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강론자료

2012-1111...연중32주일...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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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11-10 ㅣ No.1327

연중 32 주일 (나해)

1열왕기 17,10-16       히브리 9,24-28      마르 12,38-44

2012. 11. 11. 등촌3

주제 : 우리가 드러낼 올바른 자세

이제는 겨울이 시작됐다고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겨울의 문턱이라고 말하는 입동(立冬)도 지났고, 이제는 김장을 생각하는 때도 되었습니다. 밭에서 생산되는 배추의 가격보다 4배나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는 슬픈 소식을 엊그제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겨울준비는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김장은 말 그대로 농경민족이 겨울을 지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내 몸에 필요한 먹을 것을 쌓아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예전에 이제 김장도 끝냈으니, 겨울이 춥다고 해도 걱정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내 몸에 필요한 것을 갖추고, 준비하는 것이 계절에 맞춰 우리가 할 일인데, 오늘 연중32주일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의 자세와는 다른 일과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살이기 힘들어진다고 말은 해도, 옳은 자세를 선택해서 옳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직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직은 선하고 착하고 옳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에, 우리 세상이 이런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내가 포함되어있고, 정말로 내가 옳게 사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갖고 사는 자세와는 상대되는 모습이 드러날 때라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 앞에 내 삶을 자랑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통하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늘 유지하고 살아야 하는 자세를 율법학자들이 보였던 모습과 비교해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로 하느님의 옳은 길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 옳게 살아야 한다는 전제를 앞세우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잔치 때에도 윗자리를 즐기며, 과부들의 가산은 등쳐먹으면서 기도는 길게 하는 위선자들이라는 평가를 하면서 애석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제가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이 자리에 율법학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을 평가하신 말씀에 비춰 나는 얼마나 합당하게 사는지 돌아보는 것이,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치는 때에 우리가 할 일의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우리의 삶에 간섭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됐든 저것이 됐든 모두 다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우리가 세상에서는 내 생각과 뜻대로만 살다가, 삶의 끝에 이르렀을 때나 하느님 앞에서 내 삶을 셈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현실로 만들어낸 결과와는 다른 욕심을 갖는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심각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성전에 봉헌하는 돈의 가치와 크기를 몰랐을까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니, 당연히 그러셔야 할 거라고 우리가 말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예수님은 돈의 가치를 아셨고, 비교할 줄도 아신 분이었습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은 돈의 액수를 보신 것이 아니라, 돈을 헌금함에 넣는 사람의 전체 삶을 보시고, 그 평가를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렙톤 두 닢은 우리가 사용하는 동전인 10원짜리 두 개나 100원짜리 두 개 정도에 해당할 돈입니다. 그 금액을 헌금함에 넣은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했으니, 우리도 성당에 와서 헌금할 때는 과부가 한 것처럼 동전 2개만 넣어도 좋다는 것일까요? 물론 어떻게 해석해도 그 책임을 추궁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내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부자는 세상 삶에 성공했거나 잘 적응한 사람의 상징이고 과부는 실패한 사람이거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 오늘 마르코복음의 말씀을 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자세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오늘 열왕기 독서말씀으로 들은 사렙타마을의 과부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신앙인으로 사는 사람이 알아들을 자세가 다르고, 남들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다를 것입니다. 어떤 자세가 옳다거나 어떤 자세가 권장할 만한 자세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제가 하는 판단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예언자는 과부에게 요청합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여 봉헌하고, 그 다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라고 합니다.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열왕기독서는 전하지 않지만, 우리가 모를 일은 아닙니다.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녀가 하느님의 뜻을 따랐을 거라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현실에서 그렇게 할까요? 그 본보기대로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억해서 행동해도 옳은 자세일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201211월을 지내고 있는, 우리들 각자가 현실에서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한다고 해서 어떤 축복이 오겠는지,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행동은 신앙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 일에 대한 보상이나 갚음은 하느님께서 신앙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베푸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의도를 미리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이러하다면 이렇게 행동하고, 하느님의 뜻이 저러하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궁금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배워서 실천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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