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성탄전 밤미사-2000

스크랩 인쇄

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0-12-24 ㅣ No.235

성탄 대축일 [1225]

 

        이사야 9,1-6          디도 2,11-14     루가 2,1-14 <성탄 밤 미사용 독서, 복음>

    2000. 12. 24.

주제 : 성탄의 기쁨은 나로부터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여러분과 제가 함께 모인 지금 이 시간은 아주 오래 전, 이 세상에 구세주로 베들레헴 동네에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을 기억하는 축제일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 세상이 움직이기를 바라셨던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길을 벗어났던 조상들이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날이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 미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베들레헴을 이 자리에 옮기는 전례를 거행했고,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하느님의 아드님께 겸손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우리 각자와 우리 가정을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아기 예수님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처럼 한 자리에 모여 같은 마음을 갖는 일은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우리만의 생각이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텐데, 하느님의 힘과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모여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탄생하셨음을 함께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참으로 힘든 것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대림절을 통해서 바라고 기다렸던 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지나고 나면 빠른 것이 시간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어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간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같은 시간에 대한 다른 태도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기 위해 기다리셨을 하느님의 입장도 만만치 않은 길이였을 것입니다. 실제 길이는 모릅니다만, 이스라엘 4천년의 역사를 요약하는 것이 우리가 지낸 대림절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세월을 우리는 3주간 하루의 시간으로 채우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아기로 태어나신 하느님의 힘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생각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약한 것을 떠나서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신앙인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과 가족을 돌봐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한 사람들이 할 일은 약한 아기로 우리 곁에 다시 오신 예수님을 잘 보호해드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좋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어도 자랄 생명은 자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생명이 우리에게 기쁨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성을 기울이고 좋은 마음으로 대해야만, 하느님은 오늘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의 선물을 느끼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순리를 거슬러 움직이는 분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제국의 지배가 서글픈 역사였기에 끊임없이 무력으로 그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지만, 그 현실 안에서도 새로운 것을 실행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인간의 사정을 몰라주신다고 항의하고 싶어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뚫고 작은 동네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집이 없어 동물들의 숙소를 찾아든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축제일에 하늘에 나타난 천사들은 축제와 환희의 노래를 부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사람,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겸손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같은 길이의 삶을 지내도 기쁘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쁨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천사의 소리를 기쁨의 소리로 들었던 목자들은 누추한 구유에 가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만의 담을 쌓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탄생하신 일이 새로운 위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간으로 나신 것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 사랑이었을 것은 분명한데 사람이 갖는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에게 맡겨지는 사명에 대한 것이 이사야 예언서에 나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누구에게나 맡겨지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기쁨을 옆에 두고 살아가느냐, 저만치 멀리에 두고 살아가느냐 하는 일이 달라질 것입니다.

 

현실의 짐에 눌려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쁨으로 오시는 분이 주실 선물을 받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그 선물을 찾아서 즐기고 이웃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49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