였다. 이를 통한 전국 규모의 '교도 사목 협의회'를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4) 교도 사목회 / 교도 사목 위원회(1980-1995년)

 

차인현 신부는 제6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이듬해인 1980년에 교도 사목의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적인 본부와 교도 사목 후원회로 이원화되어 있던 교도 사목의 행정을 체계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일원화했고, 그 명칭도 '교도 사목 후원회'에서 '서울대교구 교도 사목회'로 바꾸었다. 또한 후원 회원의 자격이 가톨릭 신자로 제한되어 있던 것을 교도 사목에 뜻이 있는 모든 사람들로 그 폭을 확대하고 각 본당을 통한 회원 확보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시기부터 교정 시설이 속해 있는 본당의 도움과 여러 신부들의 도움으로 각 시설을 담당하는 책임 봉사자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담당하는 사제나 수도자가 각 교정 시설에 전담으로 파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본당이나 개인 사정 등으로 유동성이 너무 많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차 신부가 사임하고, 그 후임 지도 신부를 두지 않고 1983년 최선웅 신부가 부임할 때까지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를 맡고 있던 경갑룡 주교가 본 회를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평면적으로 수행해 온 교도 사목 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재소자들을 교육하거나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경우에 영화, 슬라이드 등 입체 자료를 이용하고 각종 교리 신앙 교육에 최대 역점을 두고자 하였다.

 

1983년에 부임한 최선웅 신부는 교도소에 성서와 성인전, 각종 교회 잡지, 신심 서적 등을 보내 출판물을 통해서 재소자들의 영성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최 신부는 미약하나마 재소자뿐만이 아니라 교정 시설 근무자인 경비 교도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제8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주수욱 신부는 교도 사목회의 내실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래서 교도 사목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도 사목의 모습은 외적인 성장을 위하여 중점을 두다 보니 한편으로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교정 사목 본연의 활동에 소홀하게 된 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제9대 지도 신부인 김현배 신부의 부임 이후에는 교도 사목의 활동이 후원회 자체의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몇몇 본당과 수녀원의 협조를 얻으면서 좀 더 폭넓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일반 신자들에게 교도 사목에 대해 새롭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교도 사목은 본격적으로 '출소자들에 대한 사목'의 필요성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도 사목회는 출소자의 주거 대책 마련, 재활원을 구상하자는 건의에 따라 출소자의 집 설립을 위한 소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하였다.

 

제10대 지도 신부로 부임한 추영호 신부는 미사와 교리, 상담 등의 기본 활동의 강화와 더불어 1986년에 추진하기 시작한 '출소자의 집' 개원, 교화 행정과 교정 교육 문제점 개선을 위한 세미나 개최, 사형 폐지 강연회와 대국민 서명 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교도 사목의 활동을 다양하게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재소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활동으로 본당 후원 조직의 확대와 현장 봉사자들의 일치와 친교의 장을 확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제11대 지도 신부로 김우성 신부가 부임하면서 교도 사목회는 창립 이래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교회 내, 외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다. 김 신부는 기존 위원회에서 실시해 오던 각 교정 시설 내에서의 활동들에 대해서 그 규모나 재정적인 지원들을 대폭 확대하였다. 그리고 출소자에 대한 재활 사업에서도 구체적인 재활 시설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고, 각 교정 시설에 물품을 지원하였다. 그뿐 아니라 교도 사목의 좀 더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전국 단위 모임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국 교도 사목 협의회'와 '전국 천주교 교도관 모임'의 결성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1995년 1월에는 당시 최창무 보좌 주교가 서울대교구 내에 사회 사목 분야를 담당하면서 '사회 사목부'를 신설하여 사회 사목부 산하의 모든 단체의 이름을 '위원회'로 통일할 것을 권고하여 '교도 사목회'에서 '교도 사목 위원회'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1995년 4월에 다시 '교도 사목 위원회'를 '사회교정사목위원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사회교정사목위원회(1995년-현재)

 

1996년에 부임한 김정수 신부11)는 급속하게 성장 발전한 교정 사목 활동의 내실화에 역점을 두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활동들을 내적으로 충실히 다지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천주교 교도관들의 모임인 '성심회'의 활성화와 재소자들을 위한 문화 행사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 밖에도 특수성을 가진 소년원, 분류 심사원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모임을 결성하고, 후원금 모금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 신부가 교구 소속 사제가 아니어서 교구 내에서 교정 사목 활동을 하는 데에 교구 사제들과의 연계, 지역 본당 협조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99년 3월에 제13대 지도 신부로 이영우 신부가 임명되었다. 이 신부는 후원회가 주관하는 교육과 피정을 정례화하고, 특별히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형 폐지 운동을 타종교와 연합하여 실시하였다. 또한 이 신부는 봄, 가을로 개최되던 '전국 교정 사목 협의회'의 회의와 세미나의 성격을 단일된 체제로 통합하였다.12) 이로써 1999년 11월부터는 '전국 교정 사목 협의회' 세미나가 교정 사목과 관련된 모든 성직자, 수도자, 봉사자, 성심회원들이 참석하는 전국 통합적인 회의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밖에도 이 신부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민영 교도소 설립을 위해서 연구 모임을 가지며 교정 위원들이 꾸준히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13) 이 밖에도 이 신부는 더욱더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정 사목을 계획하고 있다.14)

 

 

3. 교정 사목의 활동

 

1) 재소자들을 위한 활동

 

재소자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재소자들을 위한 미사와 교리 지도, 세례성사, 견진성사, 부활과 성탄 행사, 피정, 생일 잔치, 영성 서적 보급, 개인적인 신앙 면담 등을 중심으로 한다.

 

사형수들은 일반 재소자들과 함께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사형수들만을 위한 미사와 면담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사 외에도 면담과 복음 나눔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년원생들이나 분류 심사원의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은 본 위원회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지 않고, 살레시오 수도회에 위탁하여 관리하고 있다. 살레시오 수도회에서는 소년원과 분류 심사원을 담당하는 사제와 수도자를 파견하고, 본 위원회에 속하는 책임 봉사자와 협조 체제를 이루고 있다.

 

2) 출소자들을 위한 활동

 

출소자들을 위한 가장 많은 활동은 '상담'이다. 사회 적응을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호소하는 출소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 번의 상담으로 그치고 재정적인 지원만 요구한다. 문제는 출소자의 상황이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과 지속적인 상담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무의탁 출소자들을 위해서는 1988년에 설립한 '평화의 집'을 2000년 9월에 구의동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출소자들이 '평화의 집'에 들어왔다가 무단으로 나가는 경우가 너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평화의 집'을 통한 출소자들의 재활, 사회 복귀에도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3)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

 

많은 소년범들의 경우에 가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호자에 의한 반성과 교육이 보장되지 않아 보호 시설에 송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인식하고, 본 위원회에서는 1993년 6월 군포에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 시설인 '대철 베드로의 집'을 개원하였다. 현재는 '나눔터'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가출 소녀들을 중심으로 보호하며 운영하고 있다.

 

4) 그 밖의 활동

 

그 밖에도 후원 회원들을 위한 월례 미사와 성지 순례, 봉사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정 시설 근무자에 대한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도 사형 폐지 등을 위한 인권 운동과 각종 세미나 개최, 정기 간행물과 자료집 발간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민영 교도소 건립을 위한 계획, 피해자 사목, 재소자 가족들에 대한 관심, 상담 교육의 활성화, 천주교 교도관들의 모임인 '성심회'의 활성화 등을 2002년 사업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4. 교정 사목의 문제점

 

1) 전담 사제의 부족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점으로 전담 사제 부족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제의 부족은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된 문제점이지만, 신앙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재소자들에게 성사를 집행할 사제가 없다는 것은 가장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소자들 중에서 신자들의 경우에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사와 고해성사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2가지 성사 집행조차도 매주일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교구 내에서도 사제가 부족한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전담 사제 확충이라는 이상적인 방법 외에도 교정 시설이 있는 지역 본당의 도움을 받거나 지구 내에서, 또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4개 지역15) 내에서 공식적인 담당 신부를 겸임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16)

 

2) 교정 사목에 대한 인식 부족

 

재소자들을 돕는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들까지도 부정적인 반응을 강하게 나타낸다. 그러므로 교정 사목은 재소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목과 동시에 사회 전반적으로 재소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범죄인들이 출소 이후에 다시금 범죄하게 되는 것도 범죄자에 대한 이러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재소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한 교정 시설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정, 교화는 유명무실해지고 말 것이다.

 

3) 출소자 사목의 어려움

 

교정 시설을 운영하는 목적17)이 재소자들을 교정, 교화하여 그들이 사회에 다시 정상적으로 복귀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기에 출소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교정 사목에 있어서 중요한 몫이다.

 

출소자들을 위한 활동을 함에 있어 출소자에 대한 사회의 과도한 선입견과 무조건적인 거부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출소자들 자신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재활하여 사회에 복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전적으로 자신들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모든 출소자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출소자들이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하고,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보다는 자포자기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4) 각 교구 간의 유기적인 관계 형성 부족

 

재소자들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사건에 대한 판결 유무나 범죄의 질에 따라서 수감되는 시설이 결정된다. 또한 어떤 시기나 교정 시설의 여러 가지 이유로 수감되어 있는 시설을 옮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교정 사목에서는 교구 사이의 유대 관계가 중요하다. 각 교정 시설의 담당 교구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 체제를 갖추고 있다면 그들에 대해서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교정 사목 활동은 아직까지 그러한 단계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구 간의 유대 문제에서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현재 교정 사목을 전담하는 사제가 모든 교구에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로 사회 복지 분야로 구성되어 겸임 형태로 이루어지거나 교정 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본당에서 담당하는 형태를 하고 있어서 교구 사이의 유대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재소자들에 대한 활동 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교구가 많다.

 

5) 재정 부족

 

재정 부족의 문제는 비단 교정 사목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신설 본당이나 다른 특수 사목 분야에서도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은 함께 공감하고 있는 문제이다.

 

 

5. 교정 사목을 위한 발전적 제안

 

1) 교정 사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한 노력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정 사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교정 사목은 특별히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하느님 생명의 회복'이라는 복음적 가치에 비추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죄를 지은 범죄자이지만, 범죄자들은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사랑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이며, 지금도 그러한 사랑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교정 사목의 요청은 더욱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의 이웃이 되어 그들에게 그러한 관심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18) 재소자들이 그러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하느님 생명의 모습'으로 회복된다. 교회의 사명이 왜곡된 세상을 하느님 창조의 원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라면 교정 사목은 그러한 교회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곧 교정 사목은 이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2) 교정 사목의 전문화

 

현재 교정 사목은 담당 사제들의 성사 집행 외의 교정 프로그램에서 주로 재소자들과 봉사자들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교정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효율적인 교정, 교화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심정적인 배려에 의한 관심과 함께 전문적인 사회 복지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과 사회 심리학, 범죄 심리학, 전문적인 상담 기술 등이 연계된 일관성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교정 프로그램은 교정 당국과의 협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교정 당국도 다양한 교정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며 연구하고 있다.19) 이러한 교정 프로그램을 함께 연구하여 종교적인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을 모색해야 한다.

 

전문적인 교정 프로그램의 연구와 개발을 통해 모든 재소자들에게 종교적 프로그램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더욱더 폭넓은 사목의 장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3) 출소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회 적응 프로그램 개발

 

교정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재소자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반 사회의 인식은 재소자들의 사회 복귀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교정 시설에서의 교정, 교화가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다시금 그들을 범죄로 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가 범죄자들의 처우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정의 본질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정 당국은 물론 사회 전체가 협력하는 '총체적 교정'이 되어야 한다.20) 이런 의미에서 출소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출소자들의 사회 적응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교정 사목에서도 아주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주어야 하며, 출소자들이 사회에서 쉽게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교회 내에서도 출소자들을 위한 다양한 재활 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4) 각 교구 간의 조직적인 관계 형성

 

교정 사목은 어느 한 교구의 노력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직시하여야 한다. 각 교구와 교구가 서로 연계함으로써 수감 시설이 이동되는 신자(예비신자 포함) 재소자들의 상황을 신속하게 공유하여 대응할 수 있다면 재소자들에게 좀 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으며, 더욱더 교정, 교화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출소자들을 위한 좀 더 효과적인 재활 사업을 위해서는 초교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각 시설의 성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리며 다양한 형태의 재활 시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교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5) 그 밖의 제안들

 

첫 번째는 '사회 사목 분야'에 대한 교육이 신학교 교과 과정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사회 사목 분야를 소개해 줌으로써 이 분야들에 대해서 신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하겠다.

 

두 번째는 교정 복지 센터의 설립이다. 범죄자들은 분명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 수용할 사회의 낙오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교정, 교화의 프로그램들이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교정 복지 전문 센터를 설립하여 교정 사목 담당자와 봉사자들에게 교정 복지에 대한 전문화된 교육과 출소자들에 대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과 재활 사업들이 연구되어야 한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한국 교회의 '교정 사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양한 형태의 범죄들이 생겨나는 현대 사회에서 '교정 사목'도 전문화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과거처럼 단순히 교정 시설 내에서의 종교 행사를 위한 사목의 방향을 벗어나 이제는 범죄자들을 다시금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 영성적 사랑과 정신적 치유가 필요하다.

 

또한 이제는 재소자들만을 위한 사목이 아니라 출소자들에 대한 관심과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려, 교정 시설 근무자들에 대한 관심, 사회 인식의 변화 유도, 사회 제도적 문제에 대한 개선 운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교정 사목'은 숙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정 사목의 모든 노력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더 잘 전하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곧 하느님 백성 모두가 예외 없이 '해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정 사목'도 바로 그러한 '해방'의 기쁜 소식, 곧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4-40).

 

--------------------------------------

1) 이 글은 "졸문, [교정 사목의 어제와 오늘-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활동을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2."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2) 루가 4,18-19이 구절은 이사야서 61,1-2의 말씀인 "주 야훼의 영을 내려 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라는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메시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리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사명을 실현하리라고 예고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은총의 해'를 선포하시며 평등과 형제애와 친교를 이룰 수 있는 화해와 나눔의 상황으로 인류를 이끄시고자 하는 것이다.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 국제가톨릭성서공회, 일과 놀이, 1995년, 구약 1288면; 신약 127면 참조. 

 

3) 시편 119,153-154. 

 

4) 사목 헌장, 1항. 

 

5) 마태 25,31-46 참조. 

 

6) 조선 때, 범죄자의 색출과 세금 징수, 부역과 징용 따위의 의무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지우려고, 다섯 집을 한 통으로 만든 주민 조직 제도. 선종 16년(1485년) 한명회의 주장으로 실시한 것인데, 순조와 헌종 때에는 천주교를 탄압하고 천주교의 전교를 막는 데 쓰였다. 허종진,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Ⅲ],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년, 1946면 참조. 

 

7) 김우성, "교정",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586면. 

 

8) 이날 총회에서는 '교도소 후원회'의 회장에 김정수(수산나)를, 부회장에 나희균(크리스티나)을 선출하였다. 사회교정사목위원회, [25주년사 자료] 참조. 

 

9) 당시 금호동 성당, 세종로 성당, 종로 성당에서 사형수들을 위해 성당 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같은 글 참조. 

 

10) 그러나 [빛]지는 1981년 3월, 제18호까지 간행되고 폐간되었다. 폐간 이유는 본 회의 홍보 활동도 기초가 잡힌 데다가 무엇보다 경비와 시간의 절감이 주원인이었다. 이는 회지까지 일일이 회원들의 손으로 작성하고 발간하기까지 들어가는 경비와 시간까지도 재소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정도로 교도 사목의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사회교정사목위원회, [25주년사 자료] 참조. 

 

11) 김정수 신부는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사제이다. 교구 교정 사목 창립 이후에 교구 사제가 아닌 수도회 사제가 책임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교정 사목에 종사하고자 하는 교구 사제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일은 교구 사제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 신부는 이전부터 교정 사목에 관심을 갖고 봉사자로 일해 오다가 본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본위원회 이영우 위원장 신부의 녹취록 참조. 

 

12) 기존에는 성직자, 수도자, 봉사자, 성심회원들의 모임이 분할되어 있었다. 1998년 처음으로 '전국 교정 사목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정식으로 창립하였으나 교정 사목 담당 사제들만의 모임이었다. 1999년 5월 춘계 모임에서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함께 모임을 가졌으나 교정 사목 담당자들의 통합적인 모임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99년 11월 추계 모임부터 모든 교정 사목 관련자들이 참석하게 되었다. 본위원회 이영우 위원장 신부 녹취록 참조. 

 

13) 민영 교도소 설립 문제는 2000년 7월 교정 위원 회의에서 토의된 이후에, 2001년 4월 교정 위원 회의에서 교정 위원인 박병식 교수가 '민영 교도소 연구 계획서'를 발표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본위원회 2002년 [정기 총회] 자료집 참조. 

 

14) 이 신부는 '전국 교정 사목 협의회'에 좀 더 많은 교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마다 교구별로 돌아가면서 준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봉사자들의 전문성을 위해서 교정 상담 교육을 확대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민영 교도소 설립도 연구 중이다. 본위원회 이영우 위원장 신부 녹취록 참조. 

 

15) 2002년부터 서울대교구는 교구를 중서울, 서서울, 동서울, 경기 지역으로 분할하여 지역마다 교구장 대리인 몬시뇰을 두고 지역 주교 대리제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목 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 공포 배경과 의미", [평화신문], 659호(2002.1.13.) 참조. 

 

16) 그러나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는 지구나 지역 내의 전담 사제보다는 지역 본당과 교정 사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제들의 도움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교정 사목이 개인적인 관심과 더불어 '책임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본 위원회 이영우 위원장 신부 녹취록 참조. 

 

17) [행형법] 제1조. "본법은 수형자를 격리하여 교정 교화하며, 건전한 국민 사상과 노동 정신을 함양하고 기술 교육을 실시하여 사회 복귀하게 하며......" 

 

18)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32항. 

 

19) 현재 교정학자들은 비교적 재범 방지의 효과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며 연구하고 있다. 이런 교정 프로그램은 주로 '분노 조절 프로그램', '친사회적 행동 기술 훈련', '도덕적 논리성 발달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연구하는 데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종교의 다양한 역할이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정 사목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의 연구를 통해서 보다 전문성을 가진 교정 사목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윤호·이수정·공정식, [분류 처우론 - 교도소의 범죄 심리], 동현출판사, 2000년, 180-192면 참조. 

 

20) 이윤호, [형사 정책], 박문각, 1999년, 982-984면.

 

[사목, 2002년 11월호, 김성은(서울대교구 새 사제 학교, 신부)]



55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