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삼위일체 대축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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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5-29 ㅣ No.112

삼 위 일 체  대 축 일 ( 가 해 )

 

  출애 34,4ㄴ-6.8-9. 2고린 13,11-13  요한 3,16-18

 1999. 5. 30.

 

주제 : 사랑으로 뭉친 하느님

 

한 주간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이렇게 인사를 드리기는 해도, 여러분이 한 주간을 지낸 사정을 모두 알고 나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새로운 한 주간의 시작을 맞아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자세에 따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빈자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은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느님,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성자, 거룩한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성령으로 구별하는 분이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다짐하는 축일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고 말하는 사실이 우리의 생활에는 무슨 영향이 있을까요?  ’별로 없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었든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모르고 올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삼위일체의 특성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가 삶으로써 그 특성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부질없는 일이 되 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보여주신 특성 가운데 우리가 알아들을 만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삽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나 자신에게 진짜 기쁨으로 드러나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 살아갈 힘이 되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이란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쉽게 말합니다. 저도 쉽게 말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그래서 여러분도 그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웃이 그런 사랑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 가지 방법 여러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에게 도전하였던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했던 질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마태 22,34-40)이라고 예수님은 응답하십니다.  감히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사랑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몸을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내가 사랑한다고 하되, 그들이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오늘을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향하여 모든 것을 내놓으셨던 하느님의 우직한 사랑,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피조물을 향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가 바친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이 바친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첫 독서는 시나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있고 난 다음, 새로운 십계판을 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 십계판은 모세가 산 위에서 깨트려버리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귀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말씀과 의도로써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자비와 은총이 넘치는 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의 특성을 선언하시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렇게 보여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우리는 어떤 분으로 알아모시는가?

오늘 두 번째 독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법을 알려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알려주는 분열과 불화의 공동체 고린토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며 알려준 내용입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거라는 바오로 사도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삽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생색을 내기 위한 정도만 사랑합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한 사랑을 보이는 분도 있습니다. 바로 세 번째의 사랑이 삼위일체 대축일에 기억할 사랑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관리를 사람에게 맡기신 하느님, 인간으로 태어나 오로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우리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어 우리가 사랑의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을 우리가 모셔들여 우리 삶에서도 참된 사랑의 생활을 하도록 도움을 청합시다.

 

세상에서 의미있게 사는 방법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은 잘·잘못을 가려 진정한 용서를 선언하는 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본보기를 남겨주신 삼위일체를 기억하는 한 주간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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