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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기도로 성화되는 가정(성체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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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51

기도로 성화되는 가정(성체 변화)

 

 

1. 시작하는 말

 

[사목] 5월 호에 게재한 ‘말씀의 식탁을 마련한 가정’에 이어 ‘기도로 성화되는 가정’의 모습을 미사 전례에 맞추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회의 모습에서 기도를 빼놓으면 신앙 생활은 알맹이 없는 껍질이 되듯이, 작은 교회인 가정 공동체에 기도하는 모습이 살아있을 때 활력 있는 작은 교회의 역할을 볼 수 있다. 곧 기도하는 분위기가 가정 안에 살아있고 넘칠 때, 그 흐름 속에서 가족들은 참된 신앙과 기쁨과 행복의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미사 전례 안에서 이 같은 기도로 성화되는 분위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성찬례의 절정을 이루는 성체 변화 때이다. 바로 이 순간이 예수님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정점이며, 모든 이가 한 마음이 되는 가장 아름다운 일치의 순간으로서 교회를 오늘까지 지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 만능의 세상에서 작은 교회인 가정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가족이 다 함께하는 기도의 삶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성화의 주요한 무기라 할 수 있는 가정 기도에 대한 여러 상황들을 미사 전례와 연관지어 미사 전례가 가정 안에서 어떻게 생활화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기도 시간 정하기

 

공동체의 기도는 우선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본당에서 어떤 기도를 공동으로 바치고자 할 때 신자들이 모이기 쉬운 시간을 따로 정하듯이 가정에서도 가족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다. 한솥밥을 먹고 사는 가정일지라도 현대 사회의 특성상 가족들이 저마다 다른 생활을 하기에 가족 구성원이 흩어져 있는 시간이 많고, 정도 메말라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대부분의 가정이 예전처럼 식구들이 함께 모여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운다거나 아침, 저녁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고, 신앙심 깊은 가정이라 해도 가족이 다 함께 기도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게 보인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신앙 생활의 장애들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과제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을 ‘가정의 해’로 선포하시고, 가정의 공동선을 위해 “인간은 가정 안에서 그의 ‘위대한 모험’, 인생의 모험을 시작합니다. ‘이 인간’은 모든 경우에서 인간 존엄성을 토대로 하여 자기를 완성할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가정 안에서 한 인간의 위치를 확립하는 것은 바로 이 존엄성입니다. 가정은 참으로, 다른 어떤 인간 현실보다도 더,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그 자신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가정교서] 11항)라고 강조하신다. 그렇다. 가정의 공동선을 위해 우리는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하는 사명을 각자가 이미 받고 있다. 따라서 가정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기도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 기도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우선 그 필요성을 가족 모두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면 자발적으로 하게 되므로 무엇보다도 가정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먼저 해야 하며 나아가 가족 모두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당 사목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 가정’ 모임이 있었다. 여러 부부가 다달이 함께 모여 서로 기도하면서 다른 가정을 위한 기도를 약속하고 또 가정 기도의 중요성과 좋은 경험담을 서로 나누었는데, 가정 기도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안을 통해 나온 방법들을 하나 하나 시도해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가정 기도회를 갖는다는 것이 마치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그 기적을 이루는 것을 우리의 첫째 목표로 인식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참가하는 부부가 서로 기도해 줄 가정을 제비뽑은 다음 그 가정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가정 기도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달 동안 기도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가족 모두에게 그러한 뜻을 알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날에는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가족 모두 한 달에 한 번 ‘가정의 날’을 정하여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날로 삼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다음 달 모임에서 한 달 동안 노력했던 점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시 다음 한 달 동안의 노력을 약속하며 진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면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가정의 날’ 운동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전체가 다 함께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몇 가정이 시작하면서 가정 기도의 체험을 나누자 서서히 그 필요성을 느끼는 가정이 늘어나고 차츰 가족 기도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역력히 드러났다. 교우들의 기도 분위기가 쇄신되고 신앙 생활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매달 가정 기도의 날 정하기’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오늘날 이 사회는 우리를 각자 남남으로 살아가도록 유혹하며, 저마다의 취향에 따르는 자기 중심적 삶으로 유도하고 있어 기도하는 가정 분위기를 나날이 잃어가게 된다. 부모는 부모대로 잦은 모임과 계획이 있고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공부 때문에 저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면서, 가정은 더 이상 가족이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사는 터가 아닌 말 그대로 하숙집 같은 분위기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제 기능을 잃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먼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 가정부터 본연의 제 모습을 찾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매주 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을 목표로 하여 우선 ‘기도 시간 정하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도 어려우면 주일 미사에 가족이 다 함께 참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3. 함께 기도하기

 

언젠가 뉴질랜드에 갔을 때 어느 열심인 신자 가정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족 기도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충분히 쉰 다음 일정한 시간이 되면 각자 잠자리로 가기 전에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 가정의 네 자녀가 모두 성장한 10대였는데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며 즐기다가 부모님이 정해진 기도 시간을 알리면 때로는 싫은 표정을 하면서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모이는 것이었다. 가족이 다 모이면 부모가 주도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매일 정해진 가족 기도 시간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외국인 신부가 왔기 때문에 특별히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늘 이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늘 함께 기도한다고 대답하였다. 어떻게 이런 기도 모임을 매일 가족이 다 함께 모여 가질 수 있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때로는 좀 귀찮고 힘들기도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고 한다. 가끔씩 아이들이 자기 일로 멀리 가게 되든가 흩어져 지내게 되는 경우에는 다 함께 할 수 없지만 남아있는 식구들은 어김없이 이 시간을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불만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불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가족이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신앙 가족으로서 기도의 힘을 얻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가정에 머무는 동안,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만은 절대적으로 지키는 그 모습이 바로 살아있는 성체 변화의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의 모습을 우리 한국 신자 가정에서는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기회가 점차 희박해지면서 신앙 가족으로서 기도의 밥상을 함께 마련한다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말씀 식탁에서 말씀을 맛들이고 나면 가족이 다 함께 기도로 어우러짐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이 되리라 본다.

 

기도에서 개인적으로 필요한 은총을 얻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개인 기도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함께하는 미사가 없으면 큰 교회에 살아있는 힘이 생겨나지 못하듯이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힘이 없으면 작은 교회인 가정 안에 믿음의 힘이 살아 움직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교회를 지탱해 온 수도회들의 가장 큰 힘도 공동체 기도의 힘이었던 것처럼, 가정에서도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힘이 있어야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가정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성체 변화의 기적을 이루는 만큼이나 크고도 놀라운 하느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할 것이다. 힘없는 이의 간구가 달리는 기차도 멈추게 하는 것처럼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신앙의 가장 강력한 행동이며, 우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거룩한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러므로 가정 기도는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기도하는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4. 기도 편지 쓰기

 

우리는 인간의 언어를 빌려 기도를 한다. 그러나 말로써 한 기도는 그 순간에만 살아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만 기도를 글로 적어놓으면 한 순간의 기도만으로 사라지지 않고 그 기도문을 보는 순간마다 마음 안에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기도가 된다.

 

본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집전하면서 보편 지향 기도에 어린이들이 직접 기도 편지를 써 오게 하였다. 처음에는 어려웠던지 아니면 흥미가 없었던지 몇 어린이만 겨우 써 오더니 차츰 기도 편지를 써 오는 숫자가 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유치부부터 6학년까지 서로 경쟁을 하듯 써 오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써 온 기도를 미사 때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아이들을 더욱 부추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주일에는 너무 많은 기도 편지를 써 오는 바람에 몇 아이만 읽게 하고 나머지는 봉헌 바구니에 봉헌하는 것으로 시간 조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참으로 맑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솔직한 기도를 통해 부모들의 마음이 차차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아이들의 기도 편지를 보면 부모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거울과 같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아이들 마음에 그대로 박혀있는 대명사와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이 많은 기도문을 써 오면서 주보에다 어린이의 기도를 매주 한 편씩 실어주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그 기도문을 보면서 어린이들에게서 배우고 함께 기도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싹트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가정 공동체에서 기도하는 가정으로 분위기를 바꾸려면 식구들의 자발적인 자유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기도를 글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생각보다 훨씬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녀는 부모를 위해 기도를 쓰고 부모도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써 나간다면 그 가정은 생생한 삶의 기도를 바치면서 기도의 향기를 온 집 안에 늘 가득히 채울 수 있는 향 자체를 지닌 셈이 된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서로 기도 편지를 써보는 것도 가정 안에서 기도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그 기도문을 모아두면 훗날 ‘가족 기도 모음집’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식구들의 생각과 바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어떻게 이어져 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기도문을 쓰면서 기도하는 것은 더 더욱 쉽지 않고 신앙인들 사이에도 흔치 않다. 그러므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서로 기도 편지를 쓰고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가정의 기도 분위기를 더 훈훈하게 만들며 작은 교회의 포근한 발광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5. 시작과 마침의 기도

 

가정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도 없거니와 그 안에 인간의 모든 생명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전도서 3장 1절의 말씀대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시작과 마침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원초적 장소인 가정에서 생을 시작하였으며 하루의 시작 또한 가정에서 출발하고 일상의 삶을 마친 뒤 가정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하루가 끝난다. 나아가 인생의 마지막 삶을 가정에서 마칠 수 있기를 누구나 원한다. 이렇게 소중한 모든 시작과 끝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맺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며,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가족이 다 함께할 수 있는 기도의 가정이 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작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이다.

 

[가톨릭 기도서]에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가 있고,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와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기도는 각자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아침 시간은 저마다 각자의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 가족 모두 바쁜 때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 아침 기도나 하루의 시작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시간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꼭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의 일이 아닌가 싶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고 가면서 차 안에서 함께 아침 기도를 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어떤 가정은 아침 기상을 조용히 성가를 틀어놓고 마치 피정의 집에서 기상을 시키듯이 식구들을 깨우고 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하루의 시작을 차분하고 평화롭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하는 부모들의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식구들 가운데 주부들이 맨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대부분 가정이 엄마들의 움직임에서 하루의 모든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열심한 엄마는 자녀들을 깨울 때 이마에 십자표를 그어준다고 한다. 또는 식구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부엌에서의 기도, 밥을 지을 때의 기도, 밥을 풀 때 십자표를 그으면서 하는 기도 등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는 이렇게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가정의 기도는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본당에서 수녀님들이 성당의 구석구석을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로 꾸며놓고 성당에 오는 신자들이 차분히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듯이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 대한 최초의 교육자요 가장 중요한 교육자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또한 교육 분야에서 근본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이기 때문에 교육자입니다.”([가정교서] 16항)라고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처럼 기도하는 가정의 분위기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부모의 깊은 사랑의 역할 안에 있는 것이다.

 

마침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면 잠시 한자리에 모여 하루 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과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마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성서 공부 모임에서 무심코 전날 저녁에는 정말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잤다는 말을 했더니 어느 자매님이 “신부님은 기도하고 주무시지 않나요?” 하며 일침을 놓아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래, 어떤 경우에든 사제는 잠을 청하기 전에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의 마침 기도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참으로 맞는 말이다.’라고 속으로 응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반 신자 가정에서도 그러한 마침 기도가 얼마나 가능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시작과 마침을 기도로 준비할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까지 이행하며 기억하라고 당부하시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일상의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나눔을 실현하셨던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기도로 변화되는 삶의 기적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가정 안에서 가족이 다 함께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기도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가족 모두 사랑으로 서로 변화할 수 있도록 힘써야겠다.

 

 

6. 기도하는 장소

 

가정에서 가장 기도하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사목] 2월 호에서 “가정에서도 전례의 분위기를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예로 집안에 기도 방을 꾸민다든지 아니면 다른 전례의 분위기를 만들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특별히 정해 놓는 집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기도의 장소는 어떤 제한된 특정한 곳으로서의 의미보다 가정 자체가 진정 기도의 장소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삶의 가장 중요한 기적의 예(禮)를 행하셨다. 곧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양식을 섭취하는 예식을 통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이 예식이 교회 전례 안에서 정점을 이루는 성찬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평범한 식탁을 거룩한 성체 변화의 기적을 이루는 기도의 장소로 변화시키셨듯이, 우리 가정의 식탁이 생명력을 나누는 성찬의 식탁으로 변하는 기도의 장이 되고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가족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 만들기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이 밥을 먹는 동안 곁에서 성서를 읽어주거나 식사 전에 식구 중 한 사람이 성서 한 구절을 읽고 나서 식사를 함으로써 육신의 음식을 취하는 식탁이 말씀의 식탁으로 이어지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성찬의 식탁으로 변화될 수 있다. 식구들이 함께 모여 식사 전 기도를 바치고 서로 담소하며 어머니가 마련해 준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그 자리가 기도를 생활화하는 곳이 되어 성체 변화의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기도로 가정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려면 말씀의 식탁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명력을 나누는 성찬의 식탁으로 이어져야 하며, “세례성사에서 나오고 혼인성사에서 수행되는 신자의 사제직은 부부와 가정이 가지는 사제적 소명과 사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가정 공동체] 59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처럼 어느 면에서는 가장이 집안의 사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작은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며 성화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가장은 가족 기도를 우선적으로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아가 “부모의 구체적 모범과 산 증거야말로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데에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만, 자신의 왕적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자녀들의 마음의 심층에 파고들 수 있고, 그들의 생애에서 일어날 미래의 사건들로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같은 책, 60항)라고 하신 교황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가정의 현실은 기도하는 분위기로 변하기보다는 마치 하숙생이나 나그네의 잠시 머무는 거처처럼 변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 모두는 예의 주시해야 하며 “기도의 생활과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아버지와의 기도 어린 대화를 통해서 이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같은 책, 59항)이라고 하였듯이 우리들 삶의 현장인 가정 안에서 성체 변화 예식의 깊은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쓰며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가야 한다.

 

 

7. 마치는 말

 

“기도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질적 일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 기도는 인간성의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다. … 기도는 매일의 투신에서의 도피 형태이기는 고사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이 인간 사회의 기초적이고 기본적 세포로서 자신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충분히 완수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인(誘因)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교회 생활과 사명에 실제로 참여하는 정도는, 기도에 충실하고 열중하는 정도, 기도로써 주 그리스도이신 열매 많은 포도나무와 일치하는 정도에 정비례하는 것이다.”(같은 책, 62항)

 

기도하는 가정이 얼마나 있습니까? 하고 물을 때는 식구 중의 어느 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다 함께 기도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가족 기도는 날이 갈수록 희박해져 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도 미사 전례의 본질적인 의미를 작은 교회인 가정에서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는 하나의 이상이며 이루기 힘든 꿈같이 보일지 모르나 대희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우리가 변화하고 우리들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으로 거듭 난다면 빵과 술이 주님의 몸이 되고 피가 되듯 신앙 공동체는 사랑의 기적을 이루며 변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부모들에게 한 호소를 다시 들어보자.

 

“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가르칩니까? 

당신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에 고해, 성체, 견진 등의 성사를 받도록 준비시킵니까? 

당신들은 자녀들이 병 났을 때에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고 동정 성모와 성인들의 도움을 청하도록 그들을 격려합니까? 

당신들은 묵주기도를 가족과 함께 바칩니까? 

그리고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가끔이라도 자녀들과, 전체 가정 공동체와 함께 기도합니까? 

당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정직한 모범은, 약간의 공동 기도와 합쳐지기만 하면, 생활을 위한 교훈이며 매우 가치 있는 예배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당신들은 집안에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를 건설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1976. 8.11. 일반 알현 연설) 

 

[사목, 1998년 8월호, 하화식(춘천교구 사목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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