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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의 본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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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56

가정의 본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머리말 

 

오늘의 세대는 가장 심각한 가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하는 염려의 소리도 높다. 교회의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신자 가정의 비신자 가정을 향한 책임은 더욱 중해지고 있다. 가정 문제에 교회가 과연 얼마나 사목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며 더욱 특별한 사목적 관심으로 가정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가정이 본연의 것이 되려면 본연의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가정은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에 의해 형성되므로 혼인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혼인의 의미에서 가정의 의미가 드러나며 혼인 속에 가정은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혼인의 본뜻을 성서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그 다음 이를 근거로 혼인과 가정의 성사성을 고찰해 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정 공동체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토대로 가정의 본질과 사명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가정은 인류 구원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약을 상징하는 혼인 성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이 부부의 사랑은 그 본연의 성격상 생명에의 봉사를 지향한다. 생명에의 봉사의 본질은 자녀 출산과 교육이다. 부부의 사랑은 그 사랑의 결실이요 징표이며 생생한 증거인 자녀 출산으로 절정을 이루며 자녀 교육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가정은 그 본연의 성격상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정이 보다 그리스도교적일수록 더욱 인간적인 가정이 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1) 

 

성서에서는 혼인을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의 경륜에 포함시켜 창조주께서 혼인에 부여하신 깊은 의미를 차츰 구체화함으로써 혼인을 창조와 구원의 성사로 계시하고 있다. 

 

야훼스트 전승과 제관계 전승을 따라 창세기에 기록된 두 가지 창조 설화에서부터 혼인에 대한 창조주의 뜻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창세 2,18) 여인은 외 로운 아담을 '돕는 이’로 창조된 것이다. 이에 남자는 자기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창세 2,24)을 이룬다. 부부에 있어 아내는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뼈에서 나온 뼈요, 살에서 나온 살”(창세 2,23)로서 자신의 일부요 자신의 몸이다. '한 몸’을 이루는 부부의 일치 관계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 깊은 것으로 이에 비할 수 있는 인간 관계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에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는 것이다. 또한 부부는 '한 몸’이므로 서로 대등한 존재로서 서로를 돕는 관계이다. 따라서 서로를 보충하여 창조주의 본래 뜻인 완성으로 향할 수 있도록 서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 이것이 부부의 첫째 임무이다. 성적인 사랑 역시 이처럼 서로 협력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초대받은 두 남녀가 혼인을 통하여 육체의 결합으로 한 몸을 이룰 때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갖는 것이다.” 2)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제관계 전승의 창조 설화에서는 자녀 출산을 창조주께서 설정하신 혼인의 뜻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상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며 그들에게 “자식을 낳아 번성하라.”고 축복하신다(창세 1,27-28) 자녀 출산은 혼인에 내리신 하느님의 축복이요(창세4,1참조) 선물로 여겨진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축복 역시 ‘큰 민족’을 이루는 자녀 출산의 축복이었다(창세 12,2참조). 출산은 사실 부부애의 자연적인 결실이요 동시에 부부애의 완성으로서 하느님의 선물이다. 

 

예언자 시대에 들어 혼인은 하느님과 그의 선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 즉 구원의 계약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간주되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예언자들은 부부애의 일상 체험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호세아는 자신의 혼인 생활 체험을 토대로 계약에 불충한 아내와 이를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는 남편의 관계를 하느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에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불충을 고발하고 경고한다(호세 1-3장). 호세아는 본래 창부였던 여인과 혼인하여 극진히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신의를 저버리고 그를 떠난다. 이 때 그는 "그녀는 나의 여인이 아니요 나도 역시 그의 남자가 아니다.”(호세 2)라고 하며 그녀는 이미 자기와 '한 몸’이 아님을 선언하지만 역시 사랑으로 그녀를 다시 맞아들이고(호세 2,14-15 참조) 끝까지 돌보아 준다. 이스라엘 역시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졌으며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꾸준한 사랑으로 당신의 아내인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돌보신다. 이처럼 하느님은 힘으로써가 아니라 부부의 사랑으로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 언젠가 다시 화합하여 갈리지 않고 평화와 안정 속에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호세 2,16-23 참조).3)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는 이처럼 법적이라기보다 인격적인 관계로서 간음한 아내까지도 사랑하는 구원적 사랑의 관계이다. 마치 하느님의 사랑이 갈리지 않는 충실한 혼인으로 이끌어 가듯이 부부의 사랑은 완성과 구원을 향한 사랑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 설정된 혼인은 이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표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호세아의 사상은 예레미아, 에제키엘, 이사야 등의 후기 예언자들에게도 계속된다(예레 2-3장; 에제 16장; 이사 40-55장 참조).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자신을 바치는 이상형으로서의 구약의 혼인은 토비아와 사라의 혼인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토비 7-8장; 14.8-13). 

 

이처럼 구약의 혼인은 인간 관계의 모형으로 제시되며 부부 관계의 본질인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표지로 삼음으로써 구원사 안에 포함시켜 사랑과 구원의 표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2. 신약의 혼인관 

 

신약의 혼인관은 우선 예수님의 생애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갈라4,4) 예수께서는 구약의 혼인관을 통해 이루어진 가정을 당신의 나자렛 생활(루가2,51-52)로 축성하신다. 그리고 '가나 혼인 잔치’를 당신 사도직의 때를 앞당기시면서까지 사도직 활동의 시발점으로 삼으심(요한2,1 -11 참조)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의 혼인에 대한 의도를 분명히 하신다. 예수께서는 따로 혼인의 특수한 제도를 설정할 생각이 없으셨고 다만, 유대인들의 혼인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지적하시며 창조주의 계획에 의한 혼인의 참뜻과 신성성, 그리고 사람이 범할 수 없는 하느님의 법에 속하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밝히신다(마태 19,3-9; 마르 10,2-12). 

 

즉 예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이 ‘시초부터’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 둘이 합하여 ‘한 몸’ (마르 10,6-8)을 이루게 하신 본뜻이 무엇이었나를 밝히심으로 혼인의 참뜻을 드러내신다. 사람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마르10-5) 구약에서 묵인되었던 아내를 특수한 경우에 내보내는 일도 세상이 원초의 완전한 상태가 회복되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제거되어야 한다.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 사이를 인간이 갈라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마태 19,6). 예수님의 혼인에 대한 가르침이 이처럼 단순하셨기에 이에 놀란 제자들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마태 19,10)라며 질겁한다. 

 

예수님은 혼인 제도를 인간 범죄 이전의 원초적 상태로 환원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혼인을 당신 피로 세워진 새로운 계약(마태 36,28), 즉 당신이 교회의 신랑이 되시어 아내인 교회와 갖는 관계의 표시로 삼아 혼인에 신비성을 부여하신다.4) 사도들도 이런 맥락에서 혼인을 신비로 이해하고 선포하였다.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서 5장 21-33절이 그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사도 바오로는 혼인을 통한 부부의 결합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이해한다. 그리스도는 성서에서 자주 '신랑’으로 묘사되고 그를 따르는 신자들의 무리는 신부로 비유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에서 그 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이라는 ‘위대한 신비’를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남녀의 결합의 신비를 설파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에페 5,31-33) 이제 세례로 성령의 궁전이 된(1고린 6,19) 신자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확실한 징표가 될 뿐 아니라 이에 기초하여 생활함으로써 부부 상호간이 성화와 구원을 이루는 성사가 된다.5)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놓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교회를 깨끗이 씻어 거룩하게 하시듯이 부부는 서로 상대방의 성화의 도구가 되고 계기가 되어야 한다(1고린 7,14). 이렇게 될 때 혼인은 부부에게 바로 구원의 장이요 징표가 되는 성사요, 실제로 부부는 혼인에서 서로의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다.6)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가 갖는 '위대한 신비’의 표징으로 본 사도 바오로의 혼인 개념은 혼인을 성사로 규정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후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혼인을 성사로 정의한 것을 시작으로 12세기에는 혼인의 성사적 개념이 신학적으로 확정되었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혼인을 7성사 중의 하나로 규정하였다(Dz 160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맺어진 계약을 표상하고 거기에 참여하는”(사목 헌장48항) 성사로 재확인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혼인은 하느님이 제정하신 제도요 시초부터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육화의 모형이었기에 혼인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기원에 의해서, 즉 인간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자연 본성에 부여된, 거룩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말로 혼인의 성사성이 갖는 특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7) 혼인의 성사성은 혼인에 부가되는 무엇이 아니라 혼인 자체가 성사라는 말이다. 즉 세례받은 신자가 신앙을 갖고 하는 혼인은 그 자체가 성사요 신앙 안에 영위하는 혼인 생활은 그 자체가 성사 생활이다.8) 따라서 혼인 성사의 집전자는 혼인을 하는 당사자들이요 사제는 이 성사의 공식적인 입회인이다. 

 

혼인성사는 서로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전인적인 '자기 증여’를 약속하는 ‘혼인 동의’를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진다. 이 '동의’는 바로 신앙으로 혼인이 표상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육화하신 사랑의 신비를 실현하겠다는 지향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례로써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한 인간이 자기의 고유한 소명을 따라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여 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주기로 약속할 때에, 그 사랑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구원을 약속하고 보증하는 것이 된다.9) 이처럼 신자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통하여 완성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에 삽입되어 창조주가 세우신 부부 생활과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에로 격상되고 그분의 구원의 힘으로 유지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혼인의 성사성에 의해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매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외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 징표이고 진정한 표현이다”(가정 공동체 13항). 따라서 성사로서의 혼인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이 구원 사건을 계시하고 구체화하는 "기념이고 실현이며 예언이다”(상동). 

 

 

2. 가정의 성사성 

 

가정의 성사성은 혼인의 성사성과 교회의 성사성에 근거한 당연한 귀결이다. 혼인이 자체로 성사인 것은 부부가 전인적인 사랑의 일치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시초부터 의도하셨던 그리스도 육화의 모형이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계약 관계를 보여 주고 실현하는 구원의 표지요 도구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자체로 성사인 이 혼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이 성사를 영위해가는 ‘영구적 성사의 장’이기에 교회적 공동체이다. 그러기에 요한 금구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가정을 ‘작은 교회’라고 했다.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인류의 깊은 일 치를 표시하고 이루어 주는 표지이요 도구”(교회 헌장 1항)이기에 '성사’라고 정의한다.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교회 헌장48항)이다. 혼인은 하느님의 육화하신 사랑의 신비인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위대한 신비를 드러내는 표상이요 실현하는 도구라고 했다. 혼인으로써 두 남녀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치하듯이 하느님과 그리고 서로가 은총으로 일치하여 육화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며 실현하기 때문에 혼인은 구원과 은총의 가시적 표시요 도구로써의 성사라고 하였다.11) 이제 혼인한 부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가정은 교회의 일부분인 동시에 혼인을 통하여 교회의 성사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작은 교회’ 또는 '가정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가정을 ‘가정 교회’ 로 말하고 있다(교회 헌장 11항; 평신도 교령 11항). 

 

혼인성사는 부부가 서로 주고받는 ‘혼인 동의’에 의해 이루어지며 ‘한 몸’을 이루는 자기 증여적 일치에서 완성되는 성사이므로 성사의 집전자는 바로 당사자들 자신이다. 혼인성사로써 부부는 자신들을 축성하는 사제적 봉사를 수행하며 부부 자신과 가정을 위한 교회적 사도직을 수행한다(사목 헌장 48항 참조). 그들은 자녀를 출산하고 교육하여 인간 사회의 시민이요, 세례를 통한 하느님의 자녀로 키움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자라게 한다. 이렇게 가정은 부부와 자녀들의 교회적 공동체인 '가정 교회’를 이루며, 그 안에서 자녀들에 대한 신앙 교육으로 예언직을 수행한다(교회 헌장 11항 참조).12)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고 교회의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가정을 ‘교회의 가정적 성소’로 삼음으로 사제직을 수행하며, 어려운 형제를 돕는 정의 실현과 선업에 종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한다(평신도 교령 11항 참조). 이처럼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현존케 하는 공동체이며, 교회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구원의 표지요 도구이기에 ‘작은 교회’요, 따라서 성사성을 갖는다. 

 

오늘의 사회가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정이 "기본 가치 붕괴의 혼란”(가정 공동체 6항)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기본 가치가 붕괴될 때 인간 관계의 참다운 의미나 생명의 존엄성, 자기 증여적 헌신이나 봉사 등의 터전 자체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혼인과 가정의 쇄신이 바로 ‘하느님 백성과 사회 쇄신’의 핵심이다(가정 공동체 3항). 교회는 이제 그 어느 것에 우선하여 인간과 세상, 그리고 교회의 구원을 위하여 가정의 ‘본자리’ 찾기에 최선의 사목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선 신자 가정이 본보기로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가정 공동체 17항)고 호소하며 이를 위한 교회의 특별한 사목적 배려를 촉구한다. "복음화의 장래는 가정 교회에 달려 있다.”(가정 공동체 52항)고 보기 때문이다. 

 

가정이 본연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본연의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첫번째 공동체는 남녀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부부 공동체였다. 혼인으로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가장 깊은 의미의 공동체가 된다(창세2,24참조). 부부의 유대는 몸도, 마음도, 정신도 하나를 이루는 전인적 일치의 공동체이다.13) 그러기에 이 부부 일치의 모습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모습이라고 요한 바오로 2세는 풀고 있다. 즉 창조 설화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따라”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창세 1,27)는 말씀은 인간은 하느님을 닮기 위하여 반드시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끌리는 두 사람, 완전한 사랑이 하나로 맺어 줄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끌림, 이러한 사랑이 그들을 ‘사랑 그 자체’이시며 삼위(三位)의 완전한 합일(슴ㅡ)이신 하느님을 닮게 만든다.”14) 그러기에 완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갈구를 창조 설화에서는 남자가 여인을 발견하고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 하고 외쳤으며,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다.”(창세 2,23-24)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부부의 사랑은 서로에게 자신을 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자녀 출산과 교육으로 이어진다, 즉 하느님의 선물인 사랑은 "자식을 낳아 번성하라.”(창세 1,28)는 하느님의 축복의 실현으로 절정을 이루며,또한 "자녀들은 부부 사랑의 살아 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요 결실이며 부모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 불가분한 종합이다”(가정 공동체 14항). 이제 부부는 새생명의 전달자가 되어 창조주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가정 공동체 28항 참조). 이로써 가정은 하느님은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부성(父性)과 아들과 가정의 본질인 사랑’을 갖추고 계시기에 한 가정을 이루고 계신 분이라는 심오한 신비를 보여 주는 표상이 되는 것이다.15) 

 

가정은 인간의 첫 공동체로 사회의 기초 세포요, 자율적 결단에 의해 구성되어 불가해하고 독점적이며 항구적인 사랑의 공동체로서, 남자와 여자는 그를 통해 서로를 보완하며 자연적이고 신적인 생명을 자녀들에게 전수한다.16) 한마디로 가정은 그 본연의 성격상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이다. 

 

생명은 사랑을 전제로 해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자녀는 바로 부부 사랑의 결 실이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 가서 사랑으로 규정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아울러, 신부(新婦)인 당신 교회를 위한 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활기 있게 반영하고 나누는 것이다. 가정의 모든 특수 임무들은 이 기본 사명의 표현이고 구체적인 실현에 불과하다”(가정 공동체 1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자녀 출산과 교육을 혼인과 부부 사랑 본연의 것으로 보고 있다. "혼인과 부부애는 그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사목 헌장 50항). 인간 생명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것은 부부의 고유한 사명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에 협력하는 것이다. 또 이 사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양친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양친은 첫째요 주된 교육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의 의무는 이렇듯이 중대한 것이므로 그것이 결핍될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자녀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전체 교육을 촉진할 수 있는 바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신심으로 가득 찬 가정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양친의 의무이다. 따라서 가정은 모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에 있어서의 모든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이다”(그리스도교적 교육선언3항).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토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자녀 교육을 '출산 행위의 연속’17)으로 보며 생명과 직결되는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가정 공동체 36항 참조). 사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며 상당 기간을 가정의 보호 아래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무방비 상태로 머문다. 가정은 이처럼 사랑과 생명의 자리, 사랑이 생명을 낳는 자리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필수 영역이다. 여기가 바로 첫 만남의 자리요 인간 관계를 피부로 체험하고 배우는 자리로서 인격 형성에 영원한 흔적을 남기는 중요한 자리이다. 만남을 배우고 사회 미덕을 처음으로 배우는 자리가 가정이요, 교회를 처음으로 접하고 신앙을 체험하는 자리가 바로 가정이다. 가정은 최초의 교사요 사목자이다. 한마디로 가정은 보다 풍성한 인간성을 길러 내는 학교요 교회로서 사회와 교회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서 실질적인 인간성의 뼈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18) 즉 가정의 분위기가 자녀들의 인간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교회의 구원은 부부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 상태에 직결된다고 단언한다(사목헌장47항 참조). 어린이들은 이론으로보다 피부로, 느낌으로 배우므로 가정이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그 사랑이 그들 인간성 안에 새겨지게 된다. 가정의 분위기가 이런 의미임을 안다면 자녀 앞에 부모의 임무는 막중할 뿐 아니라 차라리 도전이기도 하다. 끝없는 헌신과 기도로써 부모는 가정을 학교이자 공동 기도의 자리, 곧 '작은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즉 가정의 성사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참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자신들의 한계성을 인정하여 화해의 성사를 통해 용서받으며, 교회 전례에 참여하여 성체성사로써 그리스도 안에 일치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는 기본 가치의 혼란에 의해 가정이 가장 위협받고 있는 시대로 보인다. 질서 있고 단순하며, 행복했던 전통적인 가정의 생활 양식은 더 이상 제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전통적 가정과 사회의 미덕을 수호하는 것은 어리석게까지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적대로 "금세기처럼 가정이 심하게 위협과 공격을 받고 또 심하게 침식당한 시대도 일찍이 없었다.”고 할 만큼 가정을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물이 되고 있다.19) 그런가 하면 반대로 교회와 사회로부터 가정이 그토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은 적도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가정이 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중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가정이 그 본연의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신자 가정들이 본연의 가정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정을 이루는 혼인을 제정하신 창조주의 본뜻이 무엇이었 는가를 성서에서 살펴보았다. 구약에서 혼인은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을 따라 설정하셨고 예언자들은 이 혼인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를 표징하는 사랑과 구원의 계약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창조 시에 하느님이 설정하신 혼인의 본뜻이 단일하고 불가해소적인 사랑의 일치였음을 재확인하시고 바오로 사도는 혼인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의 위대한 신비를 나타내는 징표로 보아 육화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구원의 성사로 묘사한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사상에 근거하여 혼인이 성사임을 신학적으로 고찰하였고 가정을 이루는 혼인 자체가 성사요 따라서 가정이 바로 교회라고 보아, 교회가 성사라고 정의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가정의 성사성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가정 그 본연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따라 가정의 본질을 고찰해 보았다. 가정은 사랑의 성사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이다. 부부의 사랑은 자녀 출산을 통해 생 명으로 연결되며 이 생명에의 봉사는 자녀 교육으로 완성된다. 생명에의 봉사로 부부의 사랑이 부부 사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생명을 통하여 확장되며 자녀 교육을 통하여 대대로 전수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이 구원적 사랑의 교육장으로서의 학교요 교회이며 부모는 그 교사들이다. 가정이 학교요 교희로서의 분위기를 갖추지 못할 때 자녀들은 인간성을, 신앙을 배울 터전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본연의 가정은 더 이상 전수될 수 없기에 본연의 가정 자체가 멸종될 것이다. 가정은 이런 의미에서 신앙과 교육의 시험장이며 동시에 바로 그 목적지이기도 하다. 내일의 사회는, 그리고 내일의 교회는 결국 오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질에 달려 있다. 

 

신자 가정이 바로 가정 그 본연의 것이 되어 세상에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당부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갈수록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일상 생활에서 오는 불가피한 어려움들을 성실과 조화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갈수록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소중한 새생명들을 낳아서 기쁨으로 양육하고, 갈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이자 초점으로 삼는 은총의 공동체가 되어 각 사람의 투신이 결실을 맺도록 하고 나날이 전진에 늘 새로운 활력을 끌어들이도록 해야 합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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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5차 주교 시노드, 

2) C. Wiener, ‘혼인’ C. Wiener,'혼인’, "현대의 그리스도인 가정에 보내는 메시지” 12항. 「성서 신학 사전」, 광주가톨릭대학, 1984, 674면.

3) 이민상, '사목헌장에 나타난 부부애’, 「司牧」19호(1971.11), 10면. 

4) C. Wiener, 위의 책,676면 

5) W. Molinski, “Marriage”, 『Encyclopedia of Theology : The Concise Sacramentum Mundi』, ed. By K.Rahner, N, Y., 1982, p.911. 

6) 위의 책, p.912 참조; F. 뵈클레,'혼인의 성사성’,「신학전망」33호(1976 여름), 24면. 

7) F. 뵈클레,위의 책, 22면. 

8) 위의 책, 24면. 

9) 위의 책, 26면. 

10 ) 김창훈,'결혼과 가정의 성사성’,「司牧」103호(1986.1), 9면. 

11) W. Molinski, 위의 책, p.911. 

12) 김창훈, 위의 책, 10면. 

13)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가정 공동체」13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하 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가정’,「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 성바오로 여자 수도회 엮음, 1983, 295면. 

14) 요한 바오로 2세, ‘그리스도인의 혼인, 윤리 발전의 밑거름’, 위의 책, 169면. 

15) 요한 바오로 2세,'가정의 위치’,위의 책, 120면 참조. 

16) 바오로 6세, '가정의 성사적 은사’,위의 책,33면; 요한 바오로 2세,「가정 공동체」19항 참조.‘ 

17) 요한 바오로 2세,‘가정에서의 교리 교육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위의 책, 193면. 

18) 요한 바오로 2세,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일치를 위한 기도’에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위의 책, 219면. 

19) 요한 바오로 2세,‘그리스도인의 가정들에 대한 신뢰 회복의 필요성’, 위의 책,241면 참조. 

20) 요한 바오로 2세,'가정을 위한 사목 관리 확보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위의 책, 140면.

 

[사목, 1994년 1월호, 김유철(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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