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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7: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영적 여정의 길잡이 향주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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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705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7)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영적 여정의 길잡이 향주삼덕

 

향주삼덕, 하느님께로 인도해주는 ‘길잡이’

 

 

라파엘로 산치오의 목판화 향주삼덕(위에서부터 희망, 사랑, 믿음)


영의 정화 대상인 지성 · 기억 · 의지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인간의 정화 가운데 영의 정화 대상은 지성, 기억, 의지를 말합니다. 이 세 기관은 인간을 여타 동물과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탁월한 능력들입니다. 본래 지성의 역할은 감각의 활동을 통해 받아들인 사물의 정보를 바탕으로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제반 사물의 진리를 추적해 들어가 그 모든 진리를 떠받치는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지는 그렇게 인식된 진리가 인간에게 좋은 것일 경우,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원하고 취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렇게 해서 그 대상을 얻어 기쁨을 누리게 되면 그런 일련의 행동과 감정이 기억 안에 간직됩니다.

문제는 지성, 기억, 의지의 대상이 하느님이 아닌 세상 것들로 꽉 차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많다 한들, 결국에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절대 진리이신 하느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가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헛된 것에 마음을 두고 우리 영혼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단 한 번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그렇게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물질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현대인들의 삶 속에는 예수님이 가르치는 복음의 기쁨이 들어설 여백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하느님에 대해, 천상에 대해 잊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충족시켜 주고 우리 영혼을 사로잡아 혼이 빠지게 만드는 것들로 넘쳐납니다. 정말이지 초대 교회의 신자들처럼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그 유혹에 넘어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두운 밤의 길잡이인 향주삼덕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시대에 상관없이 그렇게 사람의 혼을 쏙 빼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들은 많았나 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 영혼의 핵심 중의 핵심인 지성, 기억, 의지가 그렇게 하느님 아닌 헛된 것들에 사로잡히지 말도록 가르쳤고, 만일 그렇게 됐을 경우 사로잡혔던 흔적들을 말끔히 정돈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주요 기관을 깨끗이 만들어주고 인간이 본래 태어난 목적에 맞도록 방향을 다시 설정해주는 덕이 다름 아닌 향주삼덕 또는 대신덕이라고 합니다. 성인은 「가르멜의 산길」 후반부 전체를 이 덕에 할애해서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주요 안내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하느님과의 합일이라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이 목적에 이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본성적 능력을 무한히 초월하는 분이시므로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 목적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이르려면 그분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들어 올려 주실 때 비로소 그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초자연적인 덕이 바로 향주삼덕입니다. 향주삼덕은 인간 영혼의 주요 기관인 지성, 기억, 의지에 작용함으로써 이 세 기관으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중추적인 덕입니다.


신덕 · 망덕 · 애덕의 역할

‘신덕’은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것과 거룩한 교회가 우리에게 믿도록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게 하는 향주덕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신덕은 초자연적인 생명의 기초가 됩니다. 신덕은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내걷는 첫 번째 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덕은 영적인 삶의 뿌리가 됩니다. 영성 생활의 진보 여부는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주님께 깊이 내려져 있는가 하는 점에 달려 있습니다.

반면, ‘망덕’은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해주는 덕을 말합니다. 이 덕 역시 하느님께서 은총을 통해 선사하시는 선물입니다. 망덕은 초자연적인 선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깊숙이 심어주시는 이 희망은 우리가 갖고 있는 원의를 정화하여 하느님을 향하게 해줍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아서는 모든 장애물을 인내로이 넘어서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 즉 애덕은 향주삼덕 가운데 으뜸이 되는 덕으로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게 해주는 덕입니다. 애덕은 인간의 의지에 작용해서 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렇듯 향주삼덕은 주님을 향한 여정에서 으뜸이 되는 덕으로서 우리를 주님께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확실한 길잡이가 됩니다. 신앙생활이 무료하고 별 의미를 못 느끼십니까? 주님께 이 세 가지 덕을 청해 보십시오. 이 벗들의 도움으로 여러분은 어느새 주님 곁에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2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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